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영리화는 대기업의 지상과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6월 ‘9대 혁신성장 규제개혁 과제’로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원격의료 규제완화를 꼽아 기획재정부에 제시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그해 8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한 가지를 콕 집어 요구했다. 의료(바이오제약 산업) 규제완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보건복지부에 의뢰받아 지난 2010년 펴낸 665쪽짜리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은 ‘총체적 의료영리화를 위한 추진계획’으로 불린다. LG와 SK, 롯데, KT 등도 신사업 분야로 보건의료에 주목하고 있다. 대기업을 비롯한 경영계가 의료 규제완화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

▲ 지난해 8월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모습. 사진=KBS 뉴스보도 갈무리
▲ 지난해 8월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모습. 사진=KBS 뉴스보도 갈무리
대기업, ‘무한 수익화 가능’ 의료분야로 고개… 조건은 규제완화

보건의료분야는 자타공인 대기업의 ‘차세대 먹거리’다. 보건의료분야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은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일반 제조업의 이윤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를 대체할 분야로 의료산업 진출을 시도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측에서는 이를 ‘신성장 동력’이라고 표현한다.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도 이를 명시한다. ‘총요소생산성(투입 대비 산출)이 일반 제조업에서는 90년대 중후반부터 하락선을 그린다’며 “기술혁신 수준이 높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투자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은 제조업을 대체할 분야로 왜 하필 보건의료산업을 골랐을까.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의료산업의 독특한 특성”을 이유로 꼽았다. 의료분야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표 산업이다. 판매자(의료진)와 구매자(환자) 사이 정보 비대칭이 극단적이다. 구매자는 자신의 생명과 건강이 걸린 문제라 돈을 아끼지 않는다. 공포마케팅이 가능해진다. 

수익화 영역도 무궁무진하다. IT(정보처리기술)과 BT(생체기술), NT(나노기술) 등 기술과 융합하면 유전자 검사나 건강관리 서비스처럼 실제 진료가 아니라 앞으로 걸릴 가능성을 내다 보고 ‘없는 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가 의료 공공성을 위해 쳐놓은 규제를 전면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현행 의료법은 병원의 부대 수익사업을 장례식장, 식당 등 8가지로 제한했다. 의사 1명 당 1개 병원만 차려 책임지도록 했다. 상품의 가격인 진료비를 책정할 때도 건강보험공단과 협상을 거친다. 

물론 한국의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OECD 평균치의 10%를 밑돈다. 여전히 의료 공공성은 부족하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그 틈새로 민간병원이 규모를 키웠고, 국내자본과 함께 규제를 치워달라고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 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 웹사이트 갈무리
▲ 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 웹사이트 갈무리

영리병원 요구 중심엔 브랜드병원이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으로 논란 중심에 선 영리병원은 의료영리화의 첨병이다. 영리병원은 병원에서 번 돈을 외부 투자자에게 돌려줄 수 있는 병원을 말한다. 병원 운영 목적이 ‘수익 창출’에 있다는 뜻이다. 이 역시 규제완화의 결과다. 의료법은 의료사업 자격을 개인의사와 비영리기관으로 한정하고 외부 투자를 금지하지만,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국내 민간브랜드병의원들은 영리병원 허용을 강하게 주도한다. 특히 성형외과와 치과, 피부과 등 고가에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진료를 하는 병의원들이 주도적이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병의원들은 돈벌이 방식을 다양화하고 영속화할 수 있다. 

우선 의사가 아닌 민간인이 병원을 설립하고 소유할 수 있고, 분할 상속이 가능해진다. 투자자에 수익을 배분할 수 있고, 병원을 인수합병할 수도 있다. 개인병원은 최고 40%의 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법인화하면 25%만 낸다. 이들 병의원이 뜻을 같이 하는 대표 단체는 ‘대한브랜드병의원협회’다.

개원 시한이 4일까지였던 녹지국제병원도 마찬가지다. 녹지병원 국내 우회투자 의혹의 중심에 국내 최대규모 성형외과그룹이 있다. BK성형외과 홍성범 원장이다. 우석균 공동대표는 “병의원들이 비영리병원법인의 굴레를 벗으려는 노력에서 나온 게 영리병원”이라고 지적했다.

▲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연합뉴스
▲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연합뉴스
제주영리병원 사업 시행자 녹지그룹, 주목적은 부동산사업

녹지국제병원을 둘러싸고 언론에서 주요 사업시행자로 조명받은 녹지그룹은 어떨까. 녹지그룹의 영리병원 사업 의지를 두고는 해석이 분분하다. 본래 부동산투기회사인 녹지그룹의 본 목적은 ‘제주헬스케어타운’을 통한 부동산 사업이었고, 녹지병원 사업은 ‘헬스케어’ 명목을 충족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녹지그룹은 수차례 공문으로 사업 의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제주도에 보낸 공문에선 “당사는 귀 도와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강요에 가까운 요청에 따라 헬스케어타운의 의료사업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하게 됐다”며 “병원 개설을 지연한다면, 귀 도와 JDC에서 인수해 직접 운용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개원허가를 받기 전 10월에도 제주도에 병원 인수를 요청했다.

한편 녹지국제병원 개원 시한이 4일로 만료하자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는 5일부터 녹지 측의 의견을 듣는 청문 절차를 시작해 이달 안에 최종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한다. 녹지 측은 지난달 제주도의 ‘내국인 진료 제한’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걸었고, 이를 이유로 개원 시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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