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 한겨레는 국민주 신문으로 창간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 세력 분열과 군부 권위주의 세력의 재집권을 목도한 국민들은 ‘새 신문’을 갈구했다. 국민적 열망으로 십시일반 만들어진 진보 언론이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한겨레 주주는 모두 7만여 명이다. 이들이 보유한 311억3795만원의 주식이 한겨레 자본금이다. 전체 주주 가운데 95.14%가 200주 이하를 갖고 있다. 1000주 이하를 가진 소액 주주가 전체의 99.6%다. 한겨레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지 못했지만 주주들 공통 바람은 “창간 정신을 잊지 말라”는 것으로 한결같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이뤄진 양상우 한겨레 대표와 한겨레 주주들의 만남도 국민주 언론이기에 가능했다. 주주 전용 매거진 ‘한겨레:온’과 ‘문화공간 온’ 협동조합이 공동주최로 연 양상우 대표 특강에선 국민주 언론의 고민과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문화공간 온’은 한겨레 주주들과 시민의 오프라인 아지트로 서울 종로에 있다.

20~80대까지 세대를 아우른 한겨레 독자와 주주들이 모인 이날 특강에서 양 대표는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라는 말로 신문 언론 위기에 입을 뗐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현 시대 대학생들은 기존 매체가 아닌 유튜브를 찾고,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도 떨어지는 영향력을 걱정할 정도로 매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 통신사가 제공하는 데이터 공급량의 50%이상이 유튜브 시청에 쓰인다. ‘유튜브 시대’다. 한겨레 기자가 이번 북미 정상회담 취재 과정에서 ‘브이로그’, ‘현장직캠’ 등 유튜브 콘텐츠를 적극 선보인 이유이기도 했다.

▲ 양상우 한겨레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한겨레 주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양상우 한겨레 대표가 4일 오후 서울 종로 ‘문화공간 온’에서 한겨레 주주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플랫폼 전환과 함께 뉴스 소비자 수요도 달라지고 있다. 뉴스보다 교양, 재미, 오락 콘텐츠를 찾는 이들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해서일까. 기자들 노동 강도는 10~20년 전에 비해 2~3배 높아졌다. 양 대표는 “유튜브 시대 도래는 매체들의 과제이기도 하다”며 “종이신문도 만들어야 하고 사진도 해야 한다. 기존 인터넷 기사도 소홀할 수 없는데 이제는 영상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 영상 콘텐츠에 “다른 (신문) 매체와 달리 한겨레 기자들이 영상에 공을 많이 들였다”며 “방송사에 비하면 퀄리티가 못할 수 있지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인 건 분명하다. 만들어야 할 콘텐츠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특강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은 진보 정권에서 진보 언론의 역할과 고민이었다. 일반 국민은 ‘민주 정부에서 진보 언론 살림살이가 보수정권 때보다 낫지 않느냐’고 묻는다.

한겨레 당기순이익 자료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1999년 무렵부터 추위의 길목에 들어선 한겨레는 2004년 노사 합동 비상경영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도리어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경영이 다소 호전됐다.

진보 진영 지지자들의 한겨레 비판도 고민을 깊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 호칭을 두고 ‘절독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한겨레는 김정숙‘씨’로 표기했다가 한 달 이상 거센 항의를 받았다. 부수 수천이 끊겼다. 10억여 원에 가까운 매출이 감소됐다. 양 대표는 “뉴스 소비자 없는 저널리즘은 존재할 수 없다”면서도, 뉴스 소비자 생각과 저널리즘적 진실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거리를 던졌다. “강력한 권력·금력 집단이기도 한 뉴스 소비자에 밀려 진실에 배치되는 보도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양 대표는 “기자들에게 월급 주는 사람으로서 현실적 고민도 있다”면서도 “한겨레는 그래도 뉴스 소비자의 편견에 맞서는 보도를 해왔다”고 말했다. 다만 “겸허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확신을 경계하되, 도그마에 도전해야 한다. 어제 믿었던 것을 오늘 다시 회의할 줄 알아야 한다”며 저널리스트들의 신중함을 주문했다. 

한겨레 보도 역시 사실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사실과 진실 앞에서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양 대표는 “결국 독자와 주주에 대한 한겨레 임직원들의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 대표는 특강에 모인 한겨레 주주들에게 “한겨레는 위태롭게 보드를 타고 있는 아이와도 같다. 무게 중심은 앞쪽에 두면서도 넘어지지 말아야 한다. 넘어질까 내미는 손을 외면하지 마시고 잡아 달라”며 관심과 애정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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