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캠페인 내용이 좀 색다르다. 이들은 ‘북극곰님이 원자력을 좋아합니다’라는 내용의 유인물과 현수막을 만들어 캠페인에 사용하고 있다. 북극곰 사진이 크게 들어간 배너와 유인물도 보인다. 초록색 어깨띠까지 함께 두르고 있어 멀리서 보면, 환경 단체에서 기후변화 캠페인을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런 모습은 작년 대만 국민투표 당시 찬핵단체인 이핵양록(以核養綠 - 핵발전으로 녹색을 키운다는 뜻)이 했던 캠페인과 비슷하다. 그들은 국민투표 당시 홍보물의 주요 색깔을 녹색으로 정하고, 풀잎이나 새싹을 강조하는 홍보 전략을 구사했다. 거리 캠페인에선 북극곰 탈을 쓰고 나오거나 북극곰 인형을 전시하는 등 북극곰을 적극 활용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후변화협약에서 핵발전이 대안으로 검토된 적은 있으나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핵발전을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1999년 기후변화협약 제5차 당사국 총회부터 있었다. 온실가스 감축 수단으로 인정받으려면, 핵발전이 청정개발체재(CDM)이나 공동 이행(JI) 수단으로 포함되어야 한다. 청정개발체재와 공동이행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에 반영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교토의정서의 핵심 조항이기도 하다.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기후변화협약 참가국들의 입장이 나뉘기 시작했다. 핵발전에 우호적인 일본, 프랑스, 중국 등은 찬성입장을 냈으나, EU와 다른 유럽국가, 도서국가연합 등은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핵산업계가 모인 국제핵포럼(INF)나 IPCC 의장 등은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핵발전 옹호 입장을 발표했지만,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이 핵발전에 우호적이지 않으면서 논의에 힘을 받지 못했다.
당시 기후변화협약에 핵발전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본 정부는 보고서에서 핵발전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 핵폐기물 같은 환경적 영향이나 안전성 우려, △ 안전성이 더 높은 재생에너지 촉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 △ CDM의 추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움, △ 보안문제로 많은 데이터가 비공개라 온실가스 감축을 검증하기 어려운 문제 등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신기술을 도입했을 때, 얼마만큼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했는지를 입증하고, 제3자가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면 기후변화협약에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핵발전은 이 부분이 매우 취약했다고 평가했다. 단순히 발전과정에서 온실가스가 적게 나온다고 해서 그것만 갖고 기후변화의 대안으로 핵발전을 채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합의문 작성 이후에도 핵발전을 기후변화협약에 추가시켜야 한다는 핵산업계의 주장은 계속 이어졌으나, 막상 기후변화협약 회의에서는 더 이상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자세한 내용이 잘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 핵발전은 기후변화의 대안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20여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기후변화협약 논의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자칫 잘못된 대안을 채택할 경우, 기후변화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큰 새로운 위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어 누구보다 기후변화문제에 관심이 많은 ‘북극곰’이라면 이런 내용을 알고 있지 않을까? 북극곰의 속마음을 내가 정확히 알기는 힘들겠지만, 정말 지구를 사랑하고 기후변화를 해결하고 싶은 북극곰이라면, ‘원자력이 좋아요!’라고 외치지는 않을 것 같다. 더 안전하고 깨끗한 대안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