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불법사이트 접속 차단 해제 논란, 인터넷 망사업자(KT)의 단순한 실수로 벌어진 해프닝이었을까.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와 심의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28일 “KT는 방통심의위가 요청한 접속 차단 사이트 목록(불법 해외사이트 895건) 외에 기존 URL 차단 방식을 적용하던 사이트 일부에 대해서도 SNI 접속 차단을 적용한 것”이고 해명했다.

심의위가 검열 논란이 일었던 SNI(Server Name Indication) 필드 차단을 요청한 895건의 목록은 변함없는데, KT가 임의로 기존 URL 차단 불법사이트까지 SNI 차단 기술을 적용하면서 초래한 결과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복수의 방통심의위, KT 관계자들은 방통위 등의 공식 해명 내용의 허점을 지적했다. KT가 기존의 불법 사이트까지도 SNI 방식을 적용하기 전에 이미 방통위 측에 관련 내용에 대한 질의 과정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25만명을 넘은 https 차단 정책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25만명을 넘은 https 차단 정책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영상 갈무리
결국 지난달 11일 방통위의 SNI 방식 차단 목록 발표 후 이 목록에 해당하지 않는 불법 사이트까지 차단됐다가 다시 해제됐다는 기사가 나오기 전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는 이 같은 적용 오류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SNI 방식으로 차단해서는 안 되는 낙태약 사이트 ‘위민온웹’ 등의 차단이 다시 풀리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https 차단 정책에 반대하는 누리꾼들의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서며 반발이 확산하자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든 것이 아니냐는 기사들도 쏟아졌다.

하지만 사실관계만 따지고 보면 “KT가 해당(SNI 과잉 차단) 사실 인지 후, 요청받은 사이트에 대해서만 SNI 접속 차단이 적용되도록 변경했다”는 방통위 측의 해명이 맞다. 정부가 반발 여론을 의식해 SNI 접속 차단 사이트 일부(친여성주의 성향)만을 푼 것은 아니다.

‘위민온웹’ 등 SNI 차단 방식을 적용하지 말아야 할 사이트 차단 사실을 가장 먼저 파악한 곳은 방통심의위다. 심의위 측은 지난해 위민온웹의 URL 접속을 차단했지만 https 보안 접속으로 뚫렸던 사이트가 갑자기 막힌 이유를 알아보다가 KT가 SNI 접속 차단 방식을 적용했음을 확인했다. 심의위 측은 이런 사실을 방통위 담당 부서에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부금을 받고 낙태약을 보내주는 ‘위민온웹’ 사이트는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 사이트로 규정해 URL 접속을 차단했지만 https 보안 접속이 가능하다.
기부금을 받고 낙태약을 보내주는 ‘위민온웹’ 사이트는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 사이트로 규정해 URL 접속을 차단했지만 https 보안 접속이 가능하다.
방통위 측은 처음엔 (SNI 접속 차단 해제는) ‘방통심의위와 KT가 상의해 결정한 일’이라고 하다가 나중엔 심의위와 공동 해명 자료를 내며 최종 KT의 적용 실수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이번 해명엔 KT의 질의와 심의위 보고를 받은 방통위가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는 생략됐다. 지금까지 ‘차단 사이트 시행 관련은 심의위와 망사업자의 협의 사항’이란 게 방통위 설명의 전부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금도 검열 논란 때문에 난리인데 우리가 KT 쪽과 차단 목록을 협의한다는 건 현행법상 말이 안 된다”며 “우리가 실제 심의위, 사업자들과 새로운 차단 기술 방식을 협의했고 관련 공문을 보낼 때 같이 보내기도 했지만 SNI 차단 목록은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다”고 말했다.

KT 측은 망사업자가 결과적으로 SNI 과잉 차단한 책임이 없다고 볼 순 없지만, 방통위 측에도 관련 질의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는데 모든 걸 KT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우리는 지시·감독기관이 제시한 기준과 지침에 따라 조치할 수밖에 없고, 이전엔 차단했던 불법 사이트들도 같이 처리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고 질의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방통위 쪽에서 확답을 안 줬다고 해도 우리가 시행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엔 수긍하지만 전적으로 우리 탓만은 아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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