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기자들이 민·형사소송 경험이 없다. 경험이 없다는 건 기사를 잘 써서 일수도 있지만, 소송당할 가능성이 높은 기사를 쓰지 않은 탓 일수도 있다. 대게 많은 기자들은 후자에 가깝다. 반면 어떤 기자들은 소송을 달고 산다. 기사를 잘 못 써서 일수도 있지만, 소송당할 가능성이 높은 기사만 쓴 탓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기자들은 본능적으로 느낌이 온다. 이 기사를 쓰면 소장이 날아오고, 검찰에 가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쓴다. 써야만하기 때문이다.

시사IN북에서 최근 출간한 ‘저널리즘의 신:손석희에서 르몽드까지’에선 소장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독립 언론, 탐사보도 최전선에 있는 언론인들이 등장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언론인들은 소송에 도가 터서 아예 소송대처법을 책으로 낸 기자(주진우)도 있다. 이 책은 “저널리즘의 신뢰(信)를 지키려 분투해온 이들이 저널리즘의 신화(神)를 어떻게 새롭게 써내려 가고 있는지 조망한” 거대한 기획물로, 표지 디자인이 낙서를 모아놓은 것 같아 별로지만 표지만 넘기면 마지막장까지 버릴 내용이 없다.

▲ [새 책] 시사IN북 / ‘저널리즘의 신’ / 1만5000원
▲ [새 책] 시사IN북 / ‘저널리즘의 신’ / 1만5000원
특히 주류언론의 ‘시스템’을 벗어난 독립 언론들의 ‘분투기’는 흥미롭다. 2017년 2월, 日아사히신문을 그만둔 기자들이 모여 창간한 독립 언론 ‘와세다 크로니클’의 첫 번째 탐사보도는 광고회사 덴츠와 교도통신 간의 거래를 폭로한 ‘판매된 기사’ 시리즈였다. 이들은 교도통신이 돈 받고 기사를 쓴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일본이 우생보호법을 근거로 과거 장애인 등을 강제로 불임 시술한 행위를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와세다 크로니클’은 일본의 ‘기레기’, ‘마스코미’(매스미디어+쓰레기)를 겨냥했다.

대만의 ‘보도자’, 홍콩의 ‘단전매’, 필리핀 ‘래플러’ 등 아시아 독립 언론의 생생한 현장감도 확인할 수 있다. 스페인 ‘엘파이스’, 덴마크 ‘폴리티켄’을 비롯해 독일 ‘슈피겔’, 영국 ‘가디언’ 등 탐사보도로 유명한 주요 언론에 대한 소개도 짧지만 정확한 편이다. 책에 등장하는 언론인들은 출입처-보도자료 중심의 주류 시스템을 벗어나 현장에서, 또는 방대한 데이터 앞에서 삶을 내던지고 있다. 그렇게 필리핀에선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2016년 5월 이후 지금껏 저널리스트 12명이 살해당했다.

탐사보도는 목숨 내놓은 일부 기자들만의 전유물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날 탐사보도는 뉴스가 뉴스로 덮이는 미디어시대에 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브랜드다. 사무실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취재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하며 하나의 사실을 더 찾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을 지키는 게 참 어려운 시대다. 삼성과 같은 자본에게 협찬금을 늘려달라고 구걸하지 않는 언론, 조회 수에 연연하지 않으며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들을 만드는 건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시사IN기자들은 왜 독립 언론을 찾아다녔을까. 프린트 미디어의 종말을 모두가 예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립언론 시사IN 또한 살 길을 찾아야했다. 이 책에 참여한 시사IN기자들은 일종의 ‘신사유람단’이었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은 책을 펴내며 이렇게 적었다. “책을 통해 시사IN이 왜 탐사보도를 추구하는지, 국내외 언론들이 왜 탐사보도에서 미래의 생존 동력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바람은 ‘소박’하다. 삼성보다 1년만 더 버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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