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지난 11일부터 보도한 ‘공정성 잃은 지상파’ 시리즈 기사의 핵심 근거인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보고서를 스스로 발주한 배경이 드러났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오후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 직접 출연해 “지난해 9월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와 먼저 연구를 수행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해당 방송에서 “작년 9월 초 조선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지상파 편향성이 심각하다고 관련 취재를 하는데 제게 전문가로서 의견을 물어봤다”며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사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인상 비평처럼 몇 개 사례만 이야기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일주일 뒤 조선일보 측에서 다시 관련 사안에 대해 체계적‧과학적 연구를 수행해줄 수 있느냐고 했다. 굉장히 놀랍고 또 반가웠다. 그래서 수행하게 된 연구”라고 전했다.

▲ 24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쳐.
▲ 24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쳐.
이와 관련 발주처이자 연구비를 지원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는 KBS에 “윤 교수가 지원 신청을 해서 심사를 통해 연구비를 지원한 것이지, 연구소가 분석을 발주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 발주를 놓고 윤 교수 주장과 다소 배치되는 해명인 셈.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조선일보 측이 먼저 전화했다는 내용은) 비공식적으로 주고받은 이야기”라며 “조선일보 측은 공식 과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지금까지 보고서 발주처는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지만 연구는 독립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혀왔다. 조선일보도 “연구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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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화면 캡쳐.
그러나 윤 교수 말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주제를 정해놓은 후 윤 교수에게 코멘트를 받으려다가 거절당하자 윤 교수에게 연구 발주를 제안했다. 윤 교수가 아무리 독립적으로 연구했다고 해도 조선일보가 보고서를 통해 보도하려는 기사 주제는 미리 정해졌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윤 교수는 이 방송에서 ‘처음에 이 보고서 발주처가 조선일보라는 걸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참고문헌도 게재하지 못한 채 초안을 넘겼다”며 조선일보의 연구 보고서 보도가 급박하게 이뤄졌음을 시사한 뒤 “이후 연구비를 어디서 받았느냐는 연락이 쇄도했다. 그 순간 바로 연구소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 기관과 비용, 연구 인력을 밝혔다”고 전했다.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진이 조선일보에 왜 보고서 발주처를 밝히지 않았는지 물었지만 조선일보는 입장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조선일보 측은 조선일보 칼럼과 사설을 통해 입장을 확인하라고만 했다.

정준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교수는 조선일보가 발주처를 밝히지 않고 보도한 것을 비판했다. 정 교수는 “발주처를 밝히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라며 “여론조사 기사를 쓸 때도 누가 의뢰했고 누가 수행했는지 밝히게 돼 있다. 발주처를 밝히지 않고 보도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또 정 교수는 “공정성에 관한 연구는 실증이 어렵다. 과학적으로 실증하려는 시도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시도를 언론이 (여과 없이) 보도하면 (독자·시청자들은) 과학적 진실로 오인한다”며 “조선일보는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후광 효과를 이용, (이번 보고서를) 이야기를 펼치는 재료로 사용해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안톤 숄츠 독일 공영방송 ARD 기자는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시대엔 보수적 추세가 있어 KBS와 MBC가 파업도 했다. 그때도 혹시 조선일보가 지상파의 편향성을 비판했느냐”며 “지금 진보적 추세가 있어 갑자기 비판하는 것이라면 이게 가장 편향적”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25일 ‘공정성 잃은 지상파’ 시리즈를 보도한 조선일보 기자에게 윤 교수에게 전화한 시점과 발주처를 밝히지 않은 이유를 물었지만 해당 기자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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