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토크쇼J’(이하 J)는 남다른 ‘때깔’을 자랑한다. 주황색의 ‘J’로고와 남색 배경, 굵은 서체로 상징되는 프로그램 디자인과 이미지는 기존 KBS 프로그램과의 차별점이다. J로고를 만든 디자이너 김도희씨는 지난 1월 J 유튜브 라이브에 출연해 “디자인에 대한 김대영 팀장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난 김대영 J팀장 역시 “가장 때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했다”며 ‘때깔 지상주의’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프로그램 내용이 좋은 건 기본이어야 한다. 나머지는 때깔이다. 영화 스토리가 좋다고 관객이 감동을 느끼나. 좋은 배우와 CG가 결합하니까 흥행에 성공하는 것이다. 매회 콘텐츠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기자가 김 팀장을 찾은 이유는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 성공’에 있다. J 제작진은 일요일 밤 본방송 외에도 유튜브 생중계 ‘J라이브’, 각종 클립 영상, 온라인 기사 등을 통해 콘텐츠를 뿌린다. J콘텐츠는 SNS와 커뮤니티에 공유되며 입소문을 타고 다시 시청자와 구독자들은 TV와 유튜브 앞에 모인다. 지난해 6월 첫 방송을 선보인 J의 유튜브 구독자도 12일 현재 10만5000여 명으로 크게 늘었다. 

김 팀장은 “많은 KBS 구성원들이 방송사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난 조금 달리 본다”며 “우리 J조직은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다. ‘매체비평 콘텐츠를 만드는 조직’이다. 방송만 해선 성공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김대영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팀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콘텐츠 품종 다변화와 확대 전략을 강조했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J 제공
▲ 김대영 KBS 저널리즘토크쇼J 팀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며 콘텐츠 품종 다변화와 확대 전략을 강조했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J 제공
KBS 기자인 김 팀장은 2015년 12월부터 KBS 보도본부 디지털뉴스 전략유통팀 데스크(2016년 5월부터 팀장)로 활동했다. 이곳에서 플랫폼 운영, 포털과의 관계, 콘텐츠 품종 다변화와 확대, 타 부서와 협업 등을 익혔다. KBS 기자들도 조금씩 디지털뉴스 작성을 늘렸다. 기자들이 할 수 없는 코딩, 디자인, 영상 작업은 인턴이 맡았다.

고퀄리티 영상으로 10~30대를 겨냥한 콘텐츠 ‘크랩’은 성과였다. 하지만 뉴미디어 혁신의 결실을 다 보진 못했다. KBS는 전사적으로 혁신에 협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또 정권이 교체된 뒤 KBS 구성원들은 ‘적폐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고, 고대영 전 사장이 해임되면서 KBS 경영진이 새 인물로 채워졌다.

지난해 4월 김 팀장이 KBS TV프로덕션2 시사제작팀장을 맡으며 디지털뉴스팀에서 함께 했던 디자이너들을 다시 데려왔다. ‘김대영 사단’이 다시 뭉친 것이다. J에는 디자이너만 4명이다. 이들은 인턴에서 프리랜서 또는 개인사업자로 성장했다. 앞서 말한 김도희씨도 인턴으로 김 팀장과 함께 했었다. 

J는 제작과 취재 인력이 미비한 상태에서 출발했다. ‘토크쇼’ 형식도 첫 녹화 날짜에 맞춘 방편이었다. 모든 것이 촉박했다. 1~7회는 매회가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정규 제작 인력이 배치된 것은 4회 때부터였다.

프로그램에 대한 호응은 컸다. 지난해 12월 말 KBS 신관 공개홀에서 열린 공개방송은 시청자 700명이 찾았다. 당초 300~400명을 예상했으나 2배가량 더 왔다. 현재 본방송 시청률은 3~4%대다. 

김 팀장은 “목표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주목할 만한 시사프로그램 반열에는 올랐다고 평가한다. 시사 프로그램 콘텐츠를 찾아보는 사람들에게 이름은 알린 정도”라며 “현재 편성에서 시청률이 7~8%대로 오를 것 같진 않다. 현 시간대에서 목표는 시청률 5%인데 더 중요한 것은 ‘온라인 화제성’이다. J가 디지털 기사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도자료를 내는 것보다 온라인 기사를 출고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보통 방송사들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보도자료를 내는 데 그치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 팀장은 “온라인에서 공유하기 쉽고 댓글 달기 쉬운 형태로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던져줘야 한다”며 “텍스트로 출고하면 매체들이 인용하기 좋다. 독자들이 읽기에도 텍스트가 좋다”고 설명했다.

