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명단이 담긴 ‘장자연 문건’의 유일한 증언자 배우 윤지오(32)씨가 여러 언론에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외면하는 언론이 있다. 사건에 사주 일가가 연루된 조선일보다.

고(故) 장자연씨의 동료배우인 윤씨가 처음으로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고 증언에 나섰던 지난 5일부터 보름이 지난 20일까지 조선일보 지면에 ‘윤지오’ 이름 석 자는 없었다.

반면 중앙·동아일보는 보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13일자 12면에서 대검찰청 산하 과거사진상조사단에 출석한 윤씨 발언을 지면에 담았다. “장자연씨가 생전에 작성한 문건에서 특이한 이름의 국회의원과 같은 성을 쓰는 언론인 3명을 봤다”는 내용이었다.

▲ 동아일보 19일자 5면.
▲ 동아일보 19일자 5면.
중앙일보도 같은 날 “윤씨가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에 문건에 등장한 정치인 1명과 조선일보사 관련자 3명 등 4명을 특정해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두 매체 가운데 보다 적극적인 쪽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19일자 5면에서 다시 윤씨 발언을 실었다. 윤씨는 전날 조선일보 출신으로 민간기업 임원을 지낸 조아무개씨의 강제추행 혐의 공판에 출석했다.

동아일보는 19일자 5면 제목을 “장자연 동료 ‘10년만에 처음으로 희망 생겨’”로 뽑고 “신문기자 출신 A씨(조씨)는 2008년 8월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가라오케에서 장(자연)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6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20일자에서도 왕종명 MBC 뉴스데스크 앵커가 스튜디오에 출연한 윤씨에게 문건 속 인물의 실명을 밝히라는 질문을 던졌다가 사과한 내용을 보도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윤씨와 장자연 사건에 집중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침묵하고 있다. ‘윤지오’씨 이름을 지면에서 찾을 수 없었다. ‘장자연’ 이름마저 외면할 수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장자연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19일자 1면과 3면에 실렸다. 조선일보는 장자연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19일자 하단 배치된 보도(“김학의 사건, 특수강간 혐의 적용땐 공소시효 남아”) 일부다.

“장자연씨 사건은 2008년 무렵 장씨가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의혹이다. 장씨는 2009년 3월7일 사망했다. 가해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강간죄나 강제추행죄의 경우 공소시효(10년)가 지나 처벌이 어렵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가 강제로 성관계를 갖도록 했다면 형법상 강요죄가 적용되지만 이 역시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 유일하게 공소시효가 남은 것은 강제추행치상 또는 강간치상(15년)이다. 그러나 장씨가 남긴 문건이나 관련자 진술에서는 아직까지 이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 조선일보 19일자 3면.
▲ 조선일보 19일자 3면.
사주 일가 이야기는 없었다. 가해자 처벌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같은 지면 또 다른 기사(“文대통령 ‘과거 수사 과정에 국민들이 분노’…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발언 영상 녹화해 배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목숨을 끊은 신인 배우 장씨가 생전에 작성했다는 문건을 매니저가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문 대통령이 이날 검경에 사실상 수사 지시를 내린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정국 타개용’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청와대는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을 추진해 왔지만 일자리·경제 상황은 나빠지고 있고, 비핵화 협상과 남북 관계 개선도 벽에 부딪혀 있다. 한·미 공조 균열 논란, 우리 정부의 ‘중재론’에 대한 의구심도 국내외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장자연 이야기를 하면서 딴소리다. ‘정국 타개용’으로 성폭력 사건을 꺼낼 정도로 문재인 정부가 막 나간다는 건가. 장자연 사건은 국민이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건이라는 점, 자사 사주가 연루됐다는 사실 등을 누락하다보니 논리가 꼬인다.

▲ TV조선 뉴스9 18일자 리포트 갈무리.
▲ TV조선 뉴스9 18일자 리포트 갈무리.
TV조선 보도는 어땠을까. ‘윤지오’ 이름을 검색해보면 지난 18일 메인뉴스 ‘뉴스9’에서 보도한 “공소시효 남은 사건이 재수사 1순위 될 듯”이라는 리포트가 나온다.

TV조선은 “고 장자연 사건의 경우 공소 시효가 이미 만료된 상황”이라며 “다만 장씨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된 조모씨만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다. 유일한 목격자인 배우 윤지오씨는 오늘 조씨 재판에 출석해 직접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국 타개용’으로 장자연 사건을 꺼냈다고 분석했지만 흥미로운 점은 문 대통령 발언이 없었다면 조선미디어그룹 독자들은 이 사건 소식을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지난 18일자 TV조선 뉴스9 한줄속보 제목은 “文, 김학의·버닝썬 사건 진상규명 지시”였다. 장자연 사건이 빠진 채 속보가 전달됐다. 감추는 자가 범인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자사와 연관된 사건에 침묵하지 않아야 신뢰 받을 수 있다.

▲ 지난 18일자 TV조선 뉴스9 한줄속보 제목은 “文, 김학의·버닝썬 사건 진상규명 지시”였다. 장자연 사건이 빠진 채 속보가 전달됐다.
▲ 지난 18일자 TV조선 뉴스9 한줄속보 제목은 “文, 김학의·버닝썬 사건 진상규명 지시”였다. 장자연 사건이 빠진 채 속보가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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