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관료가 방송에 출연해 국정을 논하는 게 적절할까. 공직자 윤리상 문제는 없을까. 언론계 인사의 청와대 직행만 문제이고 청와대 퇴직자의 언론 출연 직행은 괜찮을까.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춘추관장을 맡아 20개월 동안 청와대에서 기자들과 소통했다. 춘추관장은 국민소통수석 산하 보도지원 비서관이다. 언론과 소통이 주요 역할이다. 대통령 주재회의에 들어가기도 하고, 대통령 일정을 기자에게 알리기도 한다. 기자들과 만나 각종 사안에 이해를 돕는 일도 한다. 대통령 해외 순방시 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한다.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만남의 대상을 관찰할 위치에 있기도 하다. 

권혁기 전 관장은 지난 1월 퇴임했다. 그리고 지난 2월18일 복당을 신청했다. 내년 총선 출마가 확실시 된다. 그는 전형적 정치인 행보를 걷고 있다. 미디어 노출을 통한 인지도 높이기다.

권 전 관장은 각종 방송에 출연 중이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을 종횡무진한다. 가장 최근인 26일 권 전 관장은 ‘전 청와대 춘추관장’ 타이틀을 걸고 TV조선 ‘특보 미북 베트남 정상회담’ 방송에 패널로 출연했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내용을 논평했다. 예를 들어 북한 권력 핵심에 있는 김여정 부부장을 “(방한한 김여정 부부장과) 악수하면서 느꼈던 이미지는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으로서 백두혈통의 당당함을 유지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름 인민의 대표로 왔다는 자존심을 보이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권 전 관장은 “두번째 만났을 때 평양 정상회담 수행으로 백화원 초대소에서 만났는데 180도 달라졌다. 굉장히 예의바르고 친절한 손님을 마중한다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권 전 관장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 동행한 북한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평가도 이어갔다. 김창선 부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전을 총괄하면서 비서실장격인 인물이다. 권 전 관장은 김창선 부장을 “굉장히 꼼꼼한 분이다. 판문점 정상회담 사전 답사 차 왔을 때 방명록 종이 재질까지 테스트했다. 보존 유지하도록 돼 있는데 일반 펜으로 잘 안 써진다. 업무 준비에 철두철미하다”고 말했다.

권 전 관장 발언은 보는 시각에 따라 민감한 정보에 해당하다. 춘추관장직 때 경험이라지만 경우에 따라 아슬아슬한 경계 위의 정보가 나올 수 있다.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방송에서 털어놓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2월27일 오후 연합뉴스TV에 출연한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 갈무리
▲ 2월27일 오후 연합뉴스TV에 출연한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 사진=연합뉴스TV 유튜브 갈무리

보통 청와대 고위 관료들이 퇴직하고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개인적 소회를 밝히기도 하지만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방송에 출연해 각종 이슈을 논평하는 모습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춘추관장 하면서 언론과 호의적 관계를 유지했던 것을 활용한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퇴직자가 방송에 출연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도 있지만 권 전 관장은 언론 관계의 최일선에 있던 인물이다. 만약 그가 춘추관장직을 맡지 않았다면 퇴임 후 이렇게 빨리 방송 출연이 가능했겠느냐라는 물음도 나온다.

청와대를 퇴직한 한 고위 관료는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최근까지 근무한 인물이 TV에 나와 논평하는 것은 국민 알권리 측면이나 남북관계 평화 개선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서도 “본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보안 유지 선이 있고, 거기에 걸리는 점도 있을 건데 방송한다는 게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권혁기 전 관장이 복당 신청한 것도 정치하겠다는 뜻을 함유하는데 본인의 뜻을 펼치려고 방송을 택했다는 것에 뭐라고 할 수 있지만 방송에 나갈 때는 전직 공직자로서 일정한 시간을 갖고 출연하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방송 매체와 권혁기 전 관장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서 수긍한다는 입장도 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노무현 정부 때까지 청와대를 출입했던 송국건 영남일보 서울취재본부장은 “어떻게 보면 언론인의 청와대 직행과 반대 현상인데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졌다”며 “권혁기 전 관장이 전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1차 정상회담 뒷얘기를 하던데 시청자 입장에선 만족스러울 수 있고, 방송국 입장에선 알기 어려운 정보를 준다는 점에서 좋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 본부장은 “현재 방송국 패널을 보면 진보와 보수의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는데 권혁기 전 관장이 출연해 보수 쪽 패널의 주장에 반박하고 반론을 펼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면서 “권 전 관장도 총선 대비를 하기 위해 나온 건데 시간적으로 보면 총선이 임박해 시간적 유예를 갖고 방송을 출연해야 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권혁기 전 관장은 “제가 경험한 게 외교 안보 라인의 비공개 회의가 아니고 기자들이 본 현장이고 공개된 행사”라면서 “수면 아래 남겨놔야 할 것들, 기밀이 아니라 현장에서 기자들도 봤지만 기사화되지 않은 현장 경험을 방송에서 말한다”고 말했다.

권혁기 전 관장은 “방송 출연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당사자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방송사 판단”이라며 “현 정부 입장을 잘 설명해줄 위치에 있었고, 방송에서 사실관계도 많이 틀리고 정부나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도 있는 순기능도 있다. 언론 활동이 좋은 정보를 통해 현안과 관련해 올바른 판단을 해주는데 도움이 되는건지 아니면 제 개인적 행보를 위한 것인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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