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은 말한다. “허적(許積)은 평생 시세에 영합하고 임금의 뜻을 교묘히 맞추었으며, 겉으로는 화평한 듯이 보이지만 속으로는 은밀하고 사사로웠다.…(중략)…심지어 당시의 공론(남인 정권의 공론)에서 용납되지 못할 인사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공정한 듯 보이려고 이조판서에 추천했다가, 대간의 탄핵이 나오면 이를 따라 그들을 갈리게 했다. (허적의) 마음먹은 것을 교묘히 하고 수단을 번복함이 아! 심하도다! (원문 초략 번역, 숙종실록, 숙종 1년 2월 29일)

영의정 허적에 대한 사관의 인물평이다. 허적이 이조판서로 잇달아 추천한 인물은 서인계 중진과 원로급의 핵심이었던 민정중(閔鼎重)과 이정영(李正英)이었다. 허적 본인이 남인의 영수(구체적으로 탁남의 영수)로서 서인계 인사를 인사권을 가진 이조판서에 추천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하기 힘들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당시는 남인 집권기였기 때문이다. 허적의 태도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이 바로 대간에 포진한 자당 내의 신진들이었다. 허적이 서인계 두 인사를 차례로 이조판서에 추천하자, 남인계 대간들은 당연히 이를 막기 위해 그들을 탄핵했다. 그러자 허적은 마치 공정한 인사를 하는 것처럼 대간의 의견을 따라 추천자를 바꾸었다. 집권당의 영수가 원칙과 기준이 없는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 허적 초상.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허적 초상.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적의 이런 처세는 그가 살아온 정치 역정을 살펴보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조부 허잠과 외조부 김제갑은 선조 연간 동인이었고, 아버지 허한과 고모부 이광정은 남인이었으며, 사촌 누이가 광해군의 후궁 숙의 허씨(淑儀許氏)였다. 가문의 당색이 소북계와 가까운 남인이었던 만큼 허적 자신도 당연히 남인이었다.

허적은 인조반정 뒤 서인 집권기에 이른바 출세가 힘든 가문 출신인데도 현종 연간에 우의정을 거처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그가 이렇게 서인 집권기에 오히려 출세가도를 달리게 된 것은 당시 정국의 주요 현안이던 청(淸)과의 외교, 대동법 추진, 군제 정비 등에서 빼어난 실무능력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효종과 현종 연간 서인 한당(漢黨)의 실세였던 정태화와 김육 등의 인정을 받았고, 이 덕분인지 동생 허려(許穭)가 정태화의 조카사위가 되는 등 집권 서인과 인척관계도 맺었다. 두 차례의 예송에서도 그는 한당과 함께함으로써 서인 명분론의 거두 송시열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즉, 복잡한 국내외적 상황에서의 보인 실무 능력과, 송시열 제거를 위해 왕실 친인척 세력이 주축인 한당과 손을 잡은 것이 그가 서인 집권기 동안 출세 할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이다.

허적은 숙종의 즉위와 함께 원상(院相)으로서 어린 임금을 보필하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보조자였음을 알고 있었다. 국왕 숙종과 대비 명성왕후가 원래 서인인데다 당시 정국의 실세는 병권을 가지고 있던 외척 김석주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인은, 허적 본인을 비롯해 부마가문의 후예들인 권대운·유명천을 실세로 하는 탁남(濁南)과 허목·윤휴를 내세우고 종친인 삼복(三福)들의 외숙인 오정위 등이 실세였던 청남(淸南)으로 나누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허적은 자신이 영의정이지만 조정 내의 핵심 요직인 이조판서의 추천권 행사에서 국왕을 비롯한 외척과 청남 세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확고한 원칙이나 기준을 가지지 못했기에 마치 공정한 사람인양 행세한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역시 허적은 명분과 원칙에 목숨을 거는 송시열 같은 정치인 보다는 보다는 관료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는 결국 아들이 주도했다는 역모에 관련되어 사약을 받고 운명했다.

▲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황교안 자유한국당 신임 대표. 사진=민중의소리.

허적에 대한 사관의 비판은 요즘 정치권에 여러모로 시사점을 준다. 자신이 국무총리로서 보좌하던 대통령을 헌정사상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한 인사가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도 없이 정치권에 나왔다. 제1야당의 당대표가 되기 위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탄핵을 부정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번복하기도 했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다. 그런 자세로 당대표가 된다고 한들 그 정당을 제대로 이끌면서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그의 이러한 행보를 보면, 씁쓸하게도 서인정권 속에서 출세가도를 달려온 실무관료 출신의 재상 허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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