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한 언론은 이낙연 국무총리 교체 가능성이 있다면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이 새 총리 후보군 물망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박지원 의원 총리설에 대한 근거는 “복수의 정치권 소식통”이었다. ‘~따르면’이라는 인용 문구에 익명의 관계자들을 내세웠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리고 바로 “박지원 의원 측은 총리 제안설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말을 아꼈다”라고 썼다.

청와대는 총리 교체 가능성 보도 내용을 일축했다. 박지원 총리설을 보도했던 언론은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모 언론에서 총리를 개각 대상으로까지 언급했는데,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복수의 정치권 소식통을 인용해 새총리 후보군의 이름까지 공개하며 유력한 내용이라고 소개했지만 결국 청와대 해명 내용을 유체이탈화법으로 전하면서 박지원 총리설은 하루 만에 폐기처분됐다.

박지원 의원실은 해당 언론이 근거로 내세운 복수의 정치권 소식통에 대해 “박지원 의원과 관련돼 의원실 관계자라고 불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나. 박 의원의 총리설이 설로 그쳤을 때 이득이 되는 쪽에서 그럴듯하게 만들어 흘린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한국 언론의 특징 중 하나가 익명의 관계자를 기반으로 한 보도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인사를 전망하는 보도의 경우 보통 ‘여권의 핵심관계자’나 ‘복수의 정치권 소식통’으로 뭉뜨그려 관련한 내용을 보도하고 인사권 행사 주체의 해명을 듣는 식으로 이뤄진다. 인사권자의 최종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 교체 가능성 같은 보도는 익명의 관계자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느냔 하소연도 있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익명 관계자를 근거로 내세워 보도한 뒤 사실에 어긋난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오면서 기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

익명의 취재원 인용 보도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언론학자들이 모여 꾸린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는 지난 2016년 1월 1일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매달 2일 씩 모두 24일, 4주에 달하는 날짜를 무작위로 추출한 뒤 해당 날짜의 한국 종합일간지 10개 매체(694건)와 미국의 뉴욕타임스(72건), 영국의 더 타임스(54건), 일본의 아사히 신문(72건) 보도 내용을 분석했다. 취재원 유형, 취재원의 실명 표현 수준, 전체 취재원수, 투명 취재원수, 취재원 실명 비율 등을 따져봤더니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 보도 내용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먼저 국내 주요 일간지 1면 기사에 포함된 취재원 수는 평균 3.33개로 나타났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기사당 전체 취재원 수는 12.14개로 나왔다. 국내 언론의 4배에 달했다. 더 타임스는 6.11개, 아사히 신문은 4.10개였다.

취재원 중 실명 혹은 준실명으로 판명된 ‘투명 취재원’ 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는 성명이 표기되지 않더라도 직위 등이 정확하게 표기돼 누구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취재원까지 투명 취재원으로 정의했다.

투명 취재원 수 역시 뉴욕타임스가 8.4개로 가장 많았다. 국내 종합일간지 투명 취재원수 평균은 2.6개였다. 투명 취재원이 1개 이하인 기사의 비율도 국내 일간지가 34.3%로 가장 높았다. 투명 취재원이 한명만 등장하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1.4%에 불과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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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연구회는 “미국 기자와 한국 기자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미국 기자들은 실명 보도를 허락받기 위해 취재원을 끈질기게 설득한다. 실제로, 취재는 물론이고 기사 작성까지 완전히 끝내놓고 핵심 취재원의 실명을 기사에 쓰기 위해 서너 달 이상 취재원을 설득했다는 사례가 더러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 기자들은 너무 쉽게 실명을 포기하고 취재원의 익명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자들이 익명 취재원 처리 여부에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매체의 엄격한 준칙과도 연결돼 있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취재원이 자신의 의견을 기사에 반영하고자 할수록 실명을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에디터는 실명으로 정보를 얻도록 기자를 다그쳐야 한다는 내용을 준칙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익명으로 취재원을 표기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 어떻게 익명 취재원의 의견을 알게 됐는지, 익명으로 표기하는 이유 등을 기사에서 설명하도록 했다.

국내에도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2017년 조선일보가 발표한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취재원을 익명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경우를 △정보로서 뉴스 보도에 필수적인 경우 △익명을 요구한 출처를 제외하고는 해당 정보를 입수할 수 없을 경우 △출처를 신뢰할 수 있고 취재원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경우 △실명이 드러나면 각종 위해나 신분상 불이익에 노출될 위험이 있을 경우 △국가 안보 등 공익을 위해 부득이한 경우로 명시했다.

기사의 내용과 관련돼 이해관계가 있는 주체를 뜻하는 이해당사자의 수에서도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의 차이는 컸다. 뉴욕타임스는 기사 평균 7.7개로 나왔고 더 타임스는 3.9개, 아사히신문은 31개였다. 국내 종합일간지 10개 매체의 이해당사자 수 평균은 2.6개에 그쳤다. 익명으로 취재원을 표기하더라도 기사에 상이한 이해관계를 가진 수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특정 대상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보도는 한국 언론의 나쁜 폐해로 오랫동안 지적돼왔다. 객관적인 제3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부정적 내용을 의도적으로 발화하게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게 하고 결국 보도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개인적 견해나 의견,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용은 익명으로 보도할 수 없다”고 준칙을 정해놨다.

연구회는 “익명 보도의 부작용은 그 내용이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일 때 더욱 심각하다. 공격과 비판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발언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반론을 재기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불공정한 기사”라고 지적했다.

투명성이 낮은 한국 사회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한 익명 취재원의 인용이 불가피하더라도 소위 편한 취재를 위해 실명 표기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 관행적으로 익명 취재원을 인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연구회는 “익명 보도가 일상화하면 기자들은 가공의 취재원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쉽게 기사를 쓰려는 유혹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결국 한국 언론 문제를 개선하려면 투명 취재원수와 이해당사자수를 늘리고 익명 취재원에 기댄 보도를 최소화시켜 독자들로부터 언론이 취재원의 질과 정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얘기다.

참고 문헌-기사의 품질(한국 일간지와 해외 유력지 비교연구)_김경모‧박재영‧배정근‧이나연‧이재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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