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저녁 서울에서 수백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던 지하철이 탈선했다. 노후차량 수명 규정을 폐지한 데 더해 유지보수 인력을 연거푸 감축한 과거 조치가 중대 지하철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이 수차례 지적해온 부분이지만 안전규제는 여전히 미비하다.

서울 지하철 7호선은 이날 저녁 7시22분께 수락산역을 떠나 도봉산역을 향해 속도를 줄이다 철길을 벗어났다. 차량엔 290여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다. 승객들 증언에 따르면 “쿵” “두두둑”하는 소리가 났고, 2호차가 흔들려 승객들이 3호차로 급히 피했다. 열차는 한 쪽으로 기운 채 한동안 끌려갔고, 검은 연기와 함께 냄새가 피어올랐다. 119구조대가 긴급출동해 모두 30여 분 만에 대피했다. 70대 노인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차량은 이튿날 새벽 복구돼 첫차부터 다시 운행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이번 지하철 탈선은 중대 사고다.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기에 더 그렇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김원영 차량사무국장은 “열차가 본 궤도를 이탈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승객을 태운 상태인지 여부가 중요한 기준인데, 차가 승객을 싣고 탈선하면 지하철·철도 등 전동차 운전 상황에선 가장 큰 사고 중 하나로 본다”고 했다.

▲ 지난 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에서 탈선한 차량 승객들이 대피하는 모습. 사진=사고차량에 탑승한 시민 제공
▲ 지난 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에서 탈선한 차량 승객들이 대피하는 모습. 사진=사고차량에 탑승한 시민 제공

▲ 지난 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에서 탈선한 차량 승객들이 대피하는 모습. 사진=사고차량에 탑승한 시민 제공
▲ 지난 14일 저녁 서울 지하철 7호선 도봉산역에서 탈선한 차량 승객들이 대피하는 모습. 사진=사고차량에 탑승한 시민 제공

사고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서울교통공사는 사고의 직접 원인은 열차 바퀴가 레일을 벗어난 데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에 들어갔다. 한편 현장 노동자들은 노후차량과 안전관리 소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여러 차례 보도했다. 노후차량이 규정과 예산이 미비한 탓에 교체가 미뤄지고 있고, 이것이 운행장애와 사고를 일으킨다고 짚었다. 서울교통공사는“현재 규정과 계획에 따라 노후차량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사는 2024년까지 노후차량 교체 계획을 세우고 2호선부터 이행에 들어갔다. 전체 2조 5천억원 규모 예산에서 서울시가 매년 5~10%가량을 지원한다. 국비 지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고차량은 지난 1996년 서울 7호선 지하철이 생길 때 운행을 시작해 23년 됐다. 현장에선 대개 연식이 20년 넘으면 ‘노후차량’이라고 부른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7호선 전체 차량 577량 가운데 177량, 즉 30.6%가 첫 운행한 지 20년이 넘었다. 1~8호선 전체 차량 가운데 절반(54%)이 노후차량이다. 언론에 난 사고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엔 25년이 돼가는 지하철 전동차 2대가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추돌‧탈선해 400명 가까이 다쳤다. 지난해 10~12월초 사이엔 수도권 지하철에서 1달 새 6번 이상 사고가 났다.

애초 철도안전법이 정한 전동차 내구연한은 15년이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폐차하도록 해 전동차도 이를 전제로 설계됐다. 그러다 내구연한 규정은 연거푸 완화됐다. 1990년대 초 20년으로, 그 뒤 3차례에 걸쳐 2009년엔 40년으로 대폭 늘었다. 2014년 3월에는 이 규정이 완전 폐지됐다. 차량 안전진단을 받으면 무기한 운행할 수 있게 됐다.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4년 5월3일 한겨레 1면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4년 5월3일 한겨레 1면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5년 10월7일 매일경제 14면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5년 10월7일 매일경제 14면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7년 10월18일 경향신문 12면
▲ 언론은 차량 노후화와 유지보수 인력 부족 문제를 거듭 지적했다. 2017년 10월18일 경향신문 12면

차량 수명을 늘리려면 유지보수를 엄격히 해야 한다. 그러나 안전 관리에 대한 투자도 덩달아 줄었다. 2008년 오세훈 시장은 ‘공무원 3% 퇴출’ 정책을 펼치며 서울 지하철 유지보수 인력을 감축했다. ‘창의경영’을 목표로 한 조치였다.

박근혜 정부 땐 ‘총액인건비제’를 실시하면서 안전 예산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졌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가 정한 범위 안에서 인건비를 해결하도록 하면서, 지자체는 정비 인력을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로 외주화하게 됐다. 남은 유지보수 인력들은 ‘다기능화’라는 이름으로 2가지 이상의 업무를 해야 했다. 안전 관리 인력의 전문성은 더 낮아졌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1~8호선 차량 안전업무 인력은 2009년 3094명에서 2017년 2777명으로 10.2% 줄었다. 2017년 1~4호선과 5~8호선 운영기관이 서울교통공사로 통합되고 직고용을 거치며 인력 규모는 250명 가량 늘었다. 현재 1~8호선 차량을 유지보수하는 직원은 3028명이다.

서울교통공사노조 김태균 차량본부장은 “정부와 지자체가 인력을 줄이고 노후차량 연한은 늘리려 할 때마다 노조가 결사 반대하며 싸웠다”며 “지하철 유지보수 등 안전 인력을 비용 관점으로 보고 줄였고, 그 결과가 운행 장애와 사고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관계자는 차량 안전성을 보장할 규정이 새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동차 내구연한을 폐지할 거라면,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할 최소한의 인력 규모라도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새 차량 구매 비용 일부를 국비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는 지자체와 교통공사가 노후차량 교체비용을 함께 부담한다. 새 노선에 들어서는 차량을 구매할 땐 정부가 일부 부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현재 현장에서 일하는 전 교통공사노조 관계자는 “상왕십리역 추돌사고부터 구의역 스크린도어 끼임 사고까지 언론에는 많이 보도됐다. 서울시의회 주관 토론회도 열었지만 바뀌는 건 정말 드물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도 내구연한 지난 노후 선박을 들여와 운행한 것 아니었느냐”며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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