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국내·외 각 분야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폭넓은 식견과 소양을 갖춘 인재와 세계 학문을 선도할 수 있는 우수한 학자를 육성할 것이며 이에 필요한 기본교육과정과 제도를 정비한다”

서울의 한 대학교가 복수전공 제도를 개선하며 쓴 글 일부분이다. 복수전공 의무화를 통해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제공하고 학과 간 벽을 낮춰 학문 융합을 이루게 한다는 내용이다.

복수전공(또는 제2전공, 다전공, 다중전공, 이중전공)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 해당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택한 전공 이외에 추가로 1개 이상의 전공과정을 더 이수하는 것을 말한다. 이수하면 졸업 시 본전공과 복수전공이 병행 표기된 학위를 수여 받는다.

학생이 자신의 주전공 이외에 관심 있는 전공을 선택해 듣고 주전공과 똑같은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은 학생에게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의무화’ 규정에 따라 족쇄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수전공 의무화는 ‘제2전공 의무화’라는 이름으로 2004년에 고려대학교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2007년 한국외국어대학교는 이중전공과 전공심화, 부전공 등 이수를 의무화했고, 2008년 서울대학교도 ‘의무복수전공제’를 시행했다. 최근에는 복수전공을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으로 이수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심화전공과 융합전공, 연계전공, 학생설계전공 등을 대안으로 내세워 필수로 이수하게끔 지정한 학교도 늘었다.

현재 복수전공 의무화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은 복수전공 제도를 통해 융합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고, 학생의 진로에 관한 융통성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고자 도입한 제도라는 설명이다. 또한 복수전공과 심화전공, 융합전공 등 여러 전공을 둬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다른 전공을 하도록 강요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학생들도 학교와 같은 생각일까?

현재 고려대에 재학 중인 A씨는 주전공과 융합전공을 이수하고 있다. 그는 “이중전공·융합전공·학생설계전공·심화전공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 졸업 전까지 이수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2학년 때까지도 진로를 찾지 못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필수로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아무 전공이나 선택하고 나중에 적성에 맞지 않아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라고 밝혔다.

▲ ⓒ gettyimage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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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전공과 부전공, 심화전공 중 1개를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가천대생 B씨는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배우고 싶은데 우리학교에는 심리학과가 없다. 그래서 복전과 부전 중에 선택하고 싶은 과가 없어 고민이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배우고 싶은 전공을 찾지 못해 남들보다 늦게 복수전공을 신청하게 되면 초과 학기를 다녀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2017년부터 복수전공 의무화를 실시한 지역 소재 학 대학생 C씨는 “처음에는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입학하고 주전공에 대한 이해가 다 자리잡기 전에 복수전공도 필수로 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만약 복수전공이 선택이었다면, 정말로 복수전공을 원하는 친구들이 책임감을 느끼고 열심히 들을 거 같은데 관심 없는 친구들이 복수전공을 신청해서 오히려 수업의 질을 흐리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공대를 복수전공 하면 등록금이 더 비싸다. 입학하기 전에는 복수전공 의무화로 다양한 학과를 경험해보라며 홍보해 놓고선 막상 관심 있는 분야를 들으려고 하니까 비용 면에서 부담이 돼, 다른 전공으로 바꿔 신청한 친구들도 봤다”라고 전했다.

2019년 서울 4년제 일반대학 29곳 중 복수전공과 심화전공, 융합전공 등을 ‘졸업필수요건’으로 지정한 학교는 14곳이다. 절반의 대학이 학생들의 전공 선택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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