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춘 EBS 이사장의 아들 신아무개씨는 대마 밀수 혐의로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형이 확정됐다. 신씨는 지난해 4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는 유죄를 받았고 대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유시춘 이사장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친누나다. 

미디어오늘은 1·2심 판결문으로 사건을 되짚었다. 대법원이 인정한 검찰 주장을 보면 아들 신씨는 2017년 10월 말~11월 초 사이 외국에 거주하는 ‘성명 불상자’와 대마를 국내에 밀반입하기로 공모한 뒤 실제 대마 9.99g을 스페인 발 국제통상우편물에 은닉해 국내로 들였다.

신씨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우편물 수취인은 ‘BORI(A)’이었다. ‘김보리’는 당시 신씨가 집필하던 영화 시나리오 속 주인공 이름이다. 괄호 속 ‘A’은 신씨가 계약직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던 곳이었다.

우편물 배송지는 B엔터테인먼트 내 작업실. 이곳은 B사 ㄱ대표가 A사 부탁으로 신씨에게 임시 사용을 허락한 공간이었다. 이 작업실은 집필을 위해 신씨만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법원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신씨뿐이었다고 판단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신씨 홀로 사용한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시나리오 발표 전이라 ‘김보리’ 같은 주인공 이름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신씨가 이 사무실을 사용하고 △사무실 주소가 외부에 공개됐다고 볼 자료가 없고 △수취인 ‘BORI’와 신씨의 시나리오 속 주인공 ‘보리’ 상관성 등을 근거로 유죄를 선고한 2심 재판부는 “우편물 수취인 ‘BORI(A)’는 피고인(신씨)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피고인이 발송인 또는 그와 관련된 사람에게 주소를 별도로 알려줬기 때문에 우편물 발송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피고인이 단기간 혼자 근무하는 장소에 불과한 위 사무실 주소와 피고인이 집필하는 시나리오 주인공 이름과 소속 회사까지 알 정도로 피고인과 가까운 사람이, 피고인 요청이 없는데도 외국에서 대마를 구해 피고인에게 우편으로 보내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2심 판결문, 2018노1056)

무죄를 선고한 1심도 “결국 보리, A사, B사 주소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수취인을 기재해 우편물을 배송 받으려 한 사람이 피고인일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다만 1심은 “피고인이 성명 불상자로부터 대마를 매수 또는 무상 제공받았는지 등을 확인할 계좌거래 내역, 이메일 전송내역 등의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즉, 유죄를 입증할 만한 직접 증거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 유시춘 EBS 이사장. 사진=EBS 제공
▲ 유시춘 EBS 이사장. 사진=EBS 제공
신씨를 가리키는 정황 증거들

그러나 일련의 정황은 신씨를 가리킨다. 2심 재판부는 1심보다 검찰이 주장한 간접사실에 판단을 분명히 했다.

먼저 우편물을 수령한 과정을 보자. 검찰수사관은 2017년 11월21일 세관 통관 과정에서 발견된 대마 9.99g이 들어있는 국제통상우편물을 B사로 통제배달(Controlled Delivery)했다. 통제배달은 밀수 물품을 중간에 적발하지 않고 감시 통제 속에서 유통되도록 한 뒤 최종 유통 단계에서 적발하는 수사 방식이다.

우편물을 받은 이는 B사 ㄱ대표였다. 우편배달부로 위장하고 통제배달한 검찰수사관은 ㄱ대표에게 우편물에 대마가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보리’란 이름으로 대마를 수령할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탐문했으나 현장에 있던 B사 직원들 모두 보리가 누굴 지칭하는지 몰랐다.

수취인을 찾던 ㄱ대표는 신씨에게 “보리를 아냐”고 물었고 이에 신씨는 “모른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얼마 후 신씨는 다시 ㄱ대표를 찾아와 “우리 PD가 보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보리’를 전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 이유에 합리적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ㄱ대표는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신씨)은 원래 사무실에 자주 나오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 사건 우편물이 배달될 무렵 사무실에 상주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우편물 수령 당일에는 CCTV 확인 결과 계속 프론트 쪽으로 왔다갔다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진술했는데 2심은 신씨의 ‘이상한 태도’를 뒷받침하는 내용이라고 봤다.

