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두고 ‘논평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대목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공방에 화제가 집중됐지만, 이 밖에 선거제 개혁 움직임을 “쿠데타”로 표현하고 환경 정책을 “좌파”로 낙인 찍는 등 연설 상당 부분이 ‘막말’로 점철됐다. 황교안 신임 지도부 선출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모독하는 의원들의 징계는 덮어둔 채 막말로 막말을 덮는 형국이다.

한국당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된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은 개회 10여분 만에 술렁였다. 나 원내대표 발언이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했다는 주장에 이어 “지난 70여년 위대한 대한민국 역사가 좌파정권 3년 만에 무너져내려가고 있다”는 대목에 이른 때였다. 나 의원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내던 민주당 의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대변인이라고 비유한 데서 폭발했다. 나 원내대표는 “북한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옹호와 대변이 이제는 부끄럽다.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 제목(South Korea's Moon Becomes Kim Jong Un's Top Spokesman at UN)을 인용한 표현이다.

일부 의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본회의장에 남은 민주당 의원들은 “취소하라”,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설 시작 20분 만에 나 원내대표 발언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본회의장 소란이 커졌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의장석 앞으로 나가 문희상 의장에게 한국당 연설을 제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뒤이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원내지도부가 모여들어 갈등이 고조됐다. 자리에 앉은 민주당 의원들은 “사과해 사과해”를 한국당 의원들은 “경청 경청”을 연호했다. 나 원내대표는 “제 얘기를 듣고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씀은 정론관(국회 기자회견장) 가서 말씀하시라. 이 본회의장은 민주주의의 전당이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 자리에서 내려갈 수 없다”고 받아쳤다.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석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던 중 정부가 북한의 대변인이라는 식의 발언을 하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석으로 나가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회의장을 가득 채운 흥분은 연설이 시작되고 40여분이 지난 뒤에야 잦아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은 문 의장은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국민에게 판단을 돌리면 된다. 나도 ‘청와대 스피커’라는 소리를 듣고도 참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말이 안 되는 소리라도 경청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을 배우고 옳은 소리가 있다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의장 발언 초반에 한국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으나, 문 의장은 이들을 향해 “박수 칠 일이 아니다. (국회는) 아무 말을 막 하는 데가 아니다. 격조 있게 해야 하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날 연설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었다. 이해찬 대표는 이 자리에서 “나 원내대표가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냐고 발언한 것을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다. 당에서는 즉각 법률적 검토를 해서 국회윤리위원회에도 회부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국회에서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할 거 같다”며 “오늘 발언에서 ‘좌파정권’이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있더라. 세어보진 않았지만 몇십 번을 한 것 같다. 냉전체제에 기생하는 정치세력 민낯을 보는 것 같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나 원내대표 연설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비난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정치적 수사 수준인 표현(먹튀정권, 욜로정권, 막장정권)들을 차치하더라도 근거보다 색깔론에 치중한 비난이 이어졌다. 나 원내대표는 “미세먼지, 탈원전, 보 철거, 문재인 정부가 좌파 포로정권이라는 명백한 증거”라며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세력에 발목잡혀 있다. 보 해체를 주장해 온 좌파단체, 시민단체에 정부 정책이 휘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성귀족노조, 좌파단체 등 정권 창출 공신세력이 내미는 촛불청구서에 휘둘리는 심부름센터로 전락했다”며 촛불혁명 의미를 축소·폄훼하기도 했다.

불과 몇 달 전 합의를 뒤집으며 선거제 개혁 움직임을 오히려 “쿠데타”라 표현하기도 했다. 나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통령제 국가에) 짝이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모양”, “민주당의 2중대, 3중대 탄생”, “의회 민주주의 부정”으로 규정하며 “선거제 개편은 반드시 합의에 의해 통과돼 왔다. 패스트트랙은 사상 초유의 입법 쿠데타, 헌정 파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한국당을 비롯한 여야 5당 지도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 논의를 골자로 선거제 개편 합의문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당은 합의문에 반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반대, 비례대표 폐지’를 요구하며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2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회의장을 나서며 파이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나 원내대표는 연설이 끝날 무렵 “이유와 논리가 있는 비판, 대안이 있는 반대를 하겠다”며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초당적 원탁회의 개최 △국민부담 경감 3법 △국론통일을 위한 7자 회담 △한국당이 직접 대북특사 파견 △동북아·아세안 국가들로 구성된 대기오염물질 협약 △전 상임위 국정조사·청문회 등이다. 파행 끝에 연설을 마친 나 원내대표를 향해 한국당 의원들 박수가 쏟아졌고, 나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을 나선 뒤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들은 싸늘했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한국당이 보내는 대북특사를 북한 측에서 얼마나 좋아하고 반길 것인가. 이런 개그 망언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정의당 김종대 원내대변인은 “한국당과 나경원 원내대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며 “경제와 정치 등 전반적인 연설 내용도 논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오늘 나경원 원내대표 연설내용 반대로만 하면 제대로 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박정희·전두환 폭압으로 얻은 기득권을 붙잡고 앉아, 잘못된 선거제로 인한 적대적 공존관계의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대한민국 발목을 붙잡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희한한 말을 만들고 교언영색을 하면서 아무 내용도 없이 싸움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혁신을 한다던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는 결과적으로 사기극에 불과했고, 자유한국당은 탄핵을 부정하면서 탄핵이전으로 돌아갔다”며 선거제 개혁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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