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 참가했던 조장, 부조장들은 군단 사령관도 되고 그랬어요.”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의 5·18망언으로, 다시 김명국(가명)씨가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김명국씨는 오늘의 ‘소란’을 만든 사람이다. 공론장에 발도 못 붙이던 ‘5·18북한군 개입설’이 어떻게 국회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박근혜정부 첫해였던 2013년 5월, ‘5·18북한군 개입설’을 여과 없이 방송으로 내보낸 채널A와 TV조선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방송 이후 일부 뉴스수용자들은 이 사안을 ‘논란’으로 인식하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론장으로 들어왔다.

특히 2013년 5월15일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에 출연했던 탈북자 김명국씨의 구체적인 주장은 방송 이후 극우보수성향 유튜브채널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며 오늘날 ‘지만원의 600명 광수’와 함께 ‘5·18북한군 개입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고 있다. 김명국씨는 채널A에서 자신이 1980년 광주에 있었고 그해 5월27일 오전 9시 철수명령을 받았으며 철수 도중 국군과 교전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방송에선 그의 뒷모습과 육성만 나왔다.

▲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한 장면.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 가운데 얼굴 드러난 이가 김광현 진행자.
▲ 2013년 5월15일자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 한 장면. 모자이크 처리된 이가 김명국씨, 가운데 얼굴 드러난 이가 김광현 진행자.
채널A는 김씨 주장을 바탕으로 “5월23일 10시 광주시내 한 복판 진입”, “5월19일 4시 대항리에서 50명 전투인원 지프차 타고 출발”, “5월19일 밤 9시 황해남도 장산포 바닷가 도착”같은 자막이 마치 사실마냥 내보냈다. 김명국씨를 직접 만났다고 밝힌 당시 프로그램 진행자 김광현씨는 “(김명국씨) 증언이 제대로 전파를 타지 못하고 있었다”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놀랍게도, 현재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언론계에 남아있다.

지난해 9월, 미디어오늘은 ‘1980년 광주에 있었다는 북한군 김명국씨를 찾습니다’란 제목의 기사를 내고 김씨에 관한 제보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해 회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명국씨를 알고 있다고 했다. 놀라웠다. 통화를 시도했다. 북쪽 말투였다. 그는 또 다른 탈북자 이주성씨였다. 채널A와 김명국씨를 연결해준 인물이자, 문제가 된 채널A 방송 편에서 직접 스튜디오에 출연해 ‘5·18북한군 개입설’을 사실처럼 주장했던 이 사건의 ‘핵심인물’이었다.

▲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탈북자 이주성씨. 그는 김명국씨를 알고 있다.
▲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했던 탈북자 이주성씨. 그는 김명국씨를 알고 있다.
그는 ‘탈북자집단망명추진위원회’ 대표이면서, 동시에 MBN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한 독특한 인물로, 2017년 대선 무렵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탈북자 3000여 명이 해외로 집단 망명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정작 본인은 여전히 한국에 거주하고 있다. 어쨌든 이주성씨를 만나야 했다. 그러나 만남은 틀어졌다. 그는 갑자기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극우보수성향의 한 유튜브채널에 자신과 함께 출연해 5·18의 진실에 대해 토론하자고 제안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몇 번의 ‘고성’을 주고받은 뒤 연락은 끊겼다. 그는 당연히 김명국씨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 실제 존재하는지 그 무엇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8일 지만원씨가 국회로 진입하고 5·18망언 관련 기사가 쏟아지며 다시금 김명국씨를 찾아야만 했다. 6년 전 김명국씨의 출연이 나비효과가 되어 지만원씨가 국회로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발점을 찾아 ‘끝장’을 봐야 했다. 정말 이 사람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통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명국씨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던 김광현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또 다시 전화를 끊었다. 채널A기자들에게 당시 방송이 나가게 된 과정을 수소문해봤지만 역시 소득이 없었다. 분명한 왜곡방송이었지만, 채널A 내부에서는 방송이 나가게 된 과정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조사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다시 이주성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이 국면에서 김명국씨가 나와 증언을 하면, 당신들 입장에선 절호의 기회다” 이런 투로 설득을 했다. 이주성씨가 말했다.

“민주당 좌빨 무리들이 김씨 왕조처럼 마녀사냥하고 있다. 망언으로 여론몰이하고 있다. 공안정국이다. 문재인 문민독재다. 지금 (김명국씨가) 나오면 개머리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 텐데.” 이주성씨는 김명국씨가 국민 앞에 나서고 싶어 하지만 못 나오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광주폭동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평가한다. (5·18)유공자들이 국가 혈세 먹은 거 게워내야 하는데…. 나라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거대한 벽이 스마트폰 너머에 있었다.

역시 큰 소득은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지만원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지만원은 탐욕과 이권으로 광수를 만들어냈다.” 당연히 지만원씨 주장을 지지할 줄 알았는데 이주성씨는 지만원씨의 ‘600명 광수’ 주장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지만원이 탈북민들을 광수로 만들어 탈북민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탈북광수는 말도 안 된다”며 “연변에 있는 북한 해커 조직이 사진을 조작해줬다. 지만원은 간첩이다”라고 주장했다.

‘5·18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내에서도 지만원씨의 주장은 이미 탄핵된 사안이었다. 다시금 지만원씨를 국회로 ‘모셔온’ 자유한국당의 수준에 정신이 아찔했다.

▲ 더불어민주당 권미혁(왼쪽부터), 정의당 추혜선, 민주평화당 장정숙,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여야4당 공동으로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권미혁(왼쪽부터), 정의당 추혜선, 민주평화당 장정숙,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2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여야4당 공동으로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국회의원 166명이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부인·비방·왜곡·날조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2013년 방송 이후 5·18단체 등으로부터 형사고소 당했으나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김명국씨는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수사대상이 되어 처벌받을 수 있다. 2013년 방송과 관계된 모든 사람이 수사대상이 될 수도 있다.

김명국씨는 자신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5·18망언으로 뜨거운 현 시점에서 대중 앞에 나서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이 살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자수해서 광명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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