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보다 웹툰 인기순위가 낮은데, 남성 작가가 받는 액수는 ‘앞자리’가 달랐다는 겁니다. 회사는 ‘기준이 많다, 설명하기 애매하다’며 이유를 댔다고 해요. ‘기준이 없다’는 말이죠.”

“우리도 창업자를 뽑아 투자하는 과정에서 ‘여성은 팀 구성 잘 못하겠지, 결혼·육아로 바쁘겠다’고 전제했을 수 있단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외롭다면, ‘내 조직에서부터 IT업계를 바꾸기 위해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웹툰·게임업계부터 IT와 사회적 창업 투자까지, 변화하는 산업·노동 환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차별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까? 이들 분야는 기존 노동시장에서 정책 대상으로 다뤄지지 않은 영역이기도 하다. 현장 노동자들이 각 분야의 성차별 양상을 공유하고 돌파구를 모색하는 자리를 열었다.

여성 프리랜서 작가들의 노동조합인 전국여성노동조합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디콘지회)와 IT업계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인 테크페미, 소셜벤처 창업기획자 SOPOONG(에스오피오오엔지)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1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집담회를 가졌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행사를 주관했다.

▲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11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청년 여성 우리가 만드는 평등한 일터’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11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청년 여성 우리가 만드는 평등한 일터’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지난 2월 꾸려진 디콘지회는 설립 계기가 ‘성차별’이었다. 이른바 ‘페미 사상검증’이다. 한 게임 성우가 지난 2016년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없다’는 문장이 적힌 셔츠를 입고 SNS에 사진을 올렸다가 온라인 괴롭힘을 당했고, 결국 해고 당했다. 회사는 남성 소비자들의 항의를 곧이 받아들였다. 부당해고라 지적하는 이들도 표적이 됐다. 여성민우회 SNS 계정을 ‘팔로우’하는 작가들, 레드벨벳 아이돌가수를 옹호한 작가들 등도 화살을 맞았다. 김희경 디콘지회장은 “항의로 끝났다면 일화에 그쳤겠지만, 기업들이 이들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금 국내 일은 다 끊겨 해외 고객과 일한다”고 했다. 

기존 웹툰과 게임업계에도 성차별 구조가 존재하지만, 채 파악이 안 됐다. 2017년 서울시 문화예술불공정 실태조사를 보면 여성 작가의 월평균 급여는 166만원인 반면, 남성의 경우 222만원이다. 이런 임금 차별이 어느 지점에서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김희경 지회장은 “제보 사례들을 보면 남성 중심 조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본래 웹툰 수입의 주요 기준은 인기도인데, A기업은 굉장히 인기순위가 낮은 작품을 남성 작가가 ‘가장’이라는 이유로 유지했다. 그러나 남성만이 가장이 아니고, 여성 혹은 1인 가장인 이들도 있다”고 했다. 게임 원화가의 경우 남성은 정규직인 경우가 많고, 여성은 대부분 처우가 열악한 프리랜서다.

IT업계 페미니스트 모임인 테크페미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등이 결성 계기가 됐다. 강영화 디자이너는 “많지 않은 업계 내 동료들끼리 만나야겠단 열망이 커졌다. 지인 위주의 20명 규모였는데 지금은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들 등 테크업계 종사자 150여명이 활동하는 단체가 됐다”고 했다.

IT업계도 직무를 고정된 성역할에 따라 정하고, 임금도 이를 기준으로 달라진다. 마케팅, 디자인, 기획, 프론트엔드(소비자들이 접하는 영역) 개발 등은 여성 분포도가 높다. 보다 근본적인 작업인 서버 개발이나 데이터 분석, 매니징(관리) 등 역할은 주로 남성이 맡는다. 남성이 주로 맡는 직무가 보수도 높다. 강영화 디자이너는 “업무 능력과 무관한 외모 지적이나 갑질, 성추문도 적지 않은데, 이를 성토하며 테크페미 모임이 커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 ‘테크페미’에서 활동하는 강영화 디자이너가 11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열린 ‘청년 여성 우리가 만드는 평등한 일터’ 집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테크페미’에서 활동하는 강영화 디자이너가 11일 저녁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성평등도서관에서 열린 ‘청년 여성 우리가 만드는 평등한 일터’ 집담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신생 사회적기업에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 기업 SOPOONG는 지난 2017년 하반기 투자 대상으로 뽑은 5~6팀 가운데 1팀도 여성팀이 없음을 깨달았다. 유보미 매니저는 “이에 회사 차원에서 젠더 불평등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더니 주관이 개입하는 분야인 승진, 채용, 투자에선 여성에게 흘러가는 자본이 심하게 줄더라”고 돌이켰다. 

그 때부터 SOPOONG는 ‘젠더 관점’을 주된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 △사회적 영향 △사업 모델 △팀 역량이라는 주요 기준에 ‘젠더 관점’을 추가했다. 여성 경영진 여부, 팀 내 성비와 역할, 출산 관련 복지 여부 등을 평가한다. 유보미 매니저는 “젠더 관점을 적용하자 여성팀이 35%가 됐는데, 이후 성공사례 가운데 여성팀이 50%를 차지해 좋은 성과를 입증했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와 기업은 각자 자리에서 업계 내 성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테크페미는 매년 여성기획자 컨퍼런스를 열고, 소규모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스포카 크리에이터 행동강령’을 만들어 배포한다. SOPOONG는 ‘젠더 관점의 투자’ 개념을 소개하고 자사에 적용한 사례를 보고서로 남겨 공유하고 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성차별 관행을 고치도록 강제할 수단은 없을까. 한국여성노동자회 이을 활동가는 서울시가 투자·출연기관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성별임금공시제’를 전국·민간기업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채용성차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극심한 비리인 데 비해, 이를 어길 때(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벌금은 최고 500만원에 그친다”고 했다. 최저임금 현실화도 필요하다. 이을 활동가는 “한국사회에서 ‘최저임금이 사실상 여성임금’인 만큼, 최저임금이 오르는 게 성별 임금격차 해소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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