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대동강 물을 파는 것보다 신기해 보였다. 19~29만원의 4개월 회비를 내고 독서모임을 한다니 과연 그런 수요가 얼마나 될까. 저런 사업이 지속가능하고 확장성이 있을까. 이런 부정적인 선입견과는 달리 독서모임 스타트업인 ‘트레바리’는 무섭게 성장했다.

유료회원이 2015년 40명에서 3년 반 만에 4600명까지 늘었다. 이 회원들이 19만원씩만 내도 4개월 매출이 9억원에 육박한다. 특별강연, 음료 판매 등 부가서비스를 고려하면 연 매출도 상당한 규모다. 이런 성장세와 잠재력을 주목해 지난달 12일엔 소프트뱅크벤처스, 패스트인베스트먼트가 총 50억원을 이 회사에 신규 투자했다.

한 달 전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언론의 주된 수익 모델이 ‘광고’에서 ‘보험’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박수환 문자가 놀랍지 않다] 여기서 보험은 은유적 표현으로 언론이 광고 효과 없는 광고를 유지하기 위해 가진 영향력과 취재력으로 기업을 압박하거나 치켜세우는 상황을 빗댄 것이다.

▲ 트레바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 트레바리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한국 언론에도 트레바리보다 한 수 위의 대동강 물장수가 있다. 포럼 입장권 하나를 300만원 넘게 팔고 기사를 볼 수 있는 아이디 하나를 월 150만원에 판매하는 언론들이다. 이 분야 관계자가 아니면 의아해 할 만한 가격이지만 이런 수익 모델을 처음 만든 언론사들은 10년 넘게 언론계에선 독보적인 수익을 내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의 세계지식포럼은 올해로 20회째를 맞았다. 아이디 판매란 수익 모델을 개척한 더벨은 창사 13년째다. 2017년 기준 영업이익이 매일경제는 250억원, 더벨은 58억원이었다. 물론 두 회사가 만든 포럼과 경제 콘텐츠는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정말 기업들이 포럼과 콘텐츠 가치를 평가해 그만한 가격을 지불하는 것일까. 그게 아니란 것을 포럼 입장권과 아이디를 판매하는 매체의 담당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입장권, 아이디 판매도 ‘보험’이란 수익 모델의 일부다.

그렇다면 언론은 보험이 아닌 어떤 수익 모델을 개척해야 할까. 사실 보험이든 아니든 수익 모델은 정해져 있다. 언론의 수익 모델은 광고, 콘텐츠 유료화, 입장권 판매, 후원, 커머스 등이 전부다. 이렇게 다 알려져 있는데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무수한 언론사들이 유효한 수익 모델 발굴에 실패해 왔다. 온라인에서 미디어 광고 효과가 떨어지고, 콘텐츠는 쉽게 복제 가능해 지불용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익 모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소비를 이끌어 낼 것인지 그 ‘방법론’이 중요하다.

신규 투자 받은 트레바리는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비전을 앞세워 학습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모았다. 비슷한 체험을 하더라도 온라인보단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는 성향을 이용한 것이다.

또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소영 책발전소 대표, 이충걸 GQ 편집장, 천관율 시사IN 기자 등 각 분야에 정통하면서도 한번쯤 만나 보고픈 이들을 클럽장으로 섭외했다. 클럽장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는 소비자도 늘었다.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 윤형중 LAB2050 연구원.
트레바리는 오프라인에서 콘텐츠에 얽힌 관계 형성 기회를 제공하는데 사실 언론사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콘텐츠와 인맥이다. 어쩌면 트레바리는 세련된 방식으로 콘텐츠 유료화와 오프라인 행사의 입장권 판매라는 언론의 수익 모델들을 결합한 셈이다.

언론계 현직에서 벗어나니 습관도 관점도 바뀌었다. 매일 여러 개 보던 종이신문들은 더 이상 챙겨보지 않는다. 이전에도 출입처 기사들을 위주로 읽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신문을 매일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사라졌다.

대신 내가 하는 일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콘텐츠라면 나서서 찾아본다. 돈을 낼 의지도 있다. 퍼블리, 뉴스톱, 폴인, 동아비즈니스리뷰 등의 매체를 보는 이유다. 관심사와 관련된 콘텐츠라면 놓치지 않으려 한다. 스타트업위클리, 뉴닉, 오렌지레터, 판언니 등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이유다.

공익적 보도를 하는 매체면 후원할 의사도 있다. 아직까진 정기 후원하는 매체가 없지만 다 읽지도 않을 한겨레21이나 시사IN과 같은 잡지를 구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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