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입은 치마처럼 짧은 발표로 신속하게 해줘.” 교수가 발표하는 학생에게 한 말이다. 발표를 머뭇거리자 “요즘은 룸살롱 언니들도 머리에 든 게 많아야 초이스가 돼요”라며 “아가씨, 그만 됐으니 들어가봐. 초이스할 생각 없어”라는 말이 이어진다. 침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이다 같은 한 마디가 나온다. “교수님 그거 성희롱입니다.”

웹드라마 ‘좀 예민해도 괜찮아’(좀예민)의 한 장면이다. 최근 시작한 시즌2는 ‘동영상으로 협박하는 최악의 저 남친’ ‘딸 같아서 그랬다는 상사에게 팩트폭격을 했다’ ‘회사 화장실에 몰카가 있다!’ ‘회사 선배한테 밤마다 이상한 연락이 온다’ 등 직장 속 젠더 문제를 다룬다. 시즌1은 대학생활 속 젠더 문제를 그려냈다.

▲ '좀 예민해도 괜찮아' 화면 갈무리.
▲ '좀 예민해도 괜찮아' 화면 갈무리.

이 드라마는 올해 CJ ENM이 유튜브 채널 개편을 통해 만든 ‘tvN D STORY’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구독자는 147만명에 달하고 편당 100만 조회수를 거뜬히 넘는다. 시청층 절대 다수가 10대와 20대 여성이다.

드라마 제작을 총괄하는 디지털제작3CP 이우탁 팀장을 지난 6일 서울 상암동 CJ ENM 사옥에서 만났다. 그는 “심쿵하고 놀고 연애하고 힐링하는 것 외에 사회적인 어젠다도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가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강조하며 “제작 단계에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반드시 실시해 시나리오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웹드라마는 편당 2000만~3000만원을 들여 300만원도 못 버는 구조다. 지금은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해 버티는 게 과제”라며 “장기적으로 자기복제에 그치지 않고 장르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모음: MCN 전략 릴레이 인터뷰]

다음은 일문일답.

- ‘좀 예민해도 괜찮아’가 인기를 끈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이전에 없었던 장르와 소재였다. 기존 웹드라마는 ‘심쿵’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시청층인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개인주의적이고 자기만족을 우선하지만 사회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심쿵하고 놀고 연애하고 힐링하는 것 외에 사회적인 어젠다도 충분히 다룰 필요가 있다고 봤다. 우리 콘텐츠 전반이 그렇다. 연애를 소재로 해도 외모자존감, 젠더이슈를 다루는 식으로 접근한다.”

- 내용이 리얼하다는 평가가 많다. 화장실몰카, 디지털 성범죄, 대학 내 성희롱 등 실제 사건들이 연상된다. 
“많은 사례들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오히려 현실이 더 심해서 고민이었다. 또 중요한 게 철저히 공감을 바탕으로 하기에 FG(포커스그룹 인터뷰)가 필수다. 타깃 시청층에 대한 사전 인터뷰를 반드시 기획 단계에 집어넣는다. 각종 컨퍼런스에서 나오는 전략을 듣는 것과 실제 타깃이 말하는 온도는 다르기 때문이다. 초고를 본 타깃 시청층이 ‘이런 캐릭터가 어딨어요’ ‘여기서 키스로 끝내면 말이 안 돼요’ 같은 피드백을 하면 시나리오에 반영하는 식이다.”

▲ CJENM 디지털제작3CP 이우탁 팀장
▲ CJENM 디지털제작3CP 이우탁 팀장

- 젠더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
“부담이 안 되지는 않았다. ‘내 여자친구는 페미니스트입니다’편은 댓글이 5만개 붙었다. 나는 인터넷에 신상이 털렸다. 우리가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어젠다를 환기시키려는 취지이지 갈등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 콘텐츠가 돈이 되니까 일부러 이렇게 만든다는 시각도 있다. 그건 웹드라마 제작 환경을 모르는 이야기다. 웹드라마는 무조건 만들면 손해다.”

