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장 등이 참석한 민속문화재 반환 행사에서 문화재를 거꾸로 세워놓고 행사를 진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 5일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300년 세월 넘는 동안 전북 부안 마을을 지켰다는 당산((堂山·돌로 만든 솟대) 위 돌오리상을 16년 만에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동문안 마을에 반환하는 행사를 열었다.

당산 위 돌오리상은 나무로 만들어진 솟대와 달리 돌 재질로 만들어져 민속문화재 안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통한다. 문화재 공식 명칭은 ‘부안 동문안 당산’이다.

당산 위에 있었던 돌오리상은 지난 2003년 사라졌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은 지난 2월초 충북 진천에서 청주로 넘어가는 언덕에 돌오리상이 있다는 제보 전화를 받고 주변 일대를 수색해 돌오리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5일 문화재청장과 부안군수 등이 참여하는 반환 행사를 열었던 것이다.

그런데 행사에서 문화재를 공개했을 때 돌오리상은 테이블 위에 거꾸로 뒤집어져 있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과 권익현 부안군수는 돌오리상의 배가 하늘로 향해져 있는 상태에서 오리의 꼬리와 부리를 잡았다. 반환행사에 관심은 컸다. 언론은 300년이나 된 중요 문화재를 16년 만에 찾았다며 거꾸로 놓여진 돌오리상 사진을 실었다.

한 언론은 아예 거꾸로된 돌오리상 사진을 가지고 가상으로 당산 솟대에 올려진 모습을 그래픽화해 싣기도 했다. 거꾸로 세워 돌오리상을 공개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거꾸로 놓여진 돌오리상 옆에서 “오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물”이라며 “마을에서 돌오리상을 잘 지켜주고, 당산제를 부활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국 솟대를 찾아 50년 동안 연구한 황준구씨는 “문화재 전문가들의 고증을 받아서 솟대에 올려놓을 테지만 반환 행사에서 돌오리상을 거꾸로 세워놨다. 문화재청장과 부안군수가 돌오리상 옆에서 웃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황준구씨는 돌오리상이 분실되기 전에 솟대에 올려진 돌오리상의 다수의 문헌과 사진을 제시했다. 대성출판사의 ‘솟대’라는 책을 보면 반납 행사에서 공개한 돌오리상이 거꾸로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위) 지난 5일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 반환 행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거꾸로 놓여진 돌오리상을 보고 있다.  (왼쪽) 돌오리상이 분실되기 전 솟대에 올라와 있는 모습. (오른쪽) 반환 행사에 위-아래 거꾸로 공개된 돌오리상 사진을 가지고 한 지역 언론이 가상해 만든 복원 사진.  ⓒ 황준구씨 블로그.
▲ (위) 지난 5일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 반환 행사에서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거꾸로 놓여진 돌오리상을 보고 있다. (아래 왼쪽) 돌오리상이 분실되기 전 솟대에 올라와 있는 모습. (오른쪽) 반환 행사에 위-아래 거꾸로 공개된 돌오리상 사진을 가지고 한 지역 언론이 가상해 만든 복원 사진.
ⓒ 황준구씨 블로그.

황씨는 “한 나라의 문화재를 통솔하는 문화재청장과 부안 토박이 군수가, 국가 중요문화재를 뒤집어 놓고, 공식 행사를 진행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황씨는 “(반납 행사를 한) 마을 이장한테 신고했더니 오리의 배꼽 부위에 쇠막대기를 끼우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쇠막기가 빠져 있어 바로 세우려고 하니까 뒤뚱뒤뚱 거려서 그냥 배를 위로 하고 공개했다고 한다”며 “그러면 받침대를 만들어서라도 정상적으로 위치해놓고 공개했어야 하는데 성의가 없었다. 형식적인 행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뒤집어놓고 중요 문화재의 반납 행사를 했다는 것부터 무지한 것이다. 만약 공개한 문화재가 청자라고 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겠느냐”라며 “민속문화재가 미신으로 취급되고 관심이 없어서 전통문화재로서 대우를 못 받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최초 돌오리상을 거꾸로 공개했다는 지적에 처음엔 바르게 돌오리상을 세워 공개했다고 주장하다 행사사진을 검토한 뒤 거꾸로 돌오리상을 세워 공개한 게 맞다고 시인했다.

문화재청 대변인실은 “돌오리상의 무게가 있고 야외에서 진행한 것이기 때문에 잠깐 (거꾸로) 올려놓은 것이다. 반납행사를 마친 뒤 주민들께도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이 설명을 했다”면서 “올바르게 세워 공개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황준구씨는 돌오리상을 찾은 경위도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지난 2015년 경기도에 소재한 한 박물관에 돌오리상으로 보이는 돌이 전시되고 있는 사진을 발견해 부안군청에 신고했다. 그리고 담당 공무원이 수차례 박물관을 찾아가 돌오리상을 반납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박물관 측은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3년이 흘러 2018년 3월 바뀐 담당 공무원이 분실된 문화재는 문화재청으로 신고하라고 해서 문화재청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 경기도 소재 한 박물관에 전시된 돌오리상 추정 사진.
▲ 경기도 소재 한 박물관에 전시된 돌오리상 추정 사진.

황씨는 지난 2018년 3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찾아와 분실된 돌오리상과 박물관의 돌오리상이 일치하는지 증빙자료를 요청해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올해 문화재청이 돌오리상을 찾아 반납행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고 황씨는 전했다.

황씨는 “전국 500여개 솟대 중 전북 부안의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과 비슷한 건 한개도 없다. 유일하게 돌로 만든 솟대로 300년된 문화재”라고 말했다. 경기도 한 박물관에 전시됐던 돌이 부안 동문안 당산 돌오리상과 일치한다는 얘기다.

황씨는 “박물관 사진을 보고 현장을 찾았지만 다른 오리 형상으로 바꿔놨다. 부안의 돌오리상은 3D 프린터로 찍지 않은 이상 손으로 같은 모양으로 만들 수 없는 문화재”라며 “부안군청에서도 조사를 나가 반납하라고 요구했는데 박물관 측에서 오리발을 내밀었고, 담당공무원이 재대로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가버려서 문화재청에 신고하라는 말을 듣고 신고했는데 두차례 문화재청이 찾아와 조사해가더니 아무런 소식도 없다가 찾았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박물관 쪽에서 문제가 되자 중개상인에게 되돌려주고 중개상인이 중요문화재라서 팔 수 있는 판로가 막히면서 버리고 난 뒤 신고를 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경기도 한 박물관에 돌오리상이 있다는 제보가 있어서 일치하는지 조사를 나갔지만 아니었다”면서 “돌오리상은 신원 불명의 제보 전화를 받고 진천과 청주를 잇는 잣고개 주변 수색해 발견한 것”이라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절도범이 중개상에 돌오리상을 넘기고 난 뒤 판로가 막혀서 버린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지난해 8월 현직 기자(중앙일보)인 정재숙 기자를 문화재청장으로 임명해 파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임명 당시 “생활 속에서 오감을 건드리며 즐기는 문화재, 남북의 미래를 희망으로 손잡게 하는 문화재를 기자정신을 살려 현장에서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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