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동안 교단은 어떻게 처리했을까. 같은 교회에 다니던 교인 조카를 성폭행하려 했던 서울의 한 교회 박아무개 목사의 사례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법원은 지난해 8월 박 목사의 강간미수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그는 여전히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박 목사 징계 수위를 정하는 노회(교회들의 지역연합체) 재판국은 지난 1월 그에게 목사직 박탈이 아닌 ‘정직’ 처분만을 내렸다.

한겨레 취재 결과 이처럼 상식과 동떨어진 징계의 배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교회 재판국 구성이 있었다. 재판국원 7명 중 재판국장을 포함한 3명이 형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써주며 가해자를 두둔하던 교회 권력자들이었다.

노회 재판국장 한아무개 목사는 한겨레 취재에 “재판국장이 되기 전에 썼던 탄원서”라고 강변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해자에 편에 섰으면서도 재판국장을 맡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교회 간부들도 이에 동의했다는 말이다. 비상식이 상식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으며 불법 행위마저도 용인되는 ‘그들만의 세상’이 바로 한국사회 교회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 1월 JTBC 보도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아동 청소년 성범죄로 처벌을 받은 목사만 모두 79명에 달한다. 그런데 이 가운데 21명은 여전히 ‘성직자’를 자임하며 목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실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목사 25명을 제외하면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 박준용 한겨레 탐사팀 기자. 사진=강성원 기자
▲ 박준용 한겨레 탐사팀 기자. 사진=강성원 기자

박준용 한겨레 탐사팀 기자는 성범죄 실형을 받은 목사들이 왜 계속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고 취재를 시작했다. 전병욱 전 삼일교회 목사 성범죄 처벌을 촉구하며 지난해 출범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관계자를 만나 ‘교회에도 목회자를 징계하는 교회재판(권징재판) 있는데 너무 황당하게 재판이 이뤄져 사실상 제대로 처벌받은 가해자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언론에 보도된 목회자 성범죄 31건을 집계한 결과, 교단이 가해자의 목사직을 박탈(면직)한 경우는 5건뿐이었다. 나머지 사건에서 가해자는 목회를 일시 중단하거나 자진 사직하는 방법으로 목회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권징재판은 사회법과 같이 3심제로 상소도 가능하게끔 표면적으론 심급 체계를 갖췄다. 하지만 박 기자가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 4명의 교회재판 관련 기록을 입수해 살펴보니 교단들은 ‘성폭력 목사 감싸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 기자는 “교인이 아닌 외부 사람 입장에선 외려 교회가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범죄로 실형을 받을 정도면 교회에서 아예 퇴출돼야 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심지어 실형을 받을 때까지 교단이 모를 때가 많고 교단에 실형 받은 목사 이름을 알려줬을 때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교회 성범죄 피해자들은 교회를 떠나고 이후에도 계속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가해자들은 검찰에서 불기소되거나 교회에서 ‘면죄부’를 받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목회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되레 당당했다고 박 기자는 전했다.

“범죄를 한 번 했다고 해서 계속해서 저지른다는 데이터가 있어요?”, “옛날 같으면 문제도 아니잖아요? 그냥 아이가 예쁘다고 그냥 뽀뽀했던 건데”, “예쁘면 안아주고 그런 것이 인간미지. 사람 살아가는 세상이지. 뒤에서 한 번 안아준 것이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만약에) 전과 있다가 형 치르고 나와 장사하면 장사 못 하는 거예요?”

10대 아동에게 성범죄를 저지르고 유죄 판결을 받은 목사들이 언론에 내놓은 해명들이다. 교단도 모르는 성범죄 가해자들과 판결문을 교인들이 알기는 더욱더 어렵다. 피해자들만 소리소문없이 교회에서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지난해 3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장에 나붙은 대자보가 교회 성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기독교반성폭력센터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주최로 지난해 3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8분 이어말하기’ 행사장에 나붙은 대자보가 교회 성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사진=기독교반성폭력센터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소속 J목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 심진영(가명)씨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J목사가 찜질방에서 몸을 만지는 등 수차례 강제추행을 했다. 피해를 겪은 뒤 교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들을 수소문해보니 나와 같은 피해를 경험한 이들이었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알리거나 호소하더라도 가해 목회자를 두둔하는 주변 교회 간부들과 목사 사모 등이 ‘피해자가 스스로 거기(가해 장소)에 가지 않았냐’는 식으로 주장하면 외려 피해자가 설 곳이 없어진다”며 “교단의 권력 있는 목사나 장로들이 ‘그루밍 성범죄’(가해자가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가하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50대 이상 남성이 대부분이어서 교회재판에서도 복수의 피해자가 나와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2차 가해 문제도 심각하다. 교회재판이 열리면 이미 서면으로 제출한 피해 상황을 재차 구체적으로 물어보는가하면 피해자가 교회 내부에서 문제제기했을 때 가해자와 연결된 교인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두려움도 감내해야 한다.

박 기자는 “교회 내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을 경우 주변 사람들이 외려 ‘교회를 위해서 네가 참으라’는 식으로 부드럽게 얘기하지만 이는 문제 은폐를 종용하는 것”이라며 “성범죄 피해가 교단 권력자들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평범한 주변 교인에게서도 일어나는 2차가해 구조를 더 취재해서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지난해 6월 기독교 매체 ‘뉴스앤조이’와 함께 교회 성폭력 대처 가이드북 ‘미투, 처치투, 위드유’를 발행했다. 이 가이드북에는 교회 성폭력 제3자를 위한 가이드 등 사건 발생 후 피해자·가해자·주변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소개하고 있다.

[관련기사 : 성폭력 목사에게 면죄부…그들만의 교회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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