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초 중앙일보와 동양방송(TBC) 교육특별취재팀이 유럽의 교육을 현지취재해 5편짜리 다큐를 만들어 방영했다. 중앙일보 지면에도 실렸다. 취재팀장을 맡았던 엄광석 기자는 당시 교육부 출입기자였다. 엄 기자는 보도한 내용을 모아 이듬해 1월 ‘유럽에서는 왜 과외가 없는가’라는 제목의 단행본까지 냈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권의 과외금지정책을 뒷받침하는 책 제목을 달았지만 독일 프랑스 영국 세 나라의 무상교육과 평준화, 무시험 교육 같은 당시로선 획기적 선진교육 정책을 소개했다.

당시 우리는 초등학교만 겨우 무상교육이었고, 그마저도 반공성금이나 육성회비 같은 잡부금 부담 때문에 서민들은 허리가 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의 무상교육은 신선했다. 당시 독일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었지만 부모 경제력을 4등급으로 나눠 최상등급만 30마르크 정도의 적은 돈만 낼 뿐 나머지는 모두 무상이었다. 때문에 3~6살 독일 아이의 유치원 취학율은 1979년 기준으로도 이미 70%를 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유치원 취학율이 50%에 불과한 한국과 사뭇 달랐다.

프랑스 유치원은 1981년부터 유럽 최초로 무상교육을 실시했다. 중앙일보 기자가 찾아갔던 1980년 프랑스의 유치원 취학율은 100%였다. 동시에 90%가 공립이었다. 곽 기자는 “(1980년) 프랑스 유치원 교육은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의무교육이나 마찬가지”라고 썼다. 1871년 파스퇴르가 시작한 탁아소에서 출발한 프랑스 유치원은 당시 공교육으로 자리잡았다.

▲ 5일 오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연기를 철회하면서 서울 시내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 5일 오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연기를 철회하면서 서울 시내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문귀족학교 전통이 뿌리 깊은 영국편에서 곽 기자는 “영국은 중등교육에서 가장 먼저 평준화를 이뤄내 이미 30년이 지났다”고 썼다. 그렇다. 영국은 1944년 교육법에 평준화를 명시했다.

전통적으로 영국은 ‘11세 시험’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나라였다. 이 시험의 성적에 따라 사회지도층과 기술자, 일반 시민이 결정됐다. 최상위 4%는 이튼이나 해로우, 러그비 같은 명문귀족 사립학교로 갔다. 이들 학교는 정부가 전혀 간섭할 수 없었다. 영국은 명문귀족학교를 역설적이게도 공립이란 뜻의 ‘퍼블릭’스쿨로 불렀다. 명문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대학생의 20% 이상이 이들 퍼블릭 출신이었다. 영국 지도층의 80%는 여기서 나왔다.

영국 서민들은 이런 교육제도에 불만이 컸다. 급기야 1964년 노동당 집권으로 ‘11세 시험’ 폐지와 실질적 중등교육 평준화 정책이 속속 시행됐다. 중앙일보 취재팀이 찾아갔을 때 영국 교육은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당시 영국은 80%가량의 지역에서 ‘11세 시험’를 없앴다. 460개 명문귀족학교 가운데 140개가 재정난 때문에 일반학교로 전환했다.

유럽 세 나라가 각자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 자기네 실정에 맞는 교육제도를 구축해왔다. 한국에선 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논의조차 20년째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그 사이 사립유치원과 사립어린이집은 정치권력이 돼 개원 파업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남들이 유아교육을 무상교육의 반열에 올려 놓으려 고군분투했던 1975년까지 이 나라 모든 유치원은 사립이었다. 앞만 보고 질주했던 박정희 개발독재는 정부가 해야 할 웬만한 건 다 민간에 떠넘겼다. 1976년 서울과 부산에 5개의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을 설립한 게 최초의 공립유치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공공성이 빠진 채 진행되는 현재의 유보통합 논의는 또다른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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