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친일 잔재로 ‘빨갱이 낙인’을 꼽고 청산을 선언하자 보수언론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유독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사설과 칼럼에서 문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며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도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 잔재”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 발언 이후 조선일보는 2일자 사설에서 “3·1운동 100주년이란 뜻깊은 날에 무슨 난데없이 ‘빨갱이’론인가”라며 “나라와 국민은 21세기에서 글로벌 경쟁 중인데 대통령은 80~90년 전 친일·빨갱이 타령”이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4일자 김순덕 칼럼.
▲ 동아일보 4일자 김순덕 칼럼.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에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며 “하지만 빨갱이란 용어 자체가 설사 일제의 독립운동가 탄압 과정에서 생겨났다 해도 굳이 기념사에서, 그것도 100주년까지 겹쳐 의미가 더욱 각별한 3·1절 행사장에서 대통령이 힘줘 강조할 일이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현 정부는 ‘부역자’ ‘적폐청산’ 운운하며 적과 아군으로 편을 갈라 갈등과 대결을 부추겨 왔다”며 “그 결과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앞장서 한 줌도 안 되는 일부 극우 세력을 큰 목소리로 나무라고 자극하는 건 또 다른 갈등이고 분열”이라고 주장했다.

보다 노골적으로 문 대통령에게 반감을 드러낸 이는 김순덕 동아일보 대기자다. 김 기자는 4일 ‘김순덕 칼럼’에서 “표현의 자유까지 갈 것도 없다.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를 수 없는 나라는 북한과 다름없는 전체주의 국가다. 좌빨도 아니고, 주사파도 아니고, 빨갱이라는 자유당 때 단어가 다시 들리는 데는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외국 언론에서 북한 대변인이라고 할 만큼 친북적인 언행과 정책을 보이니 시대착오 같은 빨갱이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며 ‘빨갱이 낙인’ 책임을 정부에 돌린 뒤 “통합을 말해도 믿기 힘들 판에 대통령은 갈등 조장 언어를 발설했다. 2020년 총선을 내전(內戰)처럼 치르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민주당 50년 집권론’이 핵을 쥔 35세의 김정은과 더불어 자유 없는 평화로 가겠다는 것인지 눈을 부릅뜰 일”이라고 덧붙였다.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김순덕 칼럼은 비판 받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 시사평론가 이강윤씨는 페이스북에 김순덕 칼럼을 공유한 뒤 “자신의 지난 100년에 스스로 침 뱉는 동아일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진의를 뻔히 알면서도 이런 글을 쓰다니 너무 저열하다”며 “3·1만세운동에 힘입어 창간한 동아일보가 자신의 지난 100년을 이렇게 스스로 욕보일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2020년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한겨레 2일자 사설도 눈에 띈다. 조선·동아일보 사주의 친일 전력을 다시 거론했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조선일보의 선대 사주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는 정부가 공인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며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2009년 11월까지 4년여 조사 끝에 확정한 1006명에 포함됐고 후손들이 소송까지 걸었으나 대법원은 이들을 친일행위자로 확정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그럼에도 두 언론사는 1985년 서로의 친일 행적을 둘러싸고 이전투구의 논쟁을 벌였을 뿐 한 번도 국민과 독자 앞에 진지하게 사죄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계기마다 한때의 ‘항일’만 부각하고 홍보할 뿐 ‘친일’의 부끄러운 역사는 여전히 감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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