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획연재물 ‘옐로하우스 비가(悲歌)’는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특별한 계획없이 들렀던 옐로하우스에서의 ‘20분 인터뷰’가 시작이었다. 생각지 못한 사실들을 들었다. 종사자 대부분 직업 특성상 목·허리 디스크 질환을 앓았다. 그 탓에 마트 캐셔로도 전직하기 어려웠다. 전직을 해도 월 100만원 소득에 병원비·생활비 충당하다 빚이 쌓여 돌아온 여성, 가족 뒷바라지를 책임지는 여성도 있었다. 중앙일보 사회팀 최은경 기자(38)의 말이다.

옐로하우스는 인천 미추홀구의 성매매 집결지다. 인천 지역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라 불린다. 33호 중 7호가 남았다. 지역주택조합이 지난해 6월 도시주거환경정비사업 허가를 받은 후 철거를 시작했다. 남은 7호의 사람들이 현실적인 보상책을 주장하고 있지만 철거는 강행 중이다. 최 기자는 종사자 여성 5명을 만나 그들의 삶을 촘촘히 담은 ‘옐로하우스 비가’ 연재물을 쓰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최 기자를 인터뷰했다.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 '옐로하우스 비가' 기획연재 자료 사진.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 '옐로하우스 비가' 기획연재 자료 사진.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옐로하우스는 1월22일 처음 보도돼 지금까지 13건이 연재됐다. 10회가 넘는 연재물이 될 거라곤 최 기자도 생각지 못했지만 취재 중 새로운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나와 보도를 이어갔다. 취재 기간은 1월8일부터 지금까지 한 달 보름째다. 옐로하우스에서만 15명 넘게 만났고 경찰, 변호사, 의사, 여성가족부 및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 지원센터 활동가, 지역 역사가와 사진작가 등을 합하면 그동안 만난 취재원은 수십 명 규모다.

“철거되면 이 공간은 다 없어지고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역사에서 잊힌다. 철거 전에 우리의 아픈 역사 기록을 담아보겠단 취지로 시작했다.” 최 기자는 각 여성들의 삶 이야기를 따라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한 주제씩 기사를 썼다. 가난, 범죄에 노출, 신체 폭력, 불법촬영 피해 등이다.

1편 “그녀의 가장 비싼 옷은 7만원 점퍼였다”는 11년째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A씨 이야기다. A씨 부모님은 장애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가 쓰러졌고 부모님에게 나오는 연금으론 병원비·생활비 대기가 불가능했다. A씨는 살던 방도 뺐지만 수술비 700만원이 모자랐다. 그렇게 32살에 유일하게 선불로 현금을 내줬던 옐로하우스를 찾았다. 1년 넘게 일해 선불을 갚았다.

성매매는 가난의 문제와 뗄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학대가 심한 집안에서 자란 종사자들이 많았다. 가난은 되풀이됐다. 가정 환경 탓에 보금자리를 가져 본 적 없는 여성, 가장 역할 한다고 집 구할 돈이 없는 여성들이 많다. “호프집 서빙, 편의점 알바 같은 다른 일도 해봤지만 월 100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가족 뒷바라지하고 생활비·병원비 충당하다 보면 또 빚이 쌓이고 다시 이 일을 찾게 된다.” 최 기자 기억에 오래 남은 한 여성의 말이다.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2편은 ‘전자발찌를 찬 (성범죄자) 손님’을, 3편은 성매매 여성을 향한 일상적 언어·신체 폭력을, 4편은 불법촬영 문제를 다뤘다. 최 기자는 4편에서 ‘옷걸이에 옷을 거는 척하며 윗옷 주머니에 렌즈를 내놓는 게 가장 흔한 불법촬영 방법이더라’고 적었다. 개어놓은 수건 사이에 카메라가 있었던 사례부터 안경·가방·단추·사원증 뒤에 초소형카메라를 숨긴 사례까지 방법은 다양했다.

기사는 한국 사회 위선적 모습도 꼬집는다. 성매매 종사자를 비난하는 여론이 다수지만 한국은 국가가 성매매를 방조하고 조장한 역사가 있다. 박정희 정부는 ‘기생 관광’을 일본 등 해외에 홍보했고 1973년 한 문교부 장관은 성매매를 여성의 애국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도 했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이 낸 민사소송에서 정부가 1인당 300~700만원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가 불법적으로 기지촌을 조성해 운영하고 ‘애국교육’으로 성매매를 정당화했다‘는 여성들 주장을 부분 받아들였다.

최 기자는 종사자 여성의 인권 조명에서 시작해 궁극적으로 “집창촌과 성매매 문제가 공론화돼 관련 논의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매매 합법·불법을 논하기 전에 “절벽 끝에서 당장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여성들”이 많기에 실질적인 보호조치가 시급하다고도 지적했다.

기존 자활제도는 현장 여성들 요구를 반영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산다. 그러려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한데 사회적 관심이 적은 탓에 논의 수준은 빈약하다. “외부인과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취재 중 최 기자가 종사자 여성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이들이 사회로부터 단절된 상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 취재 중인 최은경 중앙일보 기자. 사진=중앙일보

최 기자는 옐로하우스가 선정적으로 비춰지지 않기 위해 전달 방식에도 애썼다.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진은 흑백 처리했다. 1회에 붉은 계열이었던 일러스트도 2회부턴 노란색 계열로 바꿨다.

인상적인 건 ‘댓글 피드백’이다. 기사 말머리마다 전편에 대한 누리꾼 댓글이 언급돼있다. 일부 독자들은 기자를 응원했고 해외의 성매매 비범죄화 방식도 분석적으로 제언했다. 그래도 상당 부분은 부정적 반응이다. 옐로하우스는 부산, 대구 등의 성매매 집결지에서도 관심을 갖고 봤다. 이들에겐 가족에 대한 욕설이 가장 큰 상처였다. 최 기자와 오래 인터뷰했던 A씨는 그 상처로 ‘내 이야기를 그만 다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날 최 기자는 오후 4시께 인터뷰를 끝내고 인천으로 향했다. 추가 취재가 있어 다시 옐로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옐로하우스 연재 종료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최 기자는 “기사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남아 있다. 연재는 그때까지 계속 될 것”이라 했다. 곧 나올 14편은 ‘철거 뒤 살 곳 없는 여성들’ 주제가 다뤄질 예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