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최근 전세시장 상황 및 관련 영향 점검’ 보고서를 발표한 지난 19일 이후 “전셋값 10% 내리면 3만여 가구 보증금 반환 못한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통신사, 방송사, 신문사, 온라인 매체 할 것 없이 대부분 비슷한 제목을 붙였다. 일부 매체는 기존 계약금보다 전셋값이 떨어지는 ‘역전세’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사실상 더 이상 전셋값이 떨어져선 안 된다는 신호를 쏟아낸 셈이다. 보고서 가운데 일부만 강조해 위기감을 조장했고 세입자 입장은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매체가 제목을 단 내용은 지금보다 전셋값이 더 떨어지면 임대가구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부분이다. “전세가격 10% 하락 시 92.9%의 임대가구는 금융자산 처분만으로, 5.6%의 가구는 금융기관 차입 등을 통해 보증금 반환이 가능하나, 1.5%(3만2000가구)의 가구는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다. 보증금을 돌려주기에 부족한 자금 규모는 2000만원 이하가 71.5%, 2000~5000만원 21.6%, 5000만원 초과 6.9%로 비용이 높을 수록 비율은 적었다.

지난 19~20일, 아래 매체 등 주요 통신사와 방송사, 일간지 대부분은 이런 제목으로 보고서 내용을 보도했다.

“전셋값 10% 하락하면 3만2천가구, 임대보증금 반환 못해” (연합뉴스)
 역전세 우려↑…1~2월 거래 아파트 전셋값 2곳중 1곳 하락 (뉴스1)
“전세가 10% 내리면 3만여 가구 보증금 반환 못할 수도” (KBS)
“전셋값 10% 떨어지면, 3만2000가구 보증금 못 내줘” (조선일보)
“전셋값 10% 내릴 때, 3만2000가구는 보증금 반환 어려울 것” (경향신문)

반면 MBC(한국은행 “전셋값 더 떨어져도 역전세난 우려 크지 않아”), JTBC(아파트 절반 전셋값 ‘뚝’...“역전세난 우려 크지 않아”) 등은 오히려 우려가 크지 않다는 정반대 제목을 달았다. 두 매체는 연합뉴스 등 다수 매체가 생략한 대목을 제목에 반영했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과 비교하면 두 매체만 충실하게 접근한 셈이다.

▲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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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전세가격 하락은 일차적으로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나, 임대가구의 재무건전성이 대체로 양호한 점에 비추어 관련 리스크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대가구들의 소득 구성을 보면 고소득 가구 비중이 2018년 3월 기준 64.1%, 금융부채가 있는 임대가구 중에서는 70.7%로 나타났다. 빚을 내 집을 산 뒤 전세로 내놓은 가구의 경우 10명 중 7명이 고소득자라는 뜻이다. 총자산 대비 총부채 비율이 100%를 초과,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가구 비중은 2018년 3월 기준 0.6% 수준에 그쳤다.

보고서의 주된 내용은 전셋값 하락세가 이어지는데도 현재로선 임대가구의 보증금 반환 능력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2채 중 1채 꼴로 하락했다. 하락세는 꾸준하다. 전국 아파트 가운데 2년 전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아파트는 2016년 10.2%에서 2017년 20.7%, 2018년 39.2%를 거쳐 올 1~2월 52.0%에 달했다.

물론 위험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실물자산이 아닌 금융자산만을 두고 보면 반환 능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다는 진단이다. 건물 주인이 보유한 금융자산 중에서 보증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2년 3월 71.3%에서 6년 만에 78.0%로 올랐다. 금융부채가 있는 임대가구는 이 비율이 91.6%까지 올랐다. 보증금을 반환하려면 가진 금융자산 대부분을 털어야 한다.

이에 한국은행은 “전세가격이 추가 조정되더라도 금융시스템 안정성 측면에서의 위험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전세가격이 큰 폭 하락한 지역이나 부채 레버리지가 높은 임대주택 등을 중심으로 보증금 반환 관련 리스크가 증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사업팀장은 “현 시점에서 전세가가 더 올라가는 게 문제지 하락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그렇게 위험하지 않지만 언제든 위험해질 상황에 대비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맞다. 시장이 위축되면 우려가 더 커진다는 시각은 소비자(세입자)가 보기에는 와닿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성달 팀장은 “전셋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세입자 개개인은 이를 판단하고 들어간다. 다만 본인이 리스크를 감당하고 들어가더라도 크게 우려될 경우를 대비해 정부가 제도 손질을 해줘야 하는데,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 보장의무제’ 같은 것들은 계속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정부가 만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언론이) 대책을 강구하는 게 아니라 주택시장이 무너지면 위험하다고 볼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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