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집권한 정부다. 문 대통령도 각종 축사와 기념사와 같은 연설문에서 촛불정부라는 점을 강조한다. 촛불이 2년 여 전 긴 겨울을 밝힌 이유는 이명박근혜 시대의 온갖 적폐와 부조리 민주주의 퇴행을 들 수 있겠지만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유는 정경유착과 부패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부패의 중심은 대통령과 측근 실세, 한국의 최대 재벌인 삼성 사주 간의 뇌물과 경영권 승계 보장이었다. 국민들은 철저한 수사를 원했다. 특검은 박근혜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모두 기소해 사법부로부터 항소심까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박근혜와 이재용이 다른 단 한가지는 박근혜는 아직 구속수감 중인데, 이재용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점이다. 뇌물죄가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박근혜에게는 인정됐지만, 이재용 항소심사건 재판부는 뇌물을 준 이재용에게는 뇌물죄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법적인 모순이다. 하지만 법리의 문제를 넘어 현실적으로는 더 큰 혼란이 생겼다. 뇌물죄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인 이 부회장이 아무런 걸림돌없이 기업활동을 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독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문 대통령은 특히 올해들어 이 부회장을 네차례 곁에 불렀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일 중소기업 중앙회에서 열린 ‘2019 기해년 신년회’와 같은달 15일 ‘2019 기업인과의 대화 II’, 지난 22일 모디 인도총리 오찬에 참석했다. 심지어 오늘(27일) UAE 왕세제 오찬에도 참석했다. 모두 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3·1절 100주년 기념 특별사면 대상자에 부패범죄자를 배제하는 원칙을 천명했다. 법무부는 부패범죄를 저지른 정치인·경제인·공직자나 강력범죄자를 배제했다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도 그런 이유로 배제됐다.

대통령이 챙기는 경제행사에는 유독 이재용 부회장이 빠지지 않는다. 대기업에게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에 기여해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라 해도 국정농단 뇌물죄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피고인의 신분인 당사자까지 대통령 행사에 매번 부르는 것은 달리 생각할 문제이다.

기자는 27일 UAE 오찬 행사에 이 부회장이 참석한 것과 관련해 ‘부패범죄를 저지른 경제인 배제’라는 게 3·1 특사원칙인데 부정부패에 연루된 재벌회장을 계속 만나는 것은 무슨 원칙에서인지 물었다. 이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경제인의 기업활동은 기업활동이고, 사법적인 절차는 별도의 문제이다. 두 문제를 섞지 말아달라”고 답했다.

두 문제를 섞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의 특정 피고인에 대한 배려와 교류가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어떻게 해소할지 궁금하다. 경제인의 기업활동과 재판중인 형사피고인의 문제를 정말 분리하고자 한다면 대통령이 형사피고인을 만나지 않으면 된다. 대통령이 말로는 분리한다고 하고 몸으로는 만나고 있으면 국민이 과연 그 말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나렌드라 인도 총리 국빈 환영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사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2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나렌드라 인도 총리 국빈 환영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사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