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이 되면서 미세먼지가 짙어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미세먼지가 심해지자, 사회적 논란도 커졌다. 중국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댓글이 인터넷엔 넘쳐나고, 국내 미세먼지 대책을 둘러싼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선 공기청정기와 마스크 등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관련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혼란이 계속되면 항상 근거 없는 속설이나 유언비어가 확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 정책 때문에 미세먼지가 늘었다‘는 보수 야당과 핵산업계의 주장이다. 그간 많은 언론들이 팩트 체크를 통해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도 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이라고 하지만 핵발전소 숫자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고, 미세먼지의 주범인 석탄화력발전소가 대폭 늘어나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당시라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이와 같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와 같은 주장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전국 곳곳에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발령된 6일 아침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서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과 전국 곳곳에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엿새째 발령된 6일 아침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역 근처에서 출근길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세먼지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핵발전이 친환경적이라는 주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측면만 강조한 것이다. 핵발전소가 석탄화력발전소보다 미세먼지가 적게 나오는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환경문제를 이렇게 단순화시켜 볼 수는 없다. 미세먼지는 적더라도 10만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핵폐기물은 계속 나오고 있으며, 중대 사고시 환경 파괴는 미세먼지에 비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보수 언론이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국내 언론은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모두 중국에 주목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같은 것이 중국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냐는 우려 때문이다. 당시 일부 언론은 중국 해안선을 따라 무려 100여개의 핵발전소가 늘어선 그래픽을 게재하며 중국의 사고 위험을 강조했다. 2011년 당시 13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던 중국은 이제 46기의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세계 3위 핵발전 강국이 되었다. 다행히 2016년 이후 핵발전소 허가는 중단되었지만, 중국은 여전히 핵발전소 11기를 건설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서해 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가장 가까운 핵발전소는 인천에서 약 40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사고 발생시 불과 3일이면 우리나라에 방사성 물질이 도달 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큰 문제는 중국 핵발전소 안전에 대해 우리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 후쿠시마 사고 이후 EU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 등 안전 점검을 진행하거나 규제 가이드라인 강화하는 등 작업을 진행했지만, 한국과 중국 사이엔 이러한 제도가 아예 없다.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몇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연락 채널 정도가 전부이며, 실제 사고 발생 시 이런 채널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중대사고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경우, 혼란을 겪는 것은 국내 핵발전소도 마찬가지이다. 부산과 울산 사이에 위치한 고리-신고리 핵발전소에는 영구 정지된 고리 1호기를 제외하고도 모두 9기의 핵발전소가 운영·건설 중에 있다. 반경 30km에 무려 340만 명이 살고 있다. 서해안 전남 영광군엔 6기의 핵발전소가 운영 중이다. 여기에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 편서풍의 영향으로 전남·전북은 물론 충청·경상권도 적지 않은 혼란을 겪을 것이다.

▲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지 20여 일이 지난 2011년 3월30일, 드론으로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이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난 3호기(왼쪽)의 잔해가 보인다. 오른쪽 4호기 건물도 수소폭발로 인해 크게 파괴됐다. ⓒ 연합뉴스
▲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터진 지 20여 일이 지난 2011년 3월30일, 드론으로 촬영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습이다.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이 일어난 3호기(왼쪽)의 잔해가 보인다. 오른쪽 4호기 건물도 수소폭발로 인해 크게 파괴됐다. ⓒ 연합뉴스
현재 ’탈원전정책 때문에 미세먼지가 늘어났다‘는 보수 야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는 보수 언론 중 대부분은 이런 상황을 2011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당시 중국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언제부터인가 사라졌다. 중국 핵발전소이든 우리나라 핵발전소이든 중대사고가 일어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다면 우리 사회가 겪을 혼란은 미세먼지로 인한 혼란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재민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원자력은 친환경 에너지‘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결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지만, 한국과 중국에서 핵발전소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미세먼지가 아니라 방사능을 걱정해야 하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탈핵과 에너지전환 정책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다. 쏟아진 물을 주어 담으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다. 사고가 생기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일부 보수야당과 보수 언론은 봄날 미세먼지로 답답한 국민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보다 그동안 자신들이 쏟아낸 기사를 먼저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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