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중국발 고농도 미세먼지.’ 올봄 미세먼지를 수식하는 흔한 표현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최악’이라는 통계, 그리고 ‘중국발’이라는 원인 분석, 인체 영향을 고려한 ‘고농도’라는 단어다. 합쳐 놓으면 입에 착착 감겨 제목 뽑기 딱 좋은 표현이지만 뜯어보면 미세먼지의 복잡성이 고스란히 담긴 말이다. 이 세 단어를 조목조목 살펴보자.

첫 번째는 ‘최악’이다. 지난 5일 대부분 언론이 ‘최악의 미세먼지’를 보도했다. 전국적인 초미세먼지 관측을 시작한 2015년 이후 최고 농도를 기록한 날이다. 분명 4년이라는 기간에 한정된 ‘최악’이지만 이를 왜곡한 표현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본적 없던 하늘 모습”이라는 DJ 멘트부터 “이제는 일상이 돼 버린 미세먼지”라는 기사 제목도 뜯어보면 현 수준 미세먼지가 과거에는 없던 일로 규정한 표현이다. 과연 그럴까.

“먼지투성인 저 밤하늘을 우리 모두가 걷어낸다면 아이들의 눈빛에는 반짝이는 별이 떠 있겠지.” 요즘 상황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1993년 발표된 ‘내일은 늦으리’라는 곡의 가사다. 실제 공식 관측 이전인 1990~2000년대에 서울시나 개별 학자들이 측정한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현재 국내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은 맞지만 장기간 변화 추이로 봤을 때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미세먼지에 대한 대중의 현실 인식을 좌우할 수 있는 만큼 공포와 좌절이 아닌 건강한 경각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신중한 표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 지난 3월6일자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1면에 실린 기사 갈무리. 디자인=안혜나 기자
▲ 지난 3월6일자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1면에 실린 기사 갈무리. 디자인=안혜나 기자
두 번째는 ‘고농도’다. 많은 사람이 미세먼지는 고농도 시기가 문제라고 말한다. 어느 수준 이상의 농도가 돼야 미세먼지가 우리 몸에 해로울 거란 인식이다. ‘평균의 함정’이란 표현도 등장했다. 농도가 낮은 날은 해롭지 않기 때문에 연평균 농도는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정작 이를 연구하는 보건학자들의 의견은 다르다. 보건학자들은 미세먼지가 단기간 고농도일 때만 해롭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미세먼지는 매우 낮은 농도일 때부터 해로우며 장기간 들이마신 양, 즉 평균 농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공통된 인식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의 원인과 대책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도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세 번째는 ‘중국발’이다. ‘고농도’와도 관련된 부분이다. ‘미세먼지 문제=고농도 시기=중국발’이 공식처럼 통한다. 실제 고농도 시기에는 중국 영향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미세먼지 유해성은 평균 농도에 더 큰 영향을 받으며 평균 농도에서는 국내 발생과 중국 유입이 비슷한 비율을 차지한다.

문제는 국내발과 중국발 가운데 어느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냐에 대한 판단이다. 당장 우리가 중국발 미세먼지를 강제적으로 줄일 방법은 없다. 관련 국제법이나 조약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협력 연구 등을 통해 함께 줄여나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한 실정이다. 과거 국가 간 환경오염 분쟁 사례를 보면 이런 협력 연구를 통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의미 있는 배출 감소로 이어졌다. 물론 이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줄일 수 있는 나머지 절반은 제쳐두고 국내에서 ‘중국발 대책 촉구’만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 외는 격이 아닐까.

▲ 이정훈 KBS 기자
▲ 이정훈 KBS 기자
미세먼지에 대한 대중의 감정은 공포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최악의 공기 질이라는 공포와 중국에 대한 분노다. 누가 이들에게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켰을까. 미세먼지는 그 자체로 해롭다. 그러나 그 이상의 해로운 감정을 자극해 사람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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