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리화 정책은 보수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1989년 전국민 건강보험 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역대 모든 정부가 의료 규제완화의 길을 걸었다. 정부가 영리병원(외부로 이익을 투자하는 병원) 도입을 비롯한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을 시도할 때마다 시민사회가 나서 저지했다. 보건의료 시민사회단체 소속 전문가들은 “시민사회는 (의료영리화 관련) 모든 정부와 맞서야 했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의 의료 규제완화 흐름을 짚었다.

1. 김영삼 정부: 민간병원 확대, 의료영리화 욕구 강해져

정부 때는 민간병원이 대폭 늘어 의료영리화 논의가 싹텄다. 건강보험체계 안에서 전국민이 병원을 이용하게 됐지만, 의료 공급은 민간이 맡는 모순이 커졌다.

앞서 노태우 정권 때 의료보험이 전국민 대상으로 확대됐다. 진료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료 공급은 철저히 민간에 맡겼다. 공공병원을 세우지 않고 민간병원 확대 지원책을 펼쳤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는 “의료 인프라가 민간 중심으로 확장면서 병원이 대형화됐다. 그러면서 대형병원 중심으로 자본을 쌓고 영리 의료행위를 하려는 유인이 강해졌다”고 했다. 이 구조는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2017 공공보건의료통계집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5.8%로, OECD 가입국 평균치(53.5%)의 10분의1 수준이다.

2. 김대중 정부: 영리병원의 뿌리

김대중 정부는 영리병원 도입 물꼬를 틔웠다. 처음으로 영리병원 개설을 법제화했다. 임기 말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을 제정해, 인천 송도 등 국내 8곳에 한해 국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인 투자 병원을 세우는 것을 허용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늘린다는 명목이었다. 다만 이 법은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으로 외국인만 설립해 외국인 환자만 받도록 명시했다.

이는 국내 의료체계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였다. 그러나 우석균 공동대표는 “영리병원이 외국인만 받아서는 절대 이윤이 남지 않기에, 경제자유구역법은 내국인 영리병원 확대를 부르는 불씨였다”고 말했다. 이후 영리병원 관련 법제는 계속 규제완화 길을 걷는다.

3. 노무현 정부: 의료영리화 빗장 풀다

노무현 정부는 의료영리화 빗장을 본격 열었다. 참여정부는 국민건강보험 보장성과 공공의료기관 비중 확대 등 공공의료체계 확대를 약속했다. 그러나 2005년 국정연설에서 ‘의료산업 선진화’를 강조한 뒤 의료서비스를 산업으로 보고 규제 완화하는 움직임이 다방면에서 일어났다.

노무현 정부는 같은해 10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구성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 시기 정부가 △각종 규제완화와 △IT와 보건의료 접목 △원격의료 등 삼성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추진했다고 평가한다. 정부는 영리병원이 내국인도 진료하도록 경제자유구역법을 개정했다. 다음 해에는 제주도에 영리병원을 세울 길을 텄다.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법을 제정해 외국의료기관 도입을 가능하게 했다.

▲ 사진=민중의소리
▲ 사진=민중의소리

4. 이명박 정부: 노골적 의료영리화, 촛불항쟁이 저지

이명박 정부는 의료영리화를 아예 대선 공약에 내걸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영리병원 허용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과제로 정했다. 이명박 정부는 제주도에 내국인 영리병원 개설도 노골적으로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인 참여정부와 달리 보장성을 축소해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미 FTA 반대 촛불항쟁과 함께 의료영리화 반대여론도 높아져 영리병원 허용 등 정책을 관철시키진 못했다.

5. 박근혜 정부: 최초 영리병원 세우다

박근혜 정부는 결정적으로 제주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사업을 허가했다. 정부는 2014년 애초 영리병원 사업승인을 추진하던 ‘싼얼병원’이 부도났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설립을 불승인했다. 이후 중국자본이 투자한 성형·피부미용 전문 ‘녹지국제병원’ 사업을 허가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중반기부터 경제활성화를 앞세워 의료 규제완화를 공언했다. 세월호 참사와 임기말 촛불시위 등으로 현실화하진 않았지만, 정부는 임기 말까지 △의료법인의 영리목적 부대사업 허용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원격의료 도입 등 정책을 추진했다.

[제주영리병원 논란①] 제주영리병원, 누가 왜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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