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지면 2/3(10단) 보도 시 2000만원 발생(네고 가 1200만원).” 한 홍보대행사가 모 기업에 보낸 공문 일부다.

과거 세로쓰기 신문 시절 한 면은 위아래가 50cm였다. 당시 신문은 이를 15개 단으로 나눠 편집했다. 전면광고는 ‘15단 통광고’, 지면의 1/3을 차지하는 광고는 ‘5단 통광고’라고 불렀다.

동아일보와 계약한 이 대행사는 지면 2/3인 10단 보도 협찬비는 2000만원, ‘네고 가(할인가)’는 1200만원이라고 기업에 알렸다. 문서 이름은 ‘협찬내역서’, 발신자는 기획지면 ‘비즈포커스’ 실무자 A씨다.

협찬비는 기사 크기에 비례했다. 7단 보도엔 협찬비 1500만원에 할인가는 900만원, 5단 보도엔 1000만원에 할인가 600만원이었다. 전체 15단 기준 1면 총 금액은 3000만원(할인가 2100만원)이 된다. 가장 작은 5단의 절반인 경우 협찬비는 500만원, 네고는 300만원으로 책정됐다. “네고 가는 대기업, 공기관을 제외한 기업”에만 해당된다.

▲ 협찬공문 내용. 디자인=이우림 기자
▲ 협찬공문 내용. 디자인=이우림 기자
▲ 2018년 4월2일 동아일보 기획지면.
▲ 2018년 4월2일 동아일보 기획지면.

기사가 실린 지면은 우수기업을 소개한다는 별도 기획특집이다. “뛰어난 인프라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산업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수 기업과 브랜드, CEO를 집중 조명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4월부터 거의 매달 나왔다. 4개 지면에 10~14개 소개 기사가 실렸다. 내역서대로라면 협찬비 최대 규모는 한 번에 1억2000만원대다.

실제 금액은 내역서 발송 후 전화로 다시 논의해 정한다. 공문엔 “입금은 편집일 이전을 원칙으로”라는 조건도 있다.

A씨는 “돈받고 기사쓰는게 아니라 대행사에서 광고를 별도로 요청한다. 희망하지 않는 기업은 별도 광고없이 진행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보도될 업체가 기사에 대한 대가를 직접 내는 게 아니라 사후 광고 계약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취지다.

언론사의 시상식도 수익사업 기능을 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한국일보 ‘대한민국 가치경영대상’ 협조 공문엔 참가비 400만원이 지면 구성 및 기업 참여 내용으로 적혀있다. 시상식은 2017년에 2회, 2018년 4회, 올해 1회 진행됐다.

수상 기업이 공문대로 참가비를 내면 수익은 한 회 4000여만원 규모다. 1개 지면을 통틀어 9~12개 기업에 대한 글이 실린다. 지난해에만 4회 기준 참가비만 1억6000여만원으로 추정된다. 참가비 명목은 편집비, 심사 진행비, 뉴스 영구 제공비다. 참가 기업엔 지면 보도, 엠블럼 및 선정타이틀 사용권한 부여, 뉴스 검색 서비스 제공, 상패수여 등 특전이 주어진다고 나와있다.

한국일보 대상사업 관계자는 “수상기업 선정은 납부를 하든 하지 않든 별개로 진행된다. 참가비는 행사 준비 비용 등이 있어 명목상 적어놓은 것일 뿐이고 선정된 기업 절반 이상이 참가비를 내지 않는다. 다만 일부 호의적인 기업이 이후에 광고계약을 맺기도 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응모제였다. 마감일까지 준비사항을 다 갖추고 접수를 마쳐야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이 언론사 수익사업이란 지적은 줄곧 있었다. 2005년 김태호 경남도지사는 한국경제신문·서울대가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 상생경영분야’에서 대상을 받으며 주관처에 2200만원을 참가비로 냈다. 창원시는 2006년 동아일보·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주관한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을 받고 800만원을 냈고 ‘한국언론인포럼’ 주관 지방자치대상을 받을 땐 특집방송 촬영홍보비로 1200만원을 냈다.

▲ 한국일보 ‘가치경영대상’ 신청 협조문(오른쪽) YTN life ‘비즈라이프’ 촬영 협조 공문. 디자인=안혜나 기자
▲ 한국일보 ‘가치경영대상’ 신청 협조문(오른쪽) YTN life ‘비즈라이프’ 촬영 협조 공문. 디자인=안혜나 기자
방송사 기업홍보 프로그램도 참가비가 있다. YTN life(YTN 자회사)의 ‘비즈라이프’ 외주제작사가 기업들에 보낸 ‘TV방송촬영 협조문’엔 외주편집비 500만원이 적혀 있다. 30여분간 중소기업 5~6개의 상품·기술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수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을 직접 탐방하고 심층 촬영해 방송을 통해 기업 신뢰성을 확보하고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목적이다.

한 업체가 외주편집비용 납부를 내지 않겠다고 하자 협의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광고성 보도란 지적이 나올 만하다. 이에 업체 측은 입장을 주지 않았다. YTN은 “외주제작사가 만든 방송을 납품받고 송출하는 구조라 기업 선정 방식 등 제작엔 관여하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며 “방송사는 모니터링 시사를 통해 업체명·제품이 간접 홍보되지 않도록 모자이크 하면서 노력을 한다. 좋은 업체를 좋은 취지로 소개하는 측면이지 돈벌이 수단으로 업체에 의뢰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밝혔다.

외주제작사가 업체에 촬영비를 받는 건 방송업계 고질적 관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모든 방송사의 오랜 관행이다. 기업 뿐 아니라 맛집, 학원, 기술자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대부분이 외주제작사를 끼는데 대부분 협찬금으로 제작비를 충당한다”고 말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사는 좋은 기업 홍보를 위해서 보도했다지만 변명으로 들린다. 문제는 이렇게 기사를 사고 파는 일이 너무 일상화돼 기자들이 둔감해질 정도인데도 독자들은 아직 보도가 객관적이라 생각하는 점”이라며 “블로그 체험수기를 예전엔 많이 믿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협찬받아서 쓴 글이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언론 보도가 이렇게 취급되면 사실상 민주주의에 큰 피해를 준다”고 했다.

※ 기사 수정 : 2019년 3월15일 오전 11시59분 (1 ·3번째 단락 공문 발송 주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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