반면 무죄를 선고한 1심은 이 부분 등에 대해 “ㄱ대표가 검찰수사관으로부터 B사로 배송된 우편물이 대마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난 이후 자신들이 대마와 관련성이 없다는 점을 소명해야 하는 현실적 상황에서 피고인과 의심스러운 인물 사이의 관련성을 단정적으로 진술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은 그 무렵 자신의 행적과 관련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ㄱ대표 진술 등의) 신빙성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은 신씨 진술의 일관성이 떨어진다고도 봤다. 신씨는 1차 조사에서 자신은 물론 친구 부탁으로도 받을 우편물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보였으나 3차 조사에서는 “(B사 사무실로) 기다리던 우편물은 있었다. 1달 전 아이슬란드 여행을 갔는데 잠시 같이 여행했던 외국인 친구 10여명이 폴라로이드 사진, 엽서 등을 받을 주소지를 가르쳐달라기에 B사 주소지를 알려준 사실이 있다”는 취지로 입장을 바꿨다는 것. 이 입장이 4차 조사에서 또 뒤바뀌었다는 게 2심 판단이다.

신씨가 2014년 다른 사건에서 같은 혐의(대마수입)로 재판 받은 사실에 대한 판단도 1·2심이 달랐다. 신씨는 2015년 8월 무죄를 받았으나 모발 감정 결과 대마 성분이 검출됐다. 무죄를 선고한 1심은 이 사건을 “대마 밀수 가능성을 의심해볼 수 있는 사정” 정도로 봤으나 2심은 “피고인이 과거 대마를 흡연한 바 있고 향후에도 흡연하려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마가 든 이 사건 우편물과 피고인의 관련성을 한층 높여준다”고 했다. 검찰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한 가지 쟁점이 더 있다. 신씨가 임시 사용하던 B사를 압수수색하자 글라인더와 담배페이퍼가 발견됐다. 신씨는 수사기관에서 이를 “수제담배를 갈아 피우기 위해 소지하고 있었다”면서도 “해당 글라인더 또는 다른 글라인더를 사용해 수제담배를 갈아서 흡연한 적 없다”고 했다.

2심은 글라인더와 담배페이퍼를 “일반적으로 대마를 갈아 흡연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로 알려졌다”며 “피고인은 글라인더 등이 수제담배를 피우기 위해 소지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그 사무실에서 수제담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1심은 “이와 관련해 피고인이 공개된 장소인 위 작업실에서 글라인더를 사용해 대마를 흡연하려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대법원 “원심 공판중심주의 위반 잘못 없다”

1심 판결문에는 없지만 2심에서 드러나는 사실관계가 있다. 신씨를 체포할 때 압수한 신씨 수첩에 “대마초”가 적혀 있었다. 2심은 이를 두고 “이는 피고인이 대마를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유시춘 EBS 이사장과 영화 ‘버닝’(이창동 감독) 제작사 쪽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수첩 속 ‘대마초’는 영화 버닝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유 이사장은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영화 버닝 마지막 편집 당시 이창동 감독이 아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마초 씬을 적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버닝 제작사 측도 논란 이후 언론에 “영화 장면에 대한 키워드를 써놓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씨의 스승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이 대법원에 신씨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 까닭이기도 하다. 

신씨는 “B사 직원이나 그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 또는 영화 주인공 이름인 ‘김보리’를 아는 누군가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거나 나를 음해하기 위해 시나리오 속 주인공 이름을 이용해 대마를 주문했다”는 취지로 항변해왔다. 다만 자신을 음해할 만한 사람을 제시하진 못했다.

2심 재판부는 “누군가 피고인을 음해할 목적으로 피고인 명의로 대마를 수입했다면 피고인 실명을 수령인으로 사용하고, 배달 장소도 피고인 주소지 등 피고인과 연관성이 더 높은 곳으로 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여러 간접사실을 주요하게 보고 징역형 3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공모공동정범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공판중심주의와 직접심리주의를 위반한 잘못이 없다”며 신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유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EBS 이사장직 사퇴 요구에 “아들은 성인으로 독자적 인격이다. 만에 하나 아들이 실책을 했더라도 어머니에 책임을 물을 순 없다”며 “일각의 정치 공세에 굴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보낸 사람, 즉 ‘발신자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스페인 출신 사설탐정을 고용해 자체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를 한국 경찰청에 제출하는 등 ‘발신자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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