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를 미뤄 패스트 트랙 압박을 받아온 자유한국당이 ‘반전’ 카드를 꺼내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은 한국당 주장을 반박하며 여당이 제안한 선거제 개편안에 합의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0일 오후 의원정수 감축과 비례대표 폐지를 제안했다. 나 원내대표는 “현 대통령제에서는 오히려 의원정수를 10% 줄여 (기존 300석에서) 270석으로 하고 비례대표를 폐지하자는 게 한국당안”이라며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폐지하는 것을 전세계 선진국들이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 원내대표는 “내각제 개헌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개헌을 전제로 한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한국당은 여야 4당이 일정기간 법안이 논의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하는 ‘패스트 트랙’ 추진에 반발했지만 정작 한국당안을 내놓지 않아 명분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코너에 몰린 한국당은 국회의원 감축이라는 대중의 정치 불신을 자극하는 카드를 꺼내 패스트 트랙 강행에 부담을 주려는 전략을 쓴 것으로 보인다.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사진=민중의소리.

그러나 야3당은 오히려 속도를 높여 민주당안에 합의하며 한국당을 고립시키고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11일 조찬회동에서 여당이 제안한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구체적 비례대표 선출 방식은 추후 논의키로 했다.

야3당과 시민사회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에 ‘위헌’ ‘가짜뉴스’ ‘말바꾸기’ ‘내로남불’이라고 대응했다.

11일 조찬회동 직후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은 “주요 선진국이 비례대표제를 폐지한다는 한국당의 주장은 완전한 가짜뉴스”라며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극단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자리에서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헌법에 비례대표를 반드시 두게 돼 있어 비례대표를 없애는 것은 위헌”이라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1일 정의당 상무위원회에서 “여성과 전문인의 정치 진입의 사다리이자 자신이 타고 온 비례대표를 지금에 와서 없애자는 건 놀부 심보”라고 비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7대 국회 때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 11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지난해 12월 여야 원내대표 합의문.
▲ 11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지난해 12월 여야 원내대표 합의문.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존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뒤엎었다는 지적도 받는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야 5당 원내대표는 2018년 12월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데 합의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11일 페이스북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적극 검토해 1월 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로 해 놓고 약속을 어겼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신이 서명한 합의문 내용도 잊어먹은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이번주 내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패스트 트랙 최대 소요 시간이 330일인데, 차기 총선 전에 선거제를 개편하려면 15일까지 논의를 마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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