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유한국당은 반성과 변신은커녕 친박(親朴)과 비박(非朴)으로 나뉘어 ‘네 탓’ 집안싸움만 해왔다. 한국당은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뜬금없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해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고, 특정 후보 지지자들이 몰려다니며 행사를 방해했다. ‘탄핵 찬반’으로 나뉘어 다시 과거 진흙탕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자유한국당의 새 대표로 뽑힌 다음날 조선일보 사설 일부다. 당내 계파싸움, 5·18 폄훼 망언, 박근혜 탄핵 부정 등 한국당의 결점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이는 황교안 체제의 과제다.

▲ 2월27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교안 당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월27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황교안 당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한국당의 앞길은 두 갈래다. 선명성을 앞세운 정당으로 가는 길과 보수대통합으로 가는 길이다. 전자는 집토끼만 신경 쓰면 된다. 전대 후보로 보면 김진태의 길이다. 현재로선 자칫 TK정당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후자의 길은 외연확장이다. 오세훈의 길이다. 황 대표가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37.7% 지지에 그쳐 50% 지지를 넘긴 오세훈 후보에게 밀린 것을 보면 민심과 당심의 차이가 크다. 이를 극복하며 바른미래당과 연대도 모색해야 한다.

보수진영의 궤멸을 우려하는 조선일보는 꾸준히 한국당과 황 대표에게 산토끼 공략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당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총선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조선일보의 지적을 수용해야 한다. 조선일보의 주장을 기준으로 볼 때 황교안 체제의 전망은 밝지 않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4일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를 유야무야 넘어가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5·18 폄훼 망언’으로 전당대회를 진흙탕으로 만든 김진태·김순례 의원을 징계하는 문제는 황 대표의 결단력을 확인할 첫 시험대다. 위기 시 지도자는 칼을 휘두를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박근혜 탄핵을 부정했던 발언을 어떻게 수습할지는 계파청산 의지를 가늠할 잣대다.

황 대표는 사실상 답을 내놨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4일 만남에서 5·18 망언과 탄핵에 대해 질문하자 황 대표는 답변 없이 ‘김경수 지사 댓글조작 의혹’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를 만나서도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황 대표는 답을 피하며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끌어가야겠다”고 했다. ‘관료출신의 한계’, ‘무임승차’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은 이런 미숙한 대응이다.

당직 인선을 봐도 친박 일색이다. 전대 과정에서 주요인선 중 하나인 사무총장 자리에 김세연 의원이 거론됐었다. 김 의원은 개혁 성향의 소장파 의원으로 바른정당에 갔다가 돌아온 복당파로 만약 김 의원이 사무총장이 됐다면 통합 행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세웠다. 보수 언론은 한선교 의원을 두고 “계파색이 옅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했지만 한 의원은 지난 2일 페이스북에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생일을 알리며 “올해 생신도 구치소에서 보내시니 마음이 아프다”는 등 친박 색채를 드러냈다.

전략기획부총장에 오른 추경호 의원, 대변인이 된 민경욱 의원은 최근 ‘친황계’ 모임으로 불리는 ‘통합과 전진’의 멤버다. 대표 비서실장이 된 이헌승 의원은 2007년부터 10년 넘게 친박계로 분류된 인사다. 심지어 좌파독재를 저지하겠다며 ‘신적폐저지특별위원회’를 만들어 김태흠 의원에게 맡겼다.

황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전한 오세훈 후보를 지난 2일 만났다. 박근혜 탄핵을 인정하고 보수통합을 외쳤던 오 후보의 마음을 다독이는 게 전대 직후 중요한 과제다. 역시 조선·중앙일보 등 보수 성향의 언론은 이를 “통합 행보”라 평가했다. 그러나 오 후보 측은 언론에 “지명직 최고위원 등 당직인선 관련해서는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말한 것을 보면 오 후보의 마음을 돌렸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실제 인선에서도 말 뿐인 통합이었다.

▲ 자유한국당 오세훈, 김진태, 황교안(좌측부터) 당대표 후보가 2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채널A 사옥에서 열린 합동TV토론회에서 손을 잡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노컷뉴스
▲ 자유한국당 오세훈, 김진태, 황교안(좌측부터) 당대표 후보가 2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채널A 사옥에서 열린 합동TV토론회에서 손을 잡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노컷뉴스

바른미래당과 연대도 현재로선 어렵다. 우선, 탄핵에 대한 입장차는 바른미래당과 연대를 어렵게 한다. 발언을 일부 거두긴 했지만 황 대표는 ‘태블릿 PC 조작설’까지 동의했다. 게다가 5.18 망언 같은 사안을 방치해 한국당의 지평조차 좁히는 상황에서 외연 확장은 더욱 힘들다.

바른미래당을 대하는 태도 역시 부적절했다. 지난달 말 손학규 대표는 황 대표를 만나 “정당 간 존중을 해줘야 하는데 무슨 당대당 통합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하느냐”고 면전에서 비판을 받았다. ‘당대당 통합’이란 사실상 바른미래당 흡수통합이니 바른미래당에선 발끈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황 대표는 박근혜 탄핵과 당 분열 과정 당시 여의도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당대표보다 자유롭게 당을 운영할 수 있는 조건이다. 물론 극단적 성향의 대의원을 의식해야 하니 전당대회 때야 무슨 말이야 할 수 있다지만 선거가 끝나면 마무리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사과나 수습은 보이지 않는다.

▲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다음날인 2월28일자 조선일보 사설
▲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다음날인 2월28일자 조선일보 사설

지난달 28일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황 대표가 박근혜 탄핵에 모호한 입장을 보이는 것을 두고 “황 대표는 이렇게 논란을 덮고 가겠다는 생각이겠지만 2022년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 문제는 두고두고 황 대표를 괴롭힐 것”이라며 “그러면 박 전 대통령 한 사람이 보수 진영을 3대에 걸쳐 거덜 냈다는 오명(汚名)을 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같은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황 대표는 일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지금 한국당은 전 정권, 전전 정권의 잘못된 공천으로 어쩌다 국회의원이 돼 좋은 자리를 지키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들이 정권의 잘못을 지적해 고치는 것이 아니라 때마다 면죄부를 주고 있다. 무능과 안일이 심각하다.”

황교안 대표는 지금 조선일보의 메시지조차 거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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