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는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근접하고 식민지의 역사를 겪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신남방정책을 통해 한국의 새로운 경제적 동반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많지 않다. 한국 국민에게 이들 나라들은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가기 쉬운 해외여행지 정도로 인식되고 관광정보만 공유되는 실정이다. 이에 자유언론실천재단과 미디어오늘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아세안(ASEAN) 이웃국가들의 언론 상황과 탄압 실태, 진실 보도와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현지 언론인들의 활동을 취재한 기록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 연재의 내용은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기획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8년 12월에 발간한 책 ‘우리는 말하고 싶다 : 현장 르포, 분투하는 아시아의 자유언론(박성현·김춘효 지음, 이루 펴냄)’을 토대로 요약, 보완한 것이다. -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01) 낯선 이웃 아세안, 분투하는 자유언론
02) 진실 보도에 목숨을 걸다, 필리핀 언론인의 현실
03) 태동하는 언론의 자유, 베트남의 시민언론
04) 언론탄압으로 퇴색한 미얀마의 민주화
05) 새 시대의 길목에 서다, 말레이시아의 독립언론
1986년 ‘도이머이’(쇄신)로 불리는 개방·개혁 정책과 더불어 베트남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왔지만, 그 이면에는 고위 관료들의 부패와 중국 정부·기업과의 유착, 개발로 인한 환경문제, 식품위생, 교통문제 등이 놓여 있다.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들과 미디어를 통제하는 당국과의 갈등은 시민언론인들의 구속과 중형 선고 같은 언론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2018년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베트남은 조사대상 180개국 중 175위를 차지했다.
인터넷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베트남 취재는 준비과정부터 난관이었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필자가 일반적인 메일 또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취했던 어떤 베트남인들에게서도 답이 오지 않았다. 아무런 사전지식도 경험도 없었기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지한 방식이었는지를 베트남에 가서야 깨달았다. 모든 메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감시당하는 베트남인들로서는 외국인인 필자의 취재 요청에 답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베트남 현지에서의 인터뷰들은 ‘지하활동가’들의 일상을 실감시키는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필자는 그들을 만나기 직전에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전달받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주고받은 메시지들도 즉각적으로 삭제되었다(인터뷰에 응해준 이들의 이름을 이 글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취재 기간 중 제일 당황했던 순간은 인터뷰 도중 공안이 들어와 우리를 지켜보기 시작했을 때였다. 매일 당국의 감시를 받던 그 독립언론인은 본인이 미행을 따돌리고 왔다고 믿었지만 초대받지 않은 공안의 신속한 활동 덕분에 그날의 인터뷰는 무산되었다. 며칠 후 다시 만나는 데 성공한 그 독립언론인이 말하기를, 예전에 자신을 인터뷰하던 서방 기자는 같은 상황에서 추방되었는데 당신은 운이 좋았다, 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다른 언론인은 베트남 당국이 한국 언론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데서 찾았다. 서방의 언론은 언론자유와 인권문제를 언급하기 때문에 까다롭게 대하는 반면, 한국과 일본의 언론은 경제 관련 보도만 하기 때문에 우호적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모든 신문은 국가의 소유이다. 재정적 소유자가 기업이고 국가로부터의 기금은 없어도 서류상의 공식 소유자는 국가이다. 베트남에서 모든 신문의 유일한 편집장은 국가라고 말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신문의 기사 발행에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빈그룹(Vingroup)이 그렇다. 빈그룹의 소유주 팜녓브엉은 베트남 최초의 백만장자로 가장 부자다. 빈그룹은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어 그들에 관한 모든 부정적 기사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그가 기사를 삭제할 힘을 가지고 있어 언론인들 사이에서는 브엉도 편집장이라는 농담이 있다.” 한 신문 기자의 말이다. 지난 2월27일~28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던 당시, 국내 언론사 뉴스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빈그룹은 부동산·유통·의료·교육·호텔업에서 자동차, 휴대폰 생산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손이 닿아 있는 거대복합기업으로, ‘베트남의 삼성’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베트남의 국내 언론사와 외국 언론사들은 다른 방식으로 감독된다. 국내 언론사의 통제 방식은 당과 정부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는데, 당의 중앙선전위원회는 모든 언론사의 편집장을 관리·검열하고, 정부 산하의 정보통신부는 각 지방(성과 중앙직할시) 행정부에 언론을 담당하는 부처를 두어 검열을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당 중앙선전위원회가 정보통신부에 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당이 정부보다 우위에 있다.
