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을 강화하는 유치원3법에 반대하며 시작된 3월4일 개원연기에 전국 239곳의 유치원이 참여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개원 연기에 동참하는 유치원수가 1500여곳이라고 장담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모들은 사립유치원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에 분노했다. 한유총이 이날 뒤늦게 개원연기를 철회했으나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 사단법인 취소를 결정했다.

개원 당일 교육청 공무원·시공무원·경찰관이 3인1조로 유치원 현장조사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한유총 주도로 사립유치원이 실제로 개원연기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개원연기 철회여부와 관계없이 법인취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유총의 ‘백기투항’은 서울시교육청이 한유총 법인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한지 2시간 만에 나왔다. 그렇게 한유총은 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한유총은 최근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겨레·CBS·MBC 기자는 나가달라”고 요구하는 등 ‘안하무인’으로 정부와 대립해왔다. 자신감의 원천은 ‘경험’이었다. 2016년과 2017년 한유총은 정부의 재정지원 증액, 국공립 유치원 확대 정책 폐기 등을 내세우며 집단휴업을 예고해 효과를 봤다. 당시 교육부는 한유총에 끌려가며 휴업막기에 급급했다. 교육부가 이번에 개원을 연기한 유치원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형사고발하겠다며 강경대응에 나선 이유다.

▲ 5일 오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연기를 철회하면서 서울 시내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 5일 오전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유치원 개학연기를 철회하면서 서울 시내 한 사립유치원에서 원생들이 등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교육부장관은 대국민담화문에서 “한유총은 2016년과 2017년에도 항상 학부모를 볼모로 삼았고, 유아교육의 공공성과 투명성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며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육부는 이번 개원 연기를 ‘사업자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로 보고 한유총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민법 38조에 의해 법인이 목적외 사업을 하거나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하면 법인 취소가 가능하다.

한유총과 정부의 사립유치원 관련 쟁점은 △회계투명성 확보 위한 국가회계관리시스템 ‘에듀파인’ 도입 △폐원 시 학부모 동의 3분의2이상 의무화 △사립유치원 시설사용료 인정 여부 등이다.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사립유치원 회계를 투명화하고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내용 등을 포함한 유치원3법 통과(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한유총의 자신감을 높였던 또 다른 배경은 언론보도였다. 중앙일보는 개원연기 당일 4일자 사설에서 폐원 투쟁까지 예고했던 한유총을 가리켜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는 교육자라면 할 소리는 아니다”라고 비판하면서도 “정부 책임도 크다. 정책의 정당성에만 매몰돼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는 않았는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아닌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비론이었다.

▲ 조선일보 3월4일자 사설.
▲ 조선일보 3월4일자 사설.
조선일보 역시 4일자 사설에서 “어떤 경우든 명색이 교육기관이 아이들을 볼모로 삼는 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개인 재산을 내 건물을 짓고 운영하는 사립유치원은 국가 교육의 상당한 부분을 떠맡고 있다. 이들의 요구엔 들어봐야 할 부분도 있다. 이 문제가 무슨 고차방정식이라고 이렇게 막장까지 가야 하나”라며 정부책임론을 꺼내들었다. 이날 사설 제목은 “유치원 문제 하나 해결 못 하나”였다.

조선일보는 정부대응을 가리켜 “명단 공개, 행정 처분, 감사, 형사고발 등 위협뿐이다. 민노총 폭력사태엔 침묵하던 정부가 유치원 대책회의에는 경찰청장·국세청장·공정거래위원장까지 참석시켰다. 이것이 무슨 공안 사건인가”라고 비꼬았다. 한유총은 언론의 ‘양비론’ 프레임을 믿었다.

한유총은 이날 논조에 화답 하듯 조선·중앙·동아일보 지면 3면 하단에 “개원연기 철회는 교육부 결정에 달렸다”는 5단짜리 ‘협박성’ 의견광고를 실었다.

▲ 조선일보 3월4일자 3면에 실린 의견광고. 이 광고는 같은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3면에도 실렸다.
▲ 조선일보 3월4일자 3면에 실린 의견광고. 이 광고는 같은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 3면에도 실렸다.
그러나 개원연기 투쟁은 하루 만에 실패로 끝났다. 한국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한유총의 설립허가취소결정을 두고 “스스로 교육기관임을 포기한 단체에 대한 합당한 결정”이라고 환영했고, 경향신문 또한 같은 날 사설에서 “독단과 아집으로 벼랑 끝 전술을 택한 한유총 지도부의 사필귀정”이라며 환영했다. 한겨레 또한 이날 사설에서 “유치원을 치킨집에 비유하며 교육기관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 요구를 지속해온 한유총으로선 자업자득”이라고 했다.

반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5일자 지면에 관련 사설을 싣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대신 “정부 대응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익명의 교수 코멘트라며 “정부가 한유총을 찍어 누르는 식으로 문제를 풀려 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유아교육 공공성에 대한 국민의 높은 열망과 지지가 확인된 만큼 여야는 신속히 유치원 3법통과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한겨레)는 논조 역시 조중동에선 찾기 어려웠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사립 유치원이 국공립 유치원에서 통학차량 운영이나 종일반 운영도 제대로 못하게 했던 게 많은데 이번 기회에 100%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국공립 유치원 숫자도 많아지고 학부모 만족도도 높아진다”고 했다. 언론이 주목할 대목이다. 

노조나 협회 등 이익집단의 단체행동에 공권력의 과도한 개입은 비판 여지도 있다. 그러나 단체행동이 공공성을 파괴하면 비판의 잣대는 달라야 한다. 양비론이 또 다른 ‘편향’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