- 웹드라마 수익성이 그렇게 안 좋은가.
”모든 웹드라마 제작자의 고민이 똑같다. 웹드라마는 부동산 개발 전 조감도 느낌이다. 강남 30분 거리, 역세권 5분이라고 강조하는 조감도는 멋있지만 막상 현장에 가면 황량하다. 예전에는 편당 1500만~2000만원이면 제작했는데 지금은 제작 단가가 올라 2000만원으로 만들기 힘들다. 그런데 편당 수입은 조회수 기준으로 보면 300만원도 안 나온다. 지금은 어떻게든 버티느라 애쓰고 있다.”

- 그럼에도 웹드라마를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이유가 뭔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면 포기할 수 없다. 웹드라마가 가진 장점이 있다. 충성 시청층이 있고, 긴 영상을 보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 맞다. 숏폼 콘텐츠가 독립적 장르와 콘텐츠로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는 드라마가 유일하다. 해외 OTT에서도 예능을 숏폼으로 구입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드라마는 시장이 생기고 있다.“

- 지금은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가.
”콘텐츠 자체 판매, 광고, 협찬, 커머스, 브랜디드 콘텐츠 등이 있다. 주로 협찬과 브랜디드 콘텐츠에 의존하는데 메인 스폰서십이 들어와도 고충이 있다. 웹드라마는 짧아서 15분 중 1분만 PPL해도 전개가 깨진다. 커머스도 하고 유통도 다변화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좀예민’ 시즌2는 유명 가수, 감독을 섭외해 음원으로 수익화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시즌2가 끝나면 이 전략이 유효했는지 평가할 것이다.“


▲ '좀 예민해도 괜찮아' 시즌2 화면 갈무리.
▲ '좀 예민해도 괜찮아' 시즌2 화면 갈무리.
- 최근 채널 브랜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CJ ENM 내 다양한 오리지널 제작 조직들을 개편했다. 특히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조직으로 ‘최자로드’로 유명했던 ‘흥베이커리’ 채널과 ‘좀예민’을 런칭했던 ‘스튜디오 온스타일’ 채널이 있는데 두 채널을 tvND 브랜드로 합쳤다. 회사 차원에서 브랜드를 통합해 디지털에 힘을 싣고 비즈니스를 고도화하려는 취지다.”

-채널 시청층은 어떤가.
“15~34세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광고를 할 때도 남성 타깃은 제외했다. 사실 온스타일 TV채널 타깃이 이랬는데 밀레니얼 세대가 빠르게 TV를 떠나다보니 우리도 디지털로 옮겨온 것이다. 우리 채널은 여성 충성도가 매우 높다. 시청하는 양을 놓고 보면 1020여성이 80%이상이다.”

- 웹드라마는 TV드라마와 어떤 점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온에어물(TV드라마)이 소설이라면 모바일은 시다. 시는 짧지만 쓰기 힘든 건 소설과 똑같다. 오히려 축약해야 하고 메타포를 내야 하는 데서 어려움도 있다. 또 다른 고충은 서사 측면에서는 캐릭터가 쉬워야 한다는 점이다. 70분짜리 드라마처럼 서사와 캐릭터를 짜면 아무도 안 본다. 쉽고 간결하다는 건 달리 말해 캐릭터가 선명하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내용이 단순화 될 수 있다. 그래서 긴 서사에 익숙한 분들이 억지라고 느낄 수 있다.”

-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콘텐츠는.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지금은 환경이 척박해 성공 공식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심쿵’ ‘썸남’ ‘캠퍼스’ ‘연애’ 등 우리 안의 가두리 양식처럼 자기복제 되는 게 아쉽다. 장르적 확장성을 가지지 않으면 오래가기 힘들다고 본다. 더욱 파격적인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 스릴러와 판타지물 등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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