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지식인들이 사뭇 세련을 가장하며 즐겨 쓰는 ‘금언’이 있다. 20대에 좌파 아니면 가슴이 없는 사람, 40대에도 그러고 있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란다. 표현이 다소 달라지기도 한다. 서른 살 전에 좌파 아닌 사람은 감정이 없고 서른 넘어도 그런 사람은 이성이 없다며 짐짓 회심의 미소마저 짓는다.

새삼 그 말이 떠오른 까닭은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라며 날마다 부르대는 자한당 원내대표와 당 대표를 보면서다. 나경원과 황교안, 두 사람은 젊은 시절 아무래도 좌파는 아니었을 터다. 보수적 정치 금언에 따르면, 그 뜻은 명료하다. 가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머리는 있을까. 유감이지만 선뜻 긍정할 수 없다. 명색이 ‘제1야당’ 지도부인데 황교안의 관용어를 잠시 빌리자면 ‘안타까운 일’이다. 나경원의 일상을 빌려 눈 동그랗게 뜨고 개탄하는 미소 지을 일인 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짚어보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이 위헌이다? 문재인이 좌파독재자다? 굳이 따지자면 두 사람이 사법고시에 골몰할 때 정부가 위헌적인 독재 정권이었다. 황교안과 나경원은 실제 엄존했던 ‘헌법파괴 독재자’에 돌멩이 하나, 아니 비판 한마디라도 벙긋했을까.

▲ 지난 3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연석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 지난 3월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좌파독재 저지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비상연석회의가 개최됐다. 사진=자유한국당 홈페이지
물론 이해할 수도 있다. 학우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섰을 때 사시 보느라 교양서도 읽지 못했을 성싶다. 다만 모든 사시 합격자가 그렇지는 않다. 인권변호사도 적잖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폭넓게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확신한다. 근거는 간명하다. 역사나 사회과학 책을 읽었다면 작금의 모습이 외려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심을 넘어 정말 머리가 없다는 확증 아닌가. 반민특위까지 살천스레 들먹이는 나경원의 동공은 안쓰럽다. 그도 한때는 똑똑했을까.

나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과 통일 정책에 문제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와 노사간 힘의 균형 정책을 과감하게 펴나가길 주저하고 있는 ‘촛불 정부’에 ‘제1야당’이 엉뚱한 색깔공세만 편다면 그 결과가 무엇인가는 과학이다. 바로 ‘민생 파탄의 영구화’다.

미지근한 소득주도성장 정책마저 ‘좌파’로 몰아치는 황교안과 나경원에게 묻고 싶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로 돌아가자는 뜻인가.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경제정책, 어떤 통일정책을 펴자는 깜냥인가. 더구나 문재인이 좌파라면 정의당은 무엇인가. 극좌란 말인가. 유럽은 죄다 ‘극좌 빨갱이국가’일까.

학문적 진실은 분명하다. 한국에선 정의당이 합리적 진보정당이다. 정의당 오른쪽에 더민주당이 주춤하고, 자한당은 더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황교안과 나경원이 진정 민생파탄과 남북관계를 걱정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밝힐 일이다. 두 사람과 이명박‧박근혜의 차이다. 우리 모두 생생하게 지켜보았듯이 이명박‧박근혜 9년은 ‘국민성공시대’도 ‘국민행복시대’도 아니었다. 민생경제와 남북관계가 정말이지 파탄나지 않았던가. 황교안은 그 파탄만이 아니라 국정농단에도 책임이 크다.

나는 칼럼을 써오며 ‘이 땅의 보수는 죽었는가’를 몇 차례 물어왔다. 한낱 기득권의 수구적 행태만 과시해 온 자칭 ‘보수’가 거듭 나야 이 나라가 온전히 나아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세력은 진화할 섟에 무장 퇴화하고 있다. 도통 부끄러움조차 모른다.

▲ 지난 3월12일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석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3월12일 오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석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내일은 진정한 보수와 진지한 진보가 마주 앉아 숙의할 때 열린다. 지금의 황교안과 나경원은 전혀 아니다. 대통령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따위로 몰고 논란이 불거지자 외신보도 인용이라고 언구럭 부린다. 눈 가리고 아옹이다. 그 ‘외신’은 적어도 국민 과반수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미국 통신사에 취업한 한국인이 쓴 함량 미달의 기사다.

간곡히 두 사람에 호소한다. 제발 공부 좀 하라. 진심으로 남쪽 민생을 우려해서다. 진정으로 북쪽 인민을 걱정해서다. 보수의 품격이 아쉬운 자욱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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