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전용열차를 타고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출발했다. 회담 공식일정은 27~28일이다. 25일 아침 종합신문은 모두 이 사진을 1면 상단에 실었다. 신문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5시간 걸리는 전용기를 두고 열차를 택한 이유를 추측하는 데 무게를 뒀다.

앤드류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지난 22일 공개 강연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4월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나는 내 아이들이 핵을 이고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 의향이 있느냐’고 물은 데 대한 답변이다. 아침신문들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지만 해당 발언과 이를 공개한 배경을 둘러싼 해석은 갈렸다.

다음은 25일 아침종합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열차 탄 김정은 ‘북‧미 회담 장정’”
국민일보 “북, 비건에게 ‘이번엔 영변 폐기까지’ 통보”
동아일보 “열차로 대륙 관통… ‘중 뒷배’ 과시한 김정은”
서울신문 “독립운동가 김원봉 재평가‧복권 1순위”
세계일보 “60시간 대장정… 김정은의 ‘열차 외교’”
조선일보 “김정은, 중국 종단 ‘남행열차 이벤트’”
중앙일보 “김정은 열차 만리, 중국 60시간 관통”
한겨레 “김정은의 ‘남순강화’ 열차 대장정”
한국일보 “김정은 열차순방, 중‧베트남 발전상 곳곳 탐색”

“중국 뒷배 강조” 입모아, 조선일보 사설은 조롱조

김 위원장의 ‘열차 대장정’이 중국과의 협력 관계 강조라고 풀이했다. 동아일보는 ‘혈맹관계를 선전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라고 했다. 한겨레는 ‘북중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려는 포석’이라고 했다. 신문들은 중국 남부의 개혁개방 거점을 시찰하고, 김일성‧김정일을 연상케 하려는 의도라고도 전했다.

한국일보는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될 만큼 내부 단속이 돼 있다는 자신감과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봤다. 국민일보는 실무협상이 아직 완결되지 않아 실시간 보고받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겨레는 “문재인 대통령의 ‘동아시아철도공동체’ 구상에 힘을 싣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3면에서 “비핵화 의제보다 의전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사설에선 북한 행보에 조롱조를 내비쳤다. “4시간여면 갈 수 있는 비행기 대신 60시간이 넘게 걸리는 기차를 타고 간다. 쇼일 수도 있고 낡은 북한 비행기 탓일 수도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북핵 폐기인데 비핵화는 4시간 거리를 60시간 걸려 가는 것만큼이나 이상하다.”

한편 서울신문만 북한이 열차를 택한 의도보다 먼저 비핵화 협상 의제를 둘러싼 소식을 1면 머리에 배치했다. 서울신문은 “미국은 초기 비핵화의 수준을 여변 핵시설 폐기가 아닌 동결로 낮추는 대신 범위를 모든 WMD 및 미사일 프로그램으로 넓히자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 25일자 한겨레 1면
▲ 25일자 한겨레 1면
▲ 25일자 조선일보 3면
▲ 25일자 조선일보 3면

서울신문 “미국, 북한의 큼직한 조치 바란다면 걸맞게 행보”

회담 성과를 둘러싼 전망은 어떨까. 신문들은 앤드류 김 전 센터장 발언을 보도하며 북미 양쪽의 의중을 풀이했다.

경향과 한겨레는 양측 다 대화 의지가 높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김 센터장 발언이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미국 의회와 언론에선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함께 2차 정상회담 회의론이 거센 것 또한 현실”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인상적인 발언”이라며 “충심이 엿보인다”고 했다.

한겨레는 “북한이 영변 핵 폐기의 신고‧검증을 받아들이고 미국이 종전 선언이나 연락사무소 설치 등으로 화답한다면, 그것만으로 1차 회담과 다른 아주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제안했다. 경향신문은 “김 위원장은 구체적인 조치로 비핵화 의지를 입증하고, 트럼프 대통령도 과감한 제재 완화로 화답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은 김 센터장이 말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려면 미국도 움직여야 한다고 했다. “1년 이상 핵‧미사일 시험의 중단이 확인된 만큼 비핵화는 2단계인 핵 폐기의 입구에 와 있다. 영변 핵시설 폐쇄가 대표적이다. 영변 시설만 폐쇄하더라도 북한의 핵 능력이 현저하게 감소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그 이상의 ‘큼직한 조치’를 바라고 있다. (…) 미국도 그에 걸맞은 조치를 내놔야 한다. 미국이 대북 신뢰 관계를 다지고 불가역적인 행동을 바란다면 북한을 죄는 각종 제재의 선제 완화와 함께 연락사무소 개설, 문화 교류, 종전선언 등의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동아와 조선, 중앙 등은 북한에 결단을 촉구했다. 동아는 김 전 센터장이 공개석상에서 북한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상회담 회의론을 차단하고 북한에 비핵화 결단을 촉구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중앙은 “(김 센터장 발언이) 오히려 비핵화 행동을 내놓으라는 압박이라는 해석이 강하다”며 김 위원장이 열쇠를 쥐고 있다고 했다.

동아와 조선은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북미가 비핵화 개념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 신문은 비핵화 개념과 달성 시한을 적시하는 구체적인 로드맵을 주문했다. 중앙은 ‘북한 아이들의 번영은 김정은의 결단에 달렸다’ 사설에서 “김정은이 현명하고 통 큰 용단만 내리면 북한의 앞엔 번영을 향한 비단길이 펼쳐져 있다”고 강조했다.

▲ 25일자 서울신문 사설
▲ 25일자 서울신문 사설

북한 매체, 김 위원장 열차 행보 이례적 신속 보도

한편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출발 소식을 이례적으로 다음날 새벽 신속 보도했다.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할 때까지 일절 보도하지 않은 것과 대조된다.

경향신문은 이에 따로 기사를 냈다. “과감한 변화”라며 “정상국가 면모를 과시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김 위원 행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2차 회담에 대한 북한 쪽의 기대와 의지를 드러낸 것” 세계일보는 “김 위원장이 평양역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당‧정‧군 고위인사들이 김 위원장을 환송하는 사진도 게재했다”며 “(열차 선택이) 정치적 이벤트 성격이 짙다”고 했다.

▲ 25일자 경향신문 3면
▲ 25일자 경향신문 3면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