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맞은 3.1절에 “일본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과 일부 언론에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참 아프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날 녹화 후 2일 새벽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유시민의 알릴레오’ 9화 특집방송에서 “이번 하노이 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가 나오고 나서 전 세계에서 제일 좋아한 사람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아니었나”라며 “그(자민당) 각료들도 희색만면(喜色滿面)해 잘됐다고 하고, 3.1절에 그 장면을 보니 매우 화가 나더라”고 씁쓸해했다.

이날 연합뉴스 등은 일본 정부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합의가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워하기보다는 안도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1일 일본 신문들에 따르면 전날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의 결과를 놓고 일본 정부와 여당 자민당 내에서 다행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 2일 새벽 업로드된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 9화 특집방송 갈무리.
▲ 2일 새벽 업로드된 노무현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 9화 특집방송 갈무리.
아베 총리는 전날 “안이한 양보를 하지 않고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촉구해 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일본은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제재를 해제하는 등 가장 좋지 않은 결과가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 북한 인민 중 이 회담 결렬을 기뻐하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베 총리만 기뻐하는 게 아니었다”며 “아무리 민족주의가 문명의 대세는 아니라 하더라도 국민국가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일을 두고 기뻐하는 심리를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노이 회담 결렬 소식을 아베가 좋아합니다’ 이 말을 3.1절 내가 논평으로 대신한다”고 덧붙였다.

유 이사장의 지적대로 일본 각료들만 이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을 다행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 회담 결렬 이유를 북한에만 돌리거나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라는 검증되지 않은 허상에 끌려갔다”고 청와대와 정부를 비판하며 결렬을 ‘반색’하는 듯한 국내 언론도 있었다.

동아일보는 1일 “北-美 담판 결렬, ‘올바른 거래’ 위한 불가피한 진통이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의 이유는 북한의 과도한 요구였다”며 “북한 ‘핵개발의 심장부’인지,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인지 논란의 대상인 영변 폐기만으로 미국이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 해제’ 원칙을 허무는 보상조치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예측불허의 협상가’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동아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치밀한 협상 전략 차원에서 회담을 결렬시킨 것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당장 외교적 성과에 급급해 적당한 수준의 ‘나쁜 거래’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보다는 ‘올바른 거래’를 내세워 협상장을 박차고 나오는 쪽을 선택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1일자 동아일보 사설.
지난 1일자 동아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한·미 정부의 잘못된 자세가 김정은에게 핵을 지키면서 미국의 제재망을 풀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이라며 “미·북 회담 결렬 못지않게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 국민을 더 걱정스럽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문재인 대통령은 언제나 ‘김정은이 비핵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해왔다. 한 개인이 김정은 말을 믿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통령이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혼자 속는 것이 아니라 5100만 국민을 핵 인질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 이사장은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열매를 맺을 가능성은 더 커진 것”이라며 “여전히 열쇠를 쥐고 있는 ‘키맨’(key man)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고 분석했다.

유 이사장은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70년간 있었겠지만, 김 위원장이 떨치고 나왔으면 한다. 담대한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며 “북한이 (핵·미사일) 리스트를 다 제출하고 국제 사찰을 받는다고 해서 발가벗는 것도 아니고 무기를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는 게 내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에도 “(북한이) 혼자 힘으로 미국을 상대하지 못하니까 국제 여론과 북한에 기본적으로 우호적인 주변국을 믿고 손잡고 한번 가보자고 하면서 지금은 북한 쪽이 불리한 상황이니까 조금씩 내줘서 거래하는 시도보다는 대담하게 다 던져버리는 식의 선택을 하도록 중재하면 어떨까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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