KT가 황창규 회장 취임 이후 정치권, 군·경찰, 고위 공무원 출신 등으로 이른바 ‘로비 사단’을 구축해 약 20억원에 달하는 ‘자문료’를 지급한 정황이 드러났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황 회장 취임 이후 위촉된 ‘KT 경영고문’ 명단을 공개했다.

이 의원실이 확보한 명단에 따르면 KT가 ‘KT 경영고문’으로 위촉한 인사들은 정치권 6명, 퇴역 장성 1명, 전직 지방경찰청장 등 퇴직 경찰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3명, 업계 인사 2명 등이다. 이 의원실은 “이들의 자문료 총액은 약 20억 원에 이른다”며 “이들은 KT 퇴직 임원이 맡는 고문과는 다른 외부 인사로 그동안 자문역, 연구위원, 연구조사역 등 다양한 명칭으로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이번 명단 공개로 실체가 더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정치권 출신 고문들이 매달 약 500만~800만원의 자문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 가운데, 17대 국회 과방위 위원을 지낸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도 고문단 명단에 포함됐다. 이 의원실은 “박성범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5년 9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매월 517만원을 받고 KT 경영고문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활동한 이아무개 전 경기도지사 경제정책특보도 유관 경력을 발판 삼아 KT에 영입된 인물로 꼽혔다.

▲ KT 경영고문 명단. 제공=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 KT 경영고문 명단. 제공=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이 의원실은 특히 “친박 실세로 꼽히는 홍문종 의원 측근은 3명이나 위촉됐다”고 밝혔다. 홍 의원이 현 과방위에 해당하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시절 홍 의원의 정책특보, 재보궐선거 선대본부장, 비서관 출신 인물들이 KT 경영고문으로 위촉됐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8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활동한 남아무개 전 KT 경영고문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18대 대선 박근혜 캠프 공보팀장을 지냈다고 이 의원실은 밝혔다.

군 공무원 출신 고문들은 정부 사업 수주에 동원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원실은 “2016년 KT가 수주한 ‘국방 광대역 통합망 사업’ 입찰 제안서에 경영고문 남아무개가 등장한다”며 “국방부 사업 심사위원장은 남아무개가 거쳐간 지휘통신참모부 간부였다. 이때문에 당시에도 KT가 남아무개를 내세워 750억원짜리 사업을 수주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했다. 남 고문은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신참모부장, 육군정보통신학교장 등 군 통신 분야 주요 보직을 거친 예비역 소장 출신이다.

KT와 직접적 업무 관련성이 있는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국민안전처, 행정안전부 고위공무원 출신도 고문단에 포진했다. 이 의원실은 “이들은 2015년 ‘긴급 신고전화 통합체계 구축 사업’을 비롯한 정부 사업 수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경찰 출신 고문은 사정·수사당국 동향을 파악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줄 수 있는 IO(외근정보관) 등 ‘정보통’들로 골랐다”고 밝혔다.

▲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해 4월1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해 4월1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의원실은 “KT는 경영고문 활동 내역을 제시하지 못했다. KT 직원들은 물론 임원들조차 이들의 신원을 몰랐다. 공식 업무가 없거나 로비가 주업무였던 셈”이라며 “실제 경영고문이 집중적으로 위촉된 2015년 전후는 △유료방송 합산규제법 △SK브로드밴드-CJ헬로비전 합병 △황 회장의 국감 출석 등 민감 현안이 많았을 때”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실은 황 회장이 막대한 급여를 자의적으로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에 비춰 업무상 배임 및 제3자 뇌물교부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의원은 “황 회장이 회삿돈으로 정치권 줄대기와 로비에 나선 걸로 보이기 때문에 엄정한 수사를 통해 전모를 밝히고 응분의 법적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며 “2017년 말 시작된 경찰 수사가 1년 넘게 지지부진한 것도 황 회장이 임명한 경영고문들의 로비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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