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를 베네수엘라 상황에 빗대 비판하는 발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2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지난 20세기 실패한 사회주의 정책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부활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도 그 길을 쫓아가고 있다. ‘시장은 불공정하고 정부는 정의롭다’는 망상에 빠진 이 좌파정권이 한국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 6월 tbs 라디오 뉴스공장에 출연해서도 “콜롬비아는 신시장 경제정책을 했고 베네수엘라는 반시장 경제정책을 했다. 지금 콜롬비아가 그저께 OECD 37번째 회원국이 됐다. 베네수엘라는 어떻게 됐는지 보라”고 말했다. 이에 진행자 김어준씨와 우상호 민주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반시장적이고, 사회주의적이냐고 되묻자 나 원내대표는 “저는 반시장적 경제정책을 고쳐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표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이 국가가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사회주의 정책이고, 그 정책을 따른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이 처한 현실을 봤을 때 우리 역시 실패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 원내대표 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를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과 등치시키는 발언이 자유한국당 안에서 쏟아지고 있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8일 “베네수엘라는 세계최대 석유매장국이다. 석유로 벌어들인 수입을 지지층의 환심을 사기위해 포퓰리즘 정책에 쏟아 부었다. 기득권 중심의 노동정책으로 생산성이 추락하고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시장은 망가졌다. 국민은 최악의 고통을 겪는다. 오늘 베네수엘라의 아비규환”이라며 “지금 대한민국은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타고 질주한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몰락시키는 국민고통 열차, 지금 즉시, 멈춰야 한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지난 2월21일 자유한국당 합동연설회에서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베네수엘라에 마두로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문두로가 있다”고 말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3일에도 페이스북에 “우리나라는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위대한 우리 국민이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은 여전하다”고 썼다.

보수 진영도 베네수엘라 정권이 실패했다며 문재인 정부가 전철을 밟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경제 출신 정규재씨는 지난해 12월 “차베스·문재인 한국의 바보들”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콘텐츠에서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경제 붕괴로 인해 머리카락, 모유, 몸까지 모두 팔아 먹을 것을 찾고 있다는 외신을 인용하며 “사실 대한민국이 산유국이고 그 기름이 꽤 펑펑 쓸 만큼 많았다면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은 매우 가난하고 형편없는, 자원은 있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많은 다른 나라들과 같은 수준의 국가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상황이 심각하지만 원인을 제대로 따져야 하고 더욱이 문재인 정부와 일대일로 비교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 게 타당한지 반론이 나온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반시장 정책을 쓰는 건 서방국가의 제재로 고립돼 이를 타개하려고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는 정반대 진단도 가능하다.

하지만 언론 역시 베네수엘라 상황을 제시하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8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은 칼럼에서 “지상에 지옥이 있다면 단연 베네수엘라가 이에 속할 것”이라며 “놀랍게도 지금 문 정권하에서 취해지고 있는 정책 방향은 과거 베네수엘라를 많이 닮았다. 신자유주의를 배격하고 국가주의로 나가고 있는 점, 자본 통제, 참여 민주주의, 민중 권력 강화, 반(反)대기업 정책, 복지 정책 확대 등이 그렇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윤영신 논설위원은 지난해 10월 칼럼에서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는 임금의 급상승은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현 정권이 소득 주도 같은 낡은 이념을 씌운 노선에 집착할수록, 한국 경제는 그간 쌓아온 성장 법칙과 시장 원리가 무너져 쇠락하게 된다”며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집권 후 시장경제를 버리고 분배와 과도한 복지를 폈다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 한 나라 경제를 일으키는 데 수십년 노력이 필요하지만, 망하는 데는 몇 년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 11일 현지 특파원 취재로 “베네수엘라 국가마비 현장”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전두환이 23년 만에 광주 법정에 서는 이슈가 있었지만 국제 이슈를 1면에 배치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 3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
▲ 3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정전으로 치료할 수 없어 콜롬비아 국경도시 쿠쿠타의 에라스모 메오스 대학병원 1층 응급실로 온 베네수엘라 국민들 모습을 전했다. 이어 3면에서도 3000만 국민이 ‘암흑 지옥’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차베스와 마두로 좌파 정권은 국영 석유기업에서 전문가들을 내쫓고 측근과 군부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비전문가들이 장기간 운영을 맡은 국영 석유기업은 망가질대로 망가져 원유 생산량이 크게 떨어졌고, 그나마 생산한 원유조차 제대로 정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마두로 정권은 이번 정전 사태를 ‘미국의 사이버 공격과 야권의 사보타주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기사의 제목은 “리더십이 뒤바꾼 콜롬비아·베네수엘라의 운명”이다.

나경원 원내대표 등 자유한국당 인사와 정규재씨 등 보수우파의 주장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부터 빈곤가구 비율이 50%를 차지했다. 차베스 정권은 빈곤 타개책으로 공공학교와 보육시설을 늘리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사회적 지출 비용을 늘렸다. 국민소득을 직접 늘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10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3배 이상 증가하고 빈곤가구 비율도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하지만 국제 유가 하락, 미국과 갈등이 커지면서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졌다.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PDVSA에 따르면 경제 제재로 인해 석유 수출량이 40% 감소했다. 제재로 인해 생필품 수입도 막혔다.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 관련 저자인 임승수 작가는 “중남미 국가 공동체로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방향의 핵심 역할을 한 게 차베스 정권이었고 미국의 적성국가가 돼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다”면서 “산유국이 석유 수출 못하게 하는 제재가 얼마나 힘들겠나. 예로 우리나라에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을 끊어버리면 먹고 살겠나, 이런 제재를 쏙 빼고 국내 요인만 얘기해 사실을 호도한다. 베네수엘라를 얘기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는데 최저임금 인상이 좌파 정책인가, 미국도 최저임금을 시행하는데 이런 것 뭐라고 하나. 서방의 눈으로 묘사된 베네수엘라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작가는 “메이저 언론이 다루는 방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사우디 왕정 부패를 1면으로 다룬 적이 있느냐, 베네수엘라는 반시장을,  콜롬비아는 신자유정책을 써 성공했다는데 그렇게 자유 좋아하는 언론이 석유 수출을 막는 것에 왜 입을 닫느냐. 정치는 경제와 무관해야 한다면서도 얼마나 정치 논리에 빠져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라틴아메리카학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베네수엘라 현지를 취재해 책을 냈던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차베스 정권 이전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엄청난 부패가 일어났고 소득불평등이 심했지만 차베스가 집권해 경제도 안정되고 불평등이 해소됐다”며 “세금을 올린 게 아니라 석유 수출로 번 돈을 부패 없이 국가예산에 투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은 경제정책에선 차베스와 큰 차이가 없지만 부패 수준은 심각하다. 차베스와 비교하면 정권 장악 정도도 비교가 안된다. 국정을 장악하지 못해 부패가 일어나고 국민 지지도도 차베스에 비해 떨어져 정책 관철이 안되는 걸로 봐야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지 않아서 실패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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