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불신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마약과 성매매, 불법 촬영에 탈세 의혹이 연예계 인사와 엮여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배후에 공권력까지 있어서다.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곰팡이”(14일 정의당 논평)로 전락한데는 자신들 책임이 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19일 경찰이 클럽 ‘버닝썬 사태’ 신고자인 김상교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과정에서 의료조치를 하지 않고 미란다 원칙도 고지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강남경찰서는 김씨의 새로운 강제추행 의혹을 김씨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언론에 먼저 발표하기도 했다. 

▲ 서울 강남경찰서. 사진=노컷뉴스
▲ 서울 강남경찰서. 사진=노컷뉴스

피해자 신고도 없었고, 피해자의 신원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강남서가 CCTV를 보고 김씨 혐의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강남서가 김씨를 보복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씨는 자신이 폭행 피해자라며 ‘피의사실 공표’ 등으로 강남서 경찰들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김씨 사건이 강남서 관할이다. 

여론을 의식한 경찰은 ‘버닝썬 게이트’ 수사 인력을 대규모로 꾸렸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은 수사당국이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20일 “강력한 의지 표명에 비해 내용의 구체성이 떨어진 ‘맹탕 기자회견’”이라며 “전날 나온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복명·복창’하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버닝썬 게이트’의 핵심은 경찰과 연예인·사업가와의 유착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구속영장 청구·압수수색 등 ‘강경 조치’를 비롯해 수사 현황을 언론에 흘려 여론전을 펼치지만 대부분 핵심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 15일자 한겨레 만평
▲ 15일자 한겨레 만평

경찰은 마약류 투약·유통 혐의로 이문호 버닝썬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19일 이를 기각했다. 마약 유통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관련자 진술 정도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사 의지’만 내비쳤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1일 가수 정준영씨가 불법촬영 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지만 경찰이 이를 비호한 정황도 드러났다. 피의자를 특정할 수 있으면 웹하드 등 저장매체까지 확인해 증거인멸을 막아야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제보자로 추정되는 사설 포렌식 업체만 압수수색했다. 역시 ‘보복성 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작 정씨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경찰조사를 받았다.

승리는 두 차례 경찰 조사 받은 게 전부다. ‘경찰 유착’의 핵심인물인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도 출국금지조치만 받았다. 이문호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19일 승리와 유 전 대표는 각각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카톡방 대화를 ‘허풍’ ‘허세’ 정도로 표현하며 도박·성매매 알선·경찰 유착 등의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벌써 버닝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50일이 훌쩍 지났다.

경찰에게 시민들은 시쳇말로 ‘뼈를 깎는 자성’을 기대한다. 현재로선 ‘윤규근 총경-아는 사업가-유인석 전 대표-다른 연예인들’이 연결고리다. 이 부분을 확실하게 밝히고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련 수사는 더디게 진행 중이다. ‘아는 사업가’의 존재도, 다른 경찰 고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승리 카톡방에 등장한 ‘경찰총장’을 윤규근 총경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도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경찰총장’을 ‘경찰청장’의 오기로 보는 게 국민 다수의 관점인데 난데없이 보통 사람들이 쉽게 부르지 않는 직급인 ‘총경’이 등장했다. 

30대 사업가 유인석 전 대표가 경찰 고위직을 뒷배로 둔 것도 의심스럽지만 음주운전·불법촬영 수사·주점 단속 등을 무마해주는데 고작 경찰서장급 1명만 등장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정의당은 최근 신뢰를 잃은 경찰을 가리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곰팡이'라고 꼬집었다. 사진=노컷뉴스
▲ 정의당은 최근 신뢰를 잃은 경찰을 가리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곰팡이'라고 꼬집었다. 사진=노컷뉴스

윤 총경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 당시에도 유 전 대표 부부를 만났다. 자연스레 시선이 ‘총경’ 윗선으로 간다. 경찰이 이 윗선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면 의혹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찰이 이 윗선을 밝히기란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총경 이상 고위직을 수사하기 쉽지 않고 이미 증거인멸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이 이번 유착 건에 직접 개입할 가능성도 적다. 지금도 경찰 유착 정황이 드러나고 있어 경찰을 향한 여론이 좋지 않은데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슈라지만 한겨레는 “검찰이 굳이 나서 오해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한 부장검사의 말을 전했다. 검찰 역시 ‘김학의 성접대’이슈로 떳떳한 처지가 아니라 경찰과 전면전을 벌이기도 부담스런 상황이다.

서울경찰청은 수사인력을 기존 13팀 126명에서 16팀 152명으로 확대했다. 경찰 유착 수사 쪽엔 4팀 42명에서 6팀 56명으로 늘렸다. 그러면 시민들이 경찰의 ‘선의’를 믿어줄까. 

정준영씨의 불법촬영 증거를 조작하려했던 성동경찰서 채아무개 경위는 며칠째 지면에서 사라졌다. 반면 박한별·승리 등 연예인 얼굴이 포털을 도배했다. 의혹이 상당부분 밝혀진다고 신뢰를 회복할지 의문이다. 어쩌면 진실이 모두 드러났을 때 문제가 더 커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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