▲ 조선일보 2018년 9월1일자 김윤덕 문화부장 칼럼.
▲ 조선일보 2018년 9월1일자 김윤덕 문화부장 칼럼.
프로그램 내용에 시비가 없는 건 아니다. J의 비평 대상이 되는 보수 언론의 불만과 비판, 공격이 거세다. 김윤덕 조선일보 문화부장은 지난해 9월 칼럼(“J라는 이름의 ‘낭만 비평’”)에서 “비평보다 호통, 제언보다 조롱이 많다. 취재 현장 뛰어본 적 없는 그들이 일선 기자들을 향해 툭하면 ‘어디서 배워먹은 짓인지 모르겠다’ ‘언론사들끼리 담합하는 거 아니냐’며 눈을 부라린다”며 프로그램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조선일보도 지난달 15일자에서 J가 “조선일보 등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만 집중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김 팀장은 “비평 기준은 헌법과 보편 가치다. 아울러 행복추구권, 인권 개선 등은 논쟁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 가치에 부합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보편 가치를 전하는 것이라면 진보와 보수를 반으로 섞어 방송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여당 편향적이라는 보수 언론의 비판에도 “현 정권을 무조건 공격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유일한 역할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법·경제권력 등 기득권이 여전히 강고하다. 선거를 통해 일시 집권한 청와대만 공격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 팀장은 “KBS 모 여당 이사가 진보·보수 진영 패널 수를 맞춰야 한다는 식으로 의견을 전한 적 있는데 여기는 토론 프로그램이 아니”라며 “확립된 저널리즘 위에서 뉴스와 언론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이어 “강효상 한국당 의원,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이 나온 적 있었는데 그런 분들이 나왔을 때 여·야 균형이 맞았다는 평가가 있었나. 뭐가 옳고 그른지 알 수 없는 공방은 지양한다. 우리는 ‘썰전’, ‘판도라’, ‘강적들’, ‘외부자들’처럼 반반 나와 말싸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BS 인사 개편으로 J 기자들이 교체됐다. 새로 합류한 기자 가운데 J를 지망한 기자들은 없었다. KBS 보도본부 내에서도 J는 기피하는 곳이다. 최근 새로 합류한 KBS 기자들이 유튜브 J라이브에서 J 발령에 ‘싫은 티’를 드러내 유튜브 유저들의 비난을 받은 적 있다. 

김 팀장은 “여기서 다른 언론을 세게 비판하면 기자 사회 관계가 틀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J에서 1년 있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발령 받고 나가야 하는데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방송에서 KBS를 비판하면 사내에서도 말이 나오는데 오죽하겠느냐”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를 취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기자를 취재하거나 비판하면 듣는 말이 ‘너희가 뭔데’라는 반응 아닌가. 기자들은 비판 받는 걸 고깝게 여기곤 한다. 그렇다면 회사는 기자들이 어렵게 J에 오는 것에 보상할 책임이 있다. 회사가 주는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 KBS 저널리즘토크쇼J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반쯤 유튜브 생중계 J라이브를 진행한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J
▲ KBS 저널리즘토크쇼J는 매주 수요일 오후 5시 반쯤 유튜브 생중계 J라이브를 진행한다. 사진=저널리즘토크쇼J
김 팀장은 “2040세대 20만명이 볼 정도로 우리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커졌다. J기자들이 밖에 나가면 알아보는 시청자들이 있다. ‘뉴스9’ 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반응”이라며 “그럼에도 KBS 기자들은 J 발령에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주는 유인이 없어서다. 도살장에 끌려오는 소 같으면 같이 일하는 맛이 나겠나. 작가와 디자이너들은 신명나게 일하고 있는데 KBS 기자들의 의욕이 유배지 발령처럼 제로라면 조직이 어떻게 굴러가겠느냐. KBS 동료를 탓하고 싶지 않다. 회사의 인사 체계와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J가 KBS라는 토양에 뿌리를 단단히 내릴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땐 회의적”이라며 “여전히 J 지원자는 없다. KBS ‘뉴스9’ 방송 뉴스 중심이다. 지금 J가 좋은 평가를 받고 성과를 내기 때문이지 존재감이 없었다면 더욱 고립된 섬과 같았을 것이다. ‘방송만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조직 전체에 있진 않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매체 비평이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며 “뉴스 수용자들 판단 능력이 매우 높아졌다지만 우리 모두 일일이 정보를 찾아 습득할 여건은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드러내주는 역할은 결국 공영 미디어가 해야 한다. 프로그램 반응을 보면 매체 비평은 유효하고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다만 “딱딱하고 재미없고 촌스럽게 만들면 시청자들은 찾지 않는다. 플랫폼에 맞게 콘텐츠를 가공해 뿌려야 한다”며 ‘때깔 지상주의’를 다시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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