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발견만 한 채 수색이 종료됐다.

지난 2017년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한국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의 실종선원 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7일 “한국정부협상단과 심해수색업체 오션인피티니의 협상이 결렬돼 수색이 중단됐다”고 알렸다. 실종 선원으로 추정되는 뼈와 방수복을 발견했는데 이를 수습하지 않은 채 수색이 끝나 실종선원 가족들이 매우 상심한 상황이다. 정부가 수색업체와 계약 과정에서 수색 목표를 분명하게 설정했는지, 수색업체를 제대로 관리했는지 등을 두고 정부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주무부처인 외교부가 지난해 9월 작성한 문건인 ‘과업지시서’를 확인한 결과 외교부는 수색업체를 선정하기 직전부터 수색의지가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 외교부가 지난해 9월 작성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용역 과업지시서.
▲ 외교부가 지난해 9월 작성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용역 과업지시서.

과업지시서를 보면 과업의 배경을 “한국선원 8명을 포함한 총 22명의 선원 실종 발생”이라면서 과업 목적을 “실종선원 생사 여부 확인 및 사고원인 규명”이라고만 했다. 처음부터 실종선원을 구조하거나 사망했을 경우 유해를 수습하겠다는 내용은 과업의 목적이 아니었다. 실제 이번 수색에서 유해로 추정되는 뼈를 발견했지만 수습하지 않고 생사여부만 확인했다.

▲ 외교부가 지난해 9월 작성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용역 과업지시서.
▲ 외교부가 지난해 9월 작성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용역 과업지시서.

과업지시서를 보면 외교부는 기본 과업을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계획 수립·시행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위치 확인 △수중 촬영, 3차원 소나 스캐닝을 통한 선체상태 확인 및 3차원 모자이크 영상 구현 △미발견 구명벌 및 항해자료기록장치(VDR) 위치 수색·확인 △항해자료기록장치(VDR)회부 (기술적으로 가능한 경우) △수색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보고서 제출 등 6가지로 규정했다.

이 중 특히 중요한 과업은 실종선원들이 탈출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인 구명벌 유무를 확인하는 것과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3차원 모자이크 영상구현이다. 최근 한국정부와 오션인피니티 협상 과정을 취재한 김영미 시사IN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독립PD)은 8일 미디어오늘에 “(해당 과업들을) 완수하지 않은 채 수색업체가 떠났다”고 전했다.

3차원 모자이크 영상구현이란 ROV(원격 무인 잠수정)에 3차원 입체 카메라를 달아 선체 72조각을 모두 촬영한 뒤 마치 침몰한 배를 육지에 올려놓은 것처럼 재현해내는 기술이다. 타이타닉의 경우 이 기술을 통해 실제 배가 어떤 속도로 운항했고, 운하와 충돌해 얼마나 배가 찌그러졌는지 밀리미터 단위까지 파악했다.

일년반째 스텔라데이지호를 취재 중인 김 편집위원이 보기에 이 기술을 사용해 사고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53억원이라는 예산은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그는 “처음에 3차원 모자이크 기술은 가족들이 주장해서 넣었는데 처음에는 외교부도 이를 잘 몰랐다”며 “최근 정부와 오션인피니티 협상을 보니 업체도 이를 이해못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 편집위원은 ROV 하루 사용료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150억원 이상은 들여야 이 과업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로선 한국정부의 1차 공개입찰에서 어떠한 업체도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단가가 너무 낮아서였고, 뒤늦게 이 3차원 모자이크 구현이란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션인피니티가 단독으로 지원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그런 상황에서 3월초 우루과이 협상에서 오션인피니티는 유해발굴을 위해 2차 수색 단가를 높게 불렀고, 외교부와 실종선원 가족들은 오션인피니티가 과업을 제대로 완수하지 않은 것을 지적했다. 오션인피니티는 블랙박스 수거라는 일부 과업만 수행한 채 보고서 작성도 없이 협상을 결렬했다. 수색선에 공무원 한명 타지 않고 언론인 탑승을 막는 등 수색업체 관리에 소홀했던 결과다.

▲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과 스텔라데이지호의 구명벌을 의미하는 주황색 리본. 사진=이치열 기자
▲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과 스텔라데이지호의 구명벌을 의미하는 주황색 리본. 사진=이치열 기자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시민대책위는 8일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오션인피니티에 “심해수색 용역의 기본과업을 완수해달라”, “발견 유해를 하루빨리 수습하고 해저면 추가 유해를 수색해 실종자들을 가족 품으로 데려와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외교부는 “입장을 조속히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가 오션인피니티에 보낸 과업지시서 최종본을 공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과업지시서는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심해수색을 결정한 다음달인 지난해 9월 작성한 것이다. 정부와 오션인피티니는 같은해 12월에서야 최종계약을 맺었는데 수의계약을 맺으면서 과업지시서 최종본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계약직전에 영어로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과업지시서’ 최종본의 큰 틀은 9월 작성한 과업지시서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알권리 차원에서 외교부가 이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실종자 가족 등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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