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를 뜨겁게 달군 소식은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부인의 자살 사건이다. 2016년 9월 한강에 투신한 부인 이미란씨의 죽음 배후에 방 사장이 있다는 사실, 죽음에 드리워진 가족들의 폭력과 가혹·패륜 행위 등이 재조명됐다. 이 과정에 검·경의 부실 수사가 있다는 의혹을 MBC PD수첩이 지난 5일 보도해 파문이 일었다. 

중앙일간지와 경제지 가운데 지난 6~11일 이 소식을 전한 매체는 한겨레·경향뿐이다. 한겨레는 지난 8일자 지면에 서정문 PD수첩 PD 인터뷰(18면)를 크게 실었다. 경향은 11일자에서 이 사건에 침묵하는 언론을 비판하는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 교수의 칼럼을 실었다.

김 교수는 “주요 언론, 즉 전국적인 배포망을 갖는 신문이나 방송들 중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며 “언론계의 부적절한 동종업계 보호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 한겨레 3월8일자에 실린 서정문 MBC PD수첩 PD 인터뷰.
▲ 한겨레 3월8일자에 실린 서정문 MBC PD수첩 PD 인터뷰.
방용훈 사건 침묵한 보수언론 사설엔

이 시점에 주목받는 건 조선일보다. 방용훈 사장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친동생이다. 조선일보 4대 주주이기도 하다. 그가 쥔 영향력이 조선일보에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려면 박건식 PD수첩 PD 글을 참조해 보는 것이 좋다.

“방용훈은 조선일보 주식 10.57%를 가진 대주주다. 방상훈·방용훈은 방일영(조선일보 회장)의 자식인데 반해 스포츠조선 사장을 맡고 있는 방성훈은 방우영(조선일보 상임고문·방일영의 친동생)의 자식이다. 스포츠조선 방성훈은 조선일보 주식 21.88%를 갖고 있다. 만약 방용훈이 자기 주식을 방상훈 집안이 아닌 21.88%를 갖고 있는 방성훈에게 몰아준다면, 방성훈은 조선일보 주식 32.45%를 소유하는 셈이어서 실질적으로 조선일보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방용훈은 조선일보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방용훈이 문제가 생겼을 때 조선일보가 적극 방용훈 문제를 ‘마사지’해왔다는 추론을 하는 분석도 있다.”(9일, 박건식 페이스북)

조선일보는 방용훈 사건에 침묵하고 있다. 대신 11일자 사설에 등장한 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는 지난 9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알릴레오’를 통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는 촛불혁명의 요구”라며 국회에 공수처 설치를 촉구했다. 보수 야당은 “협박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 조선일보 11일치 사설.
▲ 조선일보 11일치 사설.
조선일보는 11일치 사설에서 “이제는 여권 성향 방송에 나가 정치 발언을 한다”며 “인터넷 댓글 달 듯하는 ‘국정 놀이’를 보는 것 같다”고 조롱했다. 중앙일보도 사설을 조국 비판으로 채웠지만 언사는 이보다 점잖다. 중앙일보는 조 수석 행보에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는데 민정수석이 여론몰이에 나서 야당을 자극하는 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조 수석 발언의 부적절성은 얼마든 따질 수 있지만 공수처 설치 필요성 여부를 다루지 않고 사설로 조 수석을 이른바 ‘조지는’ 데엔 정파적 목적이 있는 듯하다. 정파성이 모두 나쁘단 건 아니다. 그 의도가 보이는데도 짐짓 붓 들고 점잖은 체 하는 모습이 우스울 뿐이다. 방용훈 사장을 향한 거침없는 필체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

▲ 동아일보 11일치 사설.
▲ 동아일보 11일치 사설.
‘광주 법정’ 서는 전두환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11일 광주 법정에 선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관련 사자명예훼손 혐의다. 5·18 당시 내란목적살인 등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사면된 지 22년 만이라고 한다.

그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가 11일자 사설에선 유일하다. 동아는 “전두환, 5·18 과오 용서 구할 마지막 기회다”라는 사설에서 “5·18민주화운동 이후 39년간 줄곧 사과 요구를 받으면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숱한 사상자를 낸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가 전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신군부라는 점은 논증이 필요치 않은 엄연한 사실”이라며 “게다가 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18민주화운동을 ‘무장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하고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다”고 비판했다.

동아는 “그 같은 5·18민주화운동 폄훼의 잔재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광주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는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의 망언으로 이어지며, 지금까지도 희생자와 유족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금남로를 피로 물들이며 저항했던 광주의 젊은이들은 이미 노인이 됐고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구순을 앞둔 전 전 대통령에게 광주 법정 출석은 5·18희생자와 광주, 국민 앞에 참회할 마지막 기회”라며 “전직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피해자 앞에서 결자해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도 이 소식을 1면 톱뉴스로 싣고 “전두환 ‘5·18 참회’ 마지막 기회”라고 제목을 뽑았다.

▲ 조선일보 3월11일자 10면.
▲ 조선일보 3월11일자 10면.
조선일보는 선부터 긋는다. 이 신문은 10면(“‘퇴임후 첫 光州 방문’ 전두환, 오늘 5·18 법정에”)에서 “광주 시민은 ‘용서할 수는 없지만 차분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이 재판을 지켜보는 국민에게 광주의 과격성, 폭력성을 부각하면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감정적인 대응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즉, 선은 넘지 말라는 거다. 현장에서 폭력적 상황이 발생하면 ‘과격성’, ‘폭력성’ 딱지를 붙이겠다는 암시일지 두고 봐야 한다. 살인자 앞에서 피해자가 분노를 감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사과 없는 과거 최고권력자 행태에 분노를 삭이는 걸 ‘성숙한 시민의식’이라고 평하는 것 역시 ‘펜의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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