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라가 갈등을 해결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사용하는 협상엔 실무진이 자주 만나 협상한 결과를 위로 올려 양 정상이 최종 승인하는 ‘보텀업’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지난 1년간 북미 대화는 거꾸로 양 정상이 큰 틀에서 합의한 뒤 실무진에게 후속 협상을 넘기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됐다.

하노이 북미 2차 정상회담이 결실 없이 끝나자 ‘톱다운’ 협상 방식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이런 지적은 1일자 중앙, 경향, 조선일보가 각각 8, 3, 4면에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1일자 8면에 2차 북미 회담이 결렬된 원인 중 하나는 트럼프-김정은의 “개인적 결단에 의존한 ‘톱다운(하향식)’ 협상 구조였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보통의 정상회담에서 사용하는 보텀업(상향식) 협상을 소개하면서 “먼저 양국의 외교당국 실무진들이 만나 기본적인 회담 어젠다와 서로 주고받을 협상안을 논의한다. 여기에서 진전이 있으면 양측의 장·차관급이 접촉해 마무리 조율을 한다. 이어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 사전 조율된 내용을 재확인한 뒤 합의안에 서명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여는 수순”이라며 전했다. 

양 정상이 담판 짓는 톱다운 협상 리스크 현실로

중앙일보는 이런 보텀업 협상에선 “이번 하노이 회담처럼 양자 정상회담이 아무런 결실 없이 끝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전에 (실무진에서) 합의된 내용이 없으면 아예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엔 여느 정상회담과 달리 톱다운 방식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노딜’이란 극단적 결과를 도출했다. 북미가 톱다운 방식을 택한데는 북한 체제의 특수성과 즉흥적 스타일인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 특성이 겹쳐서다. 백지 상태에서 만난 두 사람이 둘 다 상대를 설득해 통 큰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계산이 빗나갔다. 중앙일보는 이처럼 “톱다운 협상은 단번에 큰 진전을 이룰 수도 있지만, 이번처럼 양측 모두 상처만 받을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고 해석했다.

▲ 1일자 중앙일보 8면(위)과 경향신문 3면
▲ 1일자 중앙일보 8면(위)과 경향신문 3면

경향신문도 이날 3면에 ‘정상 간 담판, 톱다운 방식 취약성 드러났다’는 제목의 북미 협상방식을 지적하는 기사에서 “톱다운 방식의 취약성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은 “미·소가 1986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합의문 도출에 실패했지만, 회담에서 정상 간에 솔직한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 토대가 돼 이듬해 중거리 핵무기 폐기협정에 서명했고 (결국 그것이 반세기 가량 유지된) 냉전종식 시작”이 됐다고 소개했다.

톱다운 협상을 지목한 1일자 신문기사

중앙8면 : 톱다운 협상 리스크…트럼프·김정은 ‘한방’에 의존하다 ‘헛방’
경향3면 : 정상 간 담판 ‘톱다운 방식’ 취약성 드러났다
조선4면 : 정상들의 통큰 결단에 기댔다가… 퇴로없이 무너진 담판

조선일보도 이날 4면에 ‘정상들의 통큰 결단에 기댔다가… 퇴로없이 무너진 담판’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톱다운 협상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톱다운 협상의 대표사례로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한계가 분명한데도 청와대 등 일부에서는 북미의 “톱다운 협상을 ‘고르디우스 매듭 끊기’에 비유하면서 기대감을 높였”고 실무협상에서 세부사항에 사전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회담 날짜부터 잡고 미디어를 통한 흥행에만 신경을 썼다”가 ‘빈손 회담’이 됐다고 평가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대담하게 행동할 때만 풀 수 있는 문제를 일컫는 속담이다.

영변 플러스 알파, 평양 인근 ‘강선’ 외에도 더 있나?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핵 해체에)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영변 핵시설 외에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고 덧붙였다. 영변외 우라늄 농축시설이라고 알려진 평양 인근 ‘강선’의 등장이 북미 회담 결렬의 숨은 원인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한국일보는 1일자 4면에 ‘트럼프가 말한 영변 말고 다른 핵시설은 강선이 유력’이란 제목으로, 한겨레는 3면에 ‘미국이 말한 영변 외 핵시설은 어디?’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도 3면에 ‘트럼프 영변外 큰 규모의 핵시설 지적하자, 김정은 깜짝 놀랐다’는 제목으로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을 회담 결렬의 복병으로 지목했다.

평양 인근 ‘강선’의 등장은 지난해 6월부터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데 이어 지난달 일본 아사히신문이 전직 청와대 관리를 인용해 다시 보도했다.

외신 보도 내용을 정리하면 우라늄 농축시설은 플루토늄 시설보다 은폐가 용이하고, 강선에는 영변의 2배 규모의 시설이 있고, 강선 외에도 북한엔 10여곳에 핵시설이 분산돼 있다는 것이다.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1일자 한국일보 4면, 한겨레 3면, 조선일보 3면
▲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1일자 한국일보 4면, 한겨레 3면, 조선일보 3면
이 같은 보도엔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이 계속 화자(話者)로 등장한다. 우정엽 센터장은 1일자 한국일보와 조선일보, 매일경제신문에 직접인용됐다. 우정엽 센터장은 한국일보 1일자 4면 기사에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에 북측이 놀랐다는 것을 보면 강선 외 다양한 장소에 핵시설이 분산돼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했다. 

영변 외 강선 등 핵시설 언급한 기사
한국4면 : 트럼프가 말한 “영변 말고 다른 핵시설”은 강선이 유력
한겨레3면 : 미국이 말한 ‘영변 외 핵시설’은 어디?
조선3면 : 트럼프 “영변外 큰 규모의 핵시설 지적하자, 김정은 깜짝 놀랐다”
국민3면 : 미, 북 우라늄 농축시설 강선·하강 등 4곳 이상 파악
매경 3면 : 평남 강선 우라늄 농축시설 ‘제2의 영변’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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