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인구조사에 따르면 2018년 여성 인구는 2575만4000명으로 총인구의 49.9%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뉴스에 등장하는 기자들 남녀비율은 달랐다.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7월2일부터 7월13일까지(주말 제외) KBS·SBS·MBC·JTBC 메인뉴스 리포트 1024건을 확인한 결과 남성 기자 비율이 64.7%로 여성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 디자인= 안혜나 기자.
▲ 디자인= 안혜나 기자.

방송사 문화도 남성 중심적이다. 여성 기자가 주요 보직을 맡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뚫어야 할 천장은 견고하다. 사회부 사건팀을 진두지휘하는 서울지방경찰청(이하 시경) 캡은 방송사 여성 기자에겐 성역이었다. 캡은 경찰 기자 최고봉이다. 언론사 최초 여성 시경캡은 2000년 허문영 동아일보 기자였다. 이후 신문사 여성 시경캡이 종종 등장하며 성역은 허물어졌다.

방송사 최초 여성 시경 캡은 그보다 훨씬 뒤인 지난해 등장했다. 노윤정 KBS 기자다. 방송사 최초 여성 시경캡을 마치고 최근 기자로 다시 복귀했다. 2019년 기준 시경에 캡을 둔 언론사는 31곳. 현재 한겨레, 내일신문, 민중의소리 등 3곳은 여성이 시경캡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노윤정 KBS 기자가 자사 메인뉴스에 출연했다.
▲ 노윤정 KBS 기자가 자사 메인뉴스에 출연했다.

- 방송사 최초 여성 시경 캡은 어떤 의미인가? 왜 여성 캡은 없었나?

“신문사에서는 상대적으로 앞서서 (소수이긴 하나) 여성 캡들이 배출됐다. 방송사만 없었던 건 방송사 사건팀이라는 조직이 방송사 내부에서도 매우 남성적 조직으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사보다 사건팀 규모가 크다. 이를 테면 KBS 수습 교육 기간에는 최대 후배 26명과 함께 일했다. 타 언론사 한 개 부서보다 많은 규모다.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지면 촬영기자는 물론 현장 중계팀부터 뉴스편집부까지 수많은 사람과 업무 분장을 신속하게 논의해야 하고 밤에는 술도 많이 먹어야 하는 보직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이런 ‘와일드’한 보직에 여성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지만 고정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

- 최초 여성 캡이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영광스럽기보다 부담이 5배쯤 더 컸다. 방송 기자답지 않게 체질상 ‘스포트라이트’를 싫어해 관심 받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어깨도 무거웠다. 다만 많은 후배와 함께 일한다는 것에 기대감이 컸다. 주변에서 여성 캡이니 ‘엄마 같은 캡’이 한번 돼 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성격이 원체 급해서인지 돌이켜보면 엄마보다 아빠에 가까운 캡이었다. 이제 다시 기자로 돌아왔는데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다.”

- KBS 시경 캡의 일상이 궁금하다. 캡 생활은 어땠나?

“일반 부서의 ‘데스크’와 비슷하다. 매일 리포트할 만한 발생 아이템을 챙기고 취재 주문을 한다. 후배들의 기획 아이템 발제를 받아 어떻게 더 좋은 리포트로 제작할지 상의하고 원고 작성과 제작까지 챙기는 업무다. 다만 사건팀은 다른 부서와 달리 1~5년차가 대부분이다. 시경 캡은 비교적 낮은 연차 기자들을 이끄는 자리인 만큼 매일매일 성과보다 교육적인 면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후배들이 기자로서 성장하고 있는지도 관찰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년이었다.”

▲ 노윤정 KBS 기자가 현장연결 리포트를 하고있다.
▲ 노윤정 KBS 기자가 현장연결 리포트를 하고있다.

- 여기자에 편견과 차별이 있다. 취재 현장에서 느낀 차별이 있다면?

“곰곰 생각해봐도 별로 떠오르는 장면이 없다. 취재 환경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기자로 일하면서 정말 한 해가 다르게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이 빠르게 사라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제가 첫 기자 생활을 할 때만 해도 법조팀 여기자는 각사 1인, 그것도 법원에만 한정돼 있었다. 불과 7~8년 전까지만 해도 정당팀 여기자는 각사 1인 정도가 불문율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KBS 내에서도 ‘여초’ 부서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편견과 차별 같은 건 솔직히 체감하기 힘들다. 여기자를 특별하게 여기지도 않는 분위기다. 심지어 KBS 국방부 출입기자 성별이 남성 50%, 여성 50%다.”

- 조직 안에서 느낀 성차별은 있었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얘기다. 9시 뉴스 톱 리포터가 여기자로 배정되니 위에서 ‘가벼워 보인다’면서 남자로 바꾸라고 했다는 말은 들은 적 있다. 이제는 그야말로 ‘전설’이 됐다. 출입처 배정이나 보직을 맡을 때 여성 기자여서 차별한다는 건 요즘은 거의 사라진 얘기다. 언론사야말로 매일 성과가 눈에 보이는 곳이다.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가 냉정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성별에 따른 차별이나 유리 천장은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해 적은 편이 아닌가 싶다.”

- 18년 기자 생활하며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일할 때 특종 욕심에 성품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좋은 기사거리를 잘 말해주는 인터뷰이가 최고였다.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인터뷰할 때도 사람의 이모저모를 눈여겨보게 된다. 짧은 인터뷰에도 살아온 인생 역정이 자연스럽게 풍기면서 묘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만난 일본 저술가 모리카와 미치코씨가 기억에 있다. 그는 작은 공공기관에서 일을 했었다. 버마(현 미얀마) 전선 위안부였던 문옥주 할머니가 일본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자비로 버마로 건너가 문 할머니 흔적을 추적했던 르포 작가였다. 현지어까지 배워 버마 전역을 누비며 인터뷰했다. 소중한 현지 초기 증언들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해두기까지 했다. 평범한 여성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일생일대 결정을 한 뒤 지금은 다시 평범한 중년 여성으로 돌아가 노인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인간 양심과 열정이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인터뷰이였다.”

- 후배 여성 기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여성의 날에 적절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꾸라는 구호보다 현실적 조언을 해주고 싶다. 일할 때 자신의 성별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았으면 한다. 여성 기자가 ‘나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자꾸 의식하면, 약간의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해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나아가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다. 워킹맘의 경우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거나 중책을 맡을 기회가 생겨도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스스로 마음 한구석에 달아놓은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조금은 무덤덤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이지만 의식적으로 ‘쿨’해지려고 노력하다 보면 불필요한 업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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