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김기덕 영화감독이 여성단체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가 지난 2월 ‘김기덕 감독의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 초청을 취소해달라’는 성명 등으로 성폭력 범죄자로 낙인찍었고 영화 개봉이 취소돼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민우회는 6일 “피해의 목소리에 반성과 사과도 없이, 역으로 고소하는 행위는 전형적이고도 익숙한 가해자들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영화감독김기덕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도 7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투운동에 백래시를 중단하라”고 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 촬영현장에서 여성 배우의 뺨을 때리고 협의 없이 남성 배우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피소됐다. 검찰은 이 중 폭행 혐의만 인정해 김 감독을 지난 1월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MBC ‘PD수첩’은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편에서 김 감독의 여성 배우 성폭력 의혹을 추가 제기했다. 김 감독은 PD수첩 제작진과 성폭력 피해를 주장한 여성 배우 두 명을 각각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제작진과 여성 배우들을 무혐의 처분했다.

▲ 영화감독 김기덕씨(위)와 김 씨가 본인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PD수첩 제작진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일부. 사진=MBC PD수첩 갈무리
▲ 영화감독 김기덕씨(위)와 김 씨가 본인의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PD수첩 제작진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일부. 사진=MBC PD수첩 갈무리

김 감독의 영화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이 7일 열리는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자 민우회는 지난달 김 감독의 성폭력 의혹과 인권침해를 언급하며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영화제에 김 감독의 영화 개막작 초청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영화제 측은 개막작 초청을 취소하진 않고 김 감독을 영화제에 초대하지 않기로 했다. 해당 영화는 국내에서 베를린영화제 이후 개봉을 준비하다 MBC PD수첩이 김 감독의 성폭력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무산됐다. 김 감독은 이 과정에서 민우회가 자신을 성폭력 범죄자로 낙인찍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는 등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증거불충분은 피해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성폭력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건식 MBC PD수첩 PD는 “영화계가 워낙 좁아 피해자 본인이 감내하고 있을 뿐이지 피해 사례가 없다고 말하기 매우 어렵다”며 “시민단체에 억대 소송을 걸 게 아니라 본인의 과거를 차분하게 반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우회는 “김 감독은 민우회 활동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이 불법행위로 ‘성폭력 범죄자’ 낙인이 찍혀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는데 피해자를 상담하고 지원하는 것, 영화계 인권침해와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 사건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것이 불법이냐”며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김 감독 자신이며 영화 현장을 인권침해 현장으로 만든 것도 김 감독 자신”이라고 비판했다.

민우회는 “김 감독은 지난해 PD수첩 제작진과 피해자에 대해서도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이미 제작진과 피해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했는데 김기덕 감독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 함께 한 단체에조차 3억이라는 고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며 “피해의 목소리에 반성과 사과 없이 역으로 고소하는 행위는 전형적이고도 익숙한 가해자들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가 소송으로 위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며 “피해자와 정의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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