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인 종편이 지상파 수준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까? 기계적 중립 방식의 객관주의가 바람직한 지는 논쟁거리다. 그러나 종편에 관한 한 이런 논쟁은 이미 무의미하다. 종편들은 이념과 정파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바에야 각자의 가치와 이념 지향을 분명하게 커밍아웃 하도록 하는 게 낫다. 대신 사실의 왜곡, 조작 등이 반복되면 승인을 취소할 정도로 팩트의 정확성 만큼은 엄정하게 다뤄야 한다.
종편채널의 의무송출을 폐지하도록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는 것도 여론 다양성은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유료방송채널의 힘은 가시청가구의 규모에서 나온다. 보수 종편들은 전국 3천여만 유료방송 가입자 모두에게 의무송출 해주는 특혜 덕분에 무럭무럭 성장했다. 이제 의무송출제를 폐지하더라도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송출대상에서 빼기는 힘들 것이다. MBC와 SBS는 의무송출 대상이 아님에도 모든 가입자에게 송출된다. 많은 시청자들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종편도 마찬가지 상황이 될 것이다.
따라서 방송통신위의 개정안은 보수 종편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대신 진보 또는 중립적 종편의 씨를 말려버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의무송출이라는 인큐베이터 없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후발 종편이 안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방통위의 방침은 수정되어야 한다. 종편 및 보도채널 일정 수를 의무송출하도록 유지하되 여론 다양성이 보장되도록 균형있는 채널편성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필요한 자본금의 규모, 수지 전망 등을 따져보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길은 있다. 독립제작사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외주전문채널과 결합하여 타임셰어 방식의 공유플랫폼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필요 자본금 규모도 크게 줄고, 독립제작사들의 오랜 숙원도 해결할 수 있다. 시민의 종편을 지향하면서 소비자-시청자층을 조직하는 것도 검토해볼 대목이다. 선발 종편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학습할 수 잇다는 것도 큰 자산이다. 문제는 재무적 패배주의와 모바일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다. 현실에 발을 딛되 이상에 도전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을 기대해본다.