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대부분 반가운 존재다. 그러나 ‘객 신세’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한편으론 서러운 처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노동법에도 ‘손님’이 있다. 바로 객공(客工)이다. 

객공은 기본급 없이 만든 수량에 따라 보수를 받는 개수제를 적용받고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시설을 사용자로부터 제공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역사적으론 상업길드가 출현한 10세기 가내수공업을 기원으로 하고, 자본적 시설을 갖춘 제조공장이 출현하면서 현재 모습과 유사한 임금노동형태가 나타났다. 우리에겐 일제강점기 근대화와 함께 출현한 제화공이 대표적 객공이다. 

서울시 관악구와 성수동, 경기도 성남에 제화공장들이 모여 있다. 예전 평화시장과 염천교 주변 공장들이 비싼 임대료에 떠밀려 온 것이다. 제화공은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근로시간과 근로장소의 구속을 받는 점에서 일반 제조업 근로자와 다른 게 없다. 이를 확인해주듯 2018년 대법원은 제화공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2개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와 그 산하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은 개수제를 적용받고 사업소득세를 징수하는 등의 형식적 지표를 내세워 객공의 근로자성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에 따르면 IMF전만 해도 노동청은 객공의 근로자성 인정에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몇몇 제화브랜드는 객공에게 사업자등록을 하게 하고 사업소득세를 징수하는 등 소사장제 형태를 강화했다. 당시 유연화된 노동시장 분위기와 맞물려 노동청도 객공의 근로자성 인정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고 그런 분위기가 현재까지 이어진다.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제화노동자는 열악한 근로조건에 시달리고 있다. 생계를 위해 1일 11시간 이상 장시간노동을 하는 한편, 성수기(봄·가을)에 고용되고 비수기(여름·겨울)에 계약해지를 반복하는 불안한 고용에 놓였다.

1족당 지급받는 공임은 최근 20여년 만에 소폭 인상됐으나 연중 고용기간이 일정치 않다보니 저임금 구조는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위험한 장비를 다루다 손가락을 잃거나 굽은 자세로 오래 일해 근골격계 질환이 오더라도 근로자성을 입증하지 못해 산업재해 승인을 못 받는 현실이다. 어렵게 증빙자료를 갖춰도 제화공의 권리는 법원에 가야 비로소 실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자성 판단에 부정적이라서다. 실제 근로자성 인정을 전제로 하는 퇴직금 등 임금체불소송에서 법원의 인정판례는 많이 발견되는 반면 고용노동부가 인정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근로복지공단도 상급기관인 고용노동부의 낡은 행정해석에 의존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실무자는 입증자료가 명확한 때에도 주체적 판단을 못하고 법원으로 판단을 미루기 급급하다. 그 결과 법적절차가 장기화돼 경제적·시간적·사회적 비용이 낭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근로복지공단의 “틈새 없는 노동복지 구현” 같은 구호가 무색하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근로자성 판단에 근로복지공단의 전향적 태도 전환이 요구된다. 형식적 지표만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하기보다 사용자가 배분하는 작업량에 따라 근로시간이 구속되는지, 작업장에 비치된 자본적 시설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근로장소의 구속이 있는지, 제3자를 고용할 수 있는지 같은 실질 지표를 중점으로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 김은풍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 김은풍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무사
최근 열악한 근로조건 때문에 제화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 유입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질 좋은 토종구두를 만드는 숙련공의 자부심 또한 떨어지고 있다. 제화공을 비롯한 객공이 ‘노동법의 손님’이 아닌 주인으로서 대우받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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