비록 철저한 통제를 받지만, 목소리를 냈다가 처벌을 받은 국영언론의 기자들도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해외의 지원금으로 공공기반시설 건설을 수행하는 베트남 교통부 부서(‘PMU-18’)의 관리들이 수백만 달러의 국가 돈을 횡령해 유럽 축구에 내기 도박을 하고 호화 생활과 뇌물수수를 한 것이 밝혀졌을 때, 베트남 일간지 ‘뚜오이째’(‘젊은이’)의 응우옌반하이 기자와 [타인니엔](‘청년’)의 응우옌비엣찌엔 기자가 관련 내용을 활발히 보도했다. 이는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기자는 2008년 5월에 체포되어 ‘민주적 자유를 남용’하고 ‘거짓 정보’를 선전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기자들의 취재원이었던 경찰관들 역시 ‘업무상의 비밀을 공개’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 두 기자의 기소와 구금이 비정상이라고 지적했던 [타인니엔]의 부편집장 응우옌꾸옥퐁은 경찰서에 여러 번 출석해 심문을 받은 후 기사 출판에 대한 책임으로 직위를 잃었다. 이 사건은 국가의 통제를 받는 국영언론과 정부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2018년 6월 여러 날에 걸쳐 호찌민과 하노이 그리고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사이버보안법’과 ‘경제특구법’ 제정을 반대하는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6월 7일 산발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10일과 17일 극에 달해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이뤄졌는데, 베트남 활동가들은 이를 ‘암흑의 일요일’(Black Sundays)이라 부른다. 경제특구법안은 특별구역으로 지정된 번돈, 푸꾸옥, 박번퐁의 토지를 외국의 투자자가 최장 99년간 임대할 수 있게 허용한 것으로, 중국의 특구 선점과 영토 침탈을 우려한 베트남 국민의 반대를 불러왔고 이 법안은 일단 연기되었다. 베트남인들의 반(反)중국 정서에는 과거 중국의 침략사와 현재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 방식이 낳은 폐해(베트남 정부 관리에게 뇌물 제공, 환경 파괴 등)가 원인으로 자리한다.
한편, 사이버보안법은 2018년 6월12일 입법부에서 통과되어 2019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사이버정보안전법보다 공안부의 온라인 검열과 통제가 강화된 것이다. 사이버보안법에 따르면, 모든 외국 정보통신기술(IT) 기업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사이버 서비스 제공자(CSP)들은 베트남 안에 지점이나 대표사무소를 설치해야 하고, 사용자의 개인 데이터를 베트남 내 서버에 보관해 베트남 당국이 요구하면 제공해야 한다. 또한, 국가보안과 관련해 부정적인 내용의 게시물을 정부가 삭제하라고 하면 기업은 이를 따라야 한다.
시민언론의 활약과 탄압 실태
미디어 전체를 통제받는 베트남의 현실상,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이들의 대부분은 전문적인 언론인들이 아니라 블로거, 페이스북 사용자인 인권·사회운동가들 즉 ‘시민언론인’들이고, 이들은 베트남 양심수의 적지 않은 수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프리랜서 시민기자로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 RFA)에 기고해온 응우옌반호아는 2017년 1월8일에 체포되었는데, 그는 2016년 4월 포모사(Formosa) 사태가 일어난 후 어부들의 배상과 정의를 요구하는 행동에 동참해왔다. 포모사 사태는 대만 기업 포모사의 하띤 철강회사가 독극물인 폐수를 방류해 베트남 중북부 해안의 물고기와 조개들을 폐사시키고 바다를 10년간 회복할 수 없게 만든 역대 최악의 해양오염사건이다. 응우옌반호아는 플라이캠 드론을 사용해 2016년 10월 하띤성의 포모사 철강공장 바깥에서 진행된 평화시위를 촬영·생중계했다는 이유로 징역 7년과 가택연금 3년을 선고받았다.
당과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 직업적 언론인들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반면, 시민기자와 인권활동가들은 감시와 폭력, 체포와 수감이라는 대가를 각오하고 온라인상에서 활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트남에서 페이스북은 시민언론 활동가들에게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무기가 된다. 한 독립언론인의 말을 빌리자면, “많은 베트남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자신의 계정을 자신의 신문으로 생각하며 이는 계정(신문)에 각자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페이스북을 통해 최신 뉴스와 정보, 비판적인 의견이 공유되고, 집회와 시위 개최 같은 행사 소식이 바이러스처럼 급속히 확산된다.
베트남 사회가 강력한 언론 통제 속에 놓여 있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시민언론의 성장과 활성화는 고무적이다. 폭력적 진압을 받았지만 2018년 6월 대규모 시위를 만들어낸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고, 정부와의 갈등·충돌도 예전에는 아예 낼 수 없었던 목소리를 지금은 어느 정도 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비록 언론의 자유를 위해 갈 길은 멀고 치러야 할 대가는 크지만 베트남 언론의 미래는 희망적이라 하겠다. 수십 년간의 전쟁 속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통일을 이룩해 낸 베트남 국민들의 저력이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