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3일차에 블랙박스로 불리는 항해기록저장장치(VDR), 수색 7일차인 21일 실종자로 추정되는 사람 뼈와 방수복을 발견했다. 이 자리에 한국 정부와 언론은 없었다.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수색업체 배에 타지 않았고, 외교부는 언론인의 승선을 막았다. 처음엔 실종자 가족조차 수색선에 타지 못하게 하려던 게 정부 방침이었다.

유해 발견은 뜻밖의 성과였다. 다른 말로 정부가 대비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 공동대표는 지난 21일 KBS ‘오늘밤 김제동’과 인터뷰에서 “심해수색 계약 내용에 유해수습 내용이 없었다”며 “전문가들도 너무 깊은 바다라서 수압이 높아 유해 발견이 불가능하다고 해 (유해수습을) 기대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스텔라데이지호에서 살아온 필리핀 선원이 입었던 주황색 방수복과 같은 방수복이 이번에 발견됐다. 사진=오늘밤 김제동 화면 갈무리
▲ 스텔라데이지호에서 살아온 필리핀 선원이 입었던 주황색 방수복과 같은 방수복이 이번에 발견됐다. 사진=오늘밤 김제동 화면 갈무리

외교부에 수색선 승선 협조 공문을 보냈다가 ‘불허’ 통보를 받고 끝내 수색선에 탑승하지 못한 김영미 시사IN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독립PD)은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승선을 했다면 유해가 나온 상황에서 수색일정은 어떻게 될지, 과연 계약에 없었던 유해 수습이 제대로 될지, 계약을 다시 해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를 좀 더 감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 공무원도 언론인도 없이 가족 1명이 최소한으로만 지켜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심해수색선에는 실종자 가족 1명만이 승선해있다. 아무래도 의사소통이나 전문지식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언론인이 타는 것 자체가 실종자 가족들에겐 일정부분 위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외교부는 수색업체가 일방적으로 보내주는 정보만 받아보는 중이다. 한국 언론은 외교부가 공개하는 내용만큼만 보도할 수 있다.

정부만 믿을 순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7년 3월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서 5척의 구명벌이 탈출했지만 당시 2척만 구조했다. 구조 활동은 약 2주 만에 끝났다. 정부는 심해수색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가족들은 2년 간 더 수색하고 사건의 원인규명을 요구했다. 허 대표는 KBS에 “문재인 대통령이 관심을 많이 보였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들 관료주의는 바뀌지 않았다”며 “심해수색 결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수색 일주일 만에 사람 뼈로 추정되는 물체는 구조 당시 필리핀 선원들이 입던 주황색 방수복과 함께 발견됐다. 가족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계약에 없던 유해수습을 제대로 할지, 수색기간을 늘려 다른 유해도 수습할 수 있을지, 블랙박스를 제대로 분석해 사고원인을 규명할지 불안감이 교차한다.

▲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사진=오늘밤 김제동 화면 갈무리
▲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사진=오늘밤 김제동 화면 갈무리

아직 외교부는 유해와 방수복을 수습할지, 추가 수색 여부, 블랙박스 분석 업체선정 등을 발표하지 않았다.

블랙박스는 일단 우루과이로 갈 예정이다. 김 편집위원은 “한국은 블랙박스 분석 경험이 없어서 공인된 외국 기관에서 분석을 해야 하는데 아직 업체도 못 정했다”고 말했다. 블랙박스가 공기에 닿는 순간부터 부식이 시작하므로 전문 업체에서 빨리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김 편집위원은 방송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스텔라데이지호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시사IN과 김 편집위원만으로 지구 반대편을 오가는 취재일정과 비용을 감당하기란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김 편집위원은 지상파 3사와 JTBC 등에 자신이 취재한 영상을 무료로 제공했다. 그는 “방송 뉴스는 그림이 없으면 주요뉴스로 키우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시사IN이든 다른 방송사였든 수색선 안에 있었다면 더 잘 보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8명이 실종된 사안으로 대한민국 최초 심해수색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 뼈와 방수복이 나온 것을 감안하면 언론보도는 기대 이하였다는 평이다. 최근 방송사들도 재정이 열악해지면서 해외출장비나 특파원 수를 줄이는 등 제작비를 절약하는 모습이다. 남아공이나 우루과이까지 가는 취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수색선 출항 전 유일하게 언론인 1명만 남아공에 갔고 아무도 수색선에 타지 못한 건 문제라는 지적이다.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이날 스텔라데이지호 뉴스를 전하지 않았다. SBS는 이날 8뉴스에서 추가수색을 요구하는 가족들 목소리와 외교부가 아직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다는 내용의 1분36초짜리 리포트를 내보냈다. JTBC도 이날 뉴스룸에서 19번째 꼭지로 유해 발견 소식을 전하며 실종자 가족들이 추가수색을 요청한다는 1분32초짜리 리포트를 내보냈다.

실종자 가족들은 22일 외교부와 유해 수습과 블랙박스 업체 관련 회의를 진행한다.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해당 회의 이후 나올 예정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