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휴가를 냈더니 회사는 ‘이미 소진됐다’며 일당을 깎겠다고 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물으니 ‘근로자대표’가 ‘공휴일 연차 대체’에 합의했다는 겁니다. 그게 누구인지 물어도 회사는 알려주지 않아요.”(자동차 정비사 A씨)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회사가 희망퇴직을 권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회사가 근로자대표와 ‘성실히 협의’해야 하는데, 그는 회사가 지명한 영업부장이었습니다.” (직장인 B씨)

“근로자대표는 어느 직급까지 할 수 있나요? 회사대표가 근로자대표를 지명해도 되나요? 근로자대표를 선출할 때 근로자 1명이라도 서명을 안 하면 괜찮나요?” (직장인 C씨)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각종 노동조건을 둘러싼 노사 합의 때 노동자를 대리하는 ‘근로자대표’ 자격기준이 전무해 ‘사측 대변인’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허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 10명 중 9명이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회사는 7가지 사항을 놓고 근로자대표와 반드시 서면 합의해야 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선택적 근로시간제 △연장근로 제한의 예외 △연차유급휴가 대체 △보상휴가제 △근로시간·휴게시간 특례 등이다. 회사가 경영상 이유로 해고하거나 임산부·연소자에게 야간휴일근로를 시킬 때도 근로자대표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5일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단위 확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김예리 기자
▲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5일 탄력적 근로시간제 기간단위 확대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사진=김예리 기자

근로자대표는 노동시간부터 휴가와 수당, 산업안전, 해고에 이르기까지 직장인의 노동조건 전반에 관여할 권한을 지닌 셈이다.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도 회사가 규정을 만들거나 노동자에 불리하게 변경할 때 근로자대표 동의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업장 내 각종 안전규정을 열람하고 내용 변경에 관여할 권한을 근로자대표에게 뒀다.

문제는 근로자대표의 자격이다. 현행 노동관계법은 근로자대표가 갖춰야 할 자격과 뽑는 방법, 임기와 역할 등 노동자에 대한 대표성을 보장할 규정을 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회사가 사용자측에 유리하게 임의로 지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는 “근로자대표 정의 조항만 있을 뿐, 자격과 활동 내용을 정하지 않았다. 소규모 기업은 자기 가족에게 근로자대표를 시키기도 한다. 근로자대표가 누군지 안 알려주기도 하고, 아예 없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합의한 탄력근로제 확대 방안에도 ‘근로자대표와 협의’가 조건으로 담겼다.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보장 ∆2주 전 노동시간 통보 ∆임금보전 방안 미신고시 과태료 부과 등 건강권·노동시간·임금 관련 규정을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 또는 협의하면 면제할 길을 열어놨다. 노동계는 합의안을 두고 “노조 없는 업장에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란 회사 맘대로란 뜻”이라며 반발했다.

직장갑질119는 근로자대표의 대표성을 보장할 방안이 노동관계법에 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근로자대표의 권한과 의무, 선출 방법과 시기, 자격과 임기, 해임 등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는 등 노동관계법을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경사노위 탄력근로제 확대안을 두고도 “어용 또는 유령 근로자대표가 있는 90% 직장인들에게 치명적인 법안이므로 통과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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