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민주노총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 의결이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 위원 3인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보수언론은 일제히 민주노총을 성토했다. “참여도 안 한 민노총 입김에... 탄력근로 의결도 못한 경사노위”(동아일보), “대통령 일정까지 바꾼 무소불위 민노총”(중앙일보) 기사가 대표적이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기간에 일이 몰리는 업종을 고려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노동시간인 52시간에 예외를 둬 초과노동이 가능하도록 한 제도다. 현재는 노사 합의로 정한 기간 3개월 내에 하루 최대 12시간(연장근로까지 24시간), 최대 주 64시간까지 가능하다. 3개월까지 가능한 이 제도를 경사노위는 6개월까지 늘리려 했다.

민주노총 성토하고 계층별 위원 공격

보수 신문의 주장은 이렇다.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고, 불참한 세 위원(여성·청년·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계층별 대표)이 민주노총과 호흡을 같이 하는 경향이 강한 단체라서 이번 결정도 민주노총이 좌우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경제단체 관계자의 말을 통해 “결과적으로 민주노총의 판막음이 된 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고 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 계층의 대표들을 공격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대표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무늬만 청년, 여성, 비정규직 계층 대표이지 예전의 노사정 체제와 달라진 것이 없어서”라며 대표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계층별 세 위원이 민주노총과 호흡을 같이 한다고 단정할 순 없다.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위원은 민주노총 조합원이지만 한국노총 추천을 받아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으로 수년째 참가했고, 청년 대표 위원이 있는 조직도 한국노총 법률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적도 있다. 여성 대표 위원이 있는 조직은 양대노총과 일정한 선을 유지해온 전국여성노조다.

▲ 8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보도.
▲ 8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보도.

동아일보는 이날 함께 통과되지 않은 안건을 언급하며 사회적 약자 대표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건 논의를 불발시켰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날 안건에는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고용보험 개편 등도 있었다고 설명한 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안인데 함께 무산됐다. 이번 본위원회 무산으로 다른 사회적 약자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왜 보이콧했는지 찾기 힘들어

그러나 정작 이들 신문에선 왜 그들이 불참을 선언했는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한겨레가 “본위원회 자체를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계층별 대표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경사노위 운영 구조와 그동안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짚어봐야 한다”고 보도한 것과 대조적이다.

불참한 3인은 6일 밤 입장문을 냈지만 보수언론은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이들은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는 위원회에 계층별 대표 1명의 참여를 요구했고, 합의한 발표 이후에도 수정, 보완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며 거수기 역할을 할 수 없어 보이콧 했다는 입장이다. 한겨레는 “미조직 사업장에 파급력이 큰 사안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게 순리”라고 했다. 한국일보도 “여성, 청년, 비정규직 대표들이 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상태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먼저여야 한다”고 밝혔다.

▲ 8일 한겨레 보도.
▲ 8일 한겨레 보도.

근본적으로 합의안이 통과될 경우 이들 위원이 대변해야 할 미조직 노동자들이 피해 받을 우려가 컸기에 불참한 것이다. 경향신문은 “탄력근로제 노사 합의안은 장시간 노동방지, 임금감소분 보전 조항 등에서 노동자 대표와의 합의를 규정하고 있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이 주로 근무하는 노조 없는 사업장은 보호 조치를 마련할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 대표는 사실상 사측 이해관계에 맞는 인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장 10곳 중 9곳에는 노조가 없다.

심지어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도 탄력근로제의 폐해가 드러났다. 한겨레는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는 사업장조차 사용자가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서 법적 요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실태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황선웅 부경대 교수가 발표한 이 조사에 따르면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 128곳 설문조사 결과 23곳(18%)에서 탄력근로제를 도입했는데 도입 때 노동자 과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요건을 지키지 않은 비율이 45%에 달했다. 사용자가 일방으로 추진했다는 사업장도 단위기간 2주인 곳이 18.2%, 3개월인 곳은 